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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구두를 신은 Jan 31. 2024

먹으란다고 먹지 말란다고

내게 무슨 권한이 있단 말이냐

지난여름, 집으로 올라가는 보행자 도로가 무성한 칡덩굴로 인해 막힌 적이 있었다. 그 길과 이웃한 학교의 건물 뒤편에는 농구장을 두세 개 만들 만한 땅이 버려져있는데 그 공간을 칡덩굴이 점령한 것이다. 초록빛 바다를 이룬 그 덩굴숲에는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무리 지어 살았다. 즈즈즛 즈즈즛 우는 새. 참새를 닮았으나 참새보다 더 작고 귀여운 새. 내가 아무리 참새가 아니라고 우겨도 사람들은 참새라고 했다.

"울음소리를 들어봐. 참새랑 달라. 즈즈즛 즈즈즛 이렇게 울잖아."

그랬는데 그 소리가 짹짹짹으로 들린다고 했다. 칡덩굴은 여름 내 철제 울타리를 타고 올라 길을 지나는 행인들을 붙잡을 듯이 손을 뻗었다. 가을이 되기 전 울타리를 넘어온 풀들은 한 남자의 전동칼날에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풀냄새가 묘하게 좋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했다. 울타리 안쪽에 있는 덩굴은 움집처럼 무엇인가를 품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갈색으로 변하여 그대로 말라버린 덩굴숲을 보면서 그 아래 아늑한 공간을 길을 가다 말고 몸을 숙여 바라보곤 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둥그런 몸과 잘 바랜 지푸라기 색을 한, 까만 눈이 정말로 동그랗고 예쁜 오목눈이가 여름 내내 이곳에서 살았었지. 지금은? 거기 숨어 있니? 좀 따뜻하니?'


바스락.

고양이 한 마리가 초록색 울타리 밑부분으로 유연하게 몸을 낮추어 들어갔다. 덩굴숲 그 은밀한 입구로 들어갔다. 포식자가 사냥을 할 때 보이는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무릎을 굽혀 엉거주춤 앉았다.


'깜짝이야.' 고양이는 범죄를 저지르려다 들킨 것처럼 켕기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거기서 뭐 하냐. 오목눈이 보금자리를 덮친 것이냐.'

'신경 끄세요. 가던 길 가세요.' 고양이가 발이 시린 듯 앞발을 하나 들어 올렸다.


먹으란다고 혹은 먹지 말란다고 들을 고양이도 아닌데 나 혼자서 선택의 권한이 내게 있는 듯 괴롭다. 그 작고 귀여운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자꾸 눈에 밟힌다. 어쩌면 고양이는 추워서 그곳에 숨어들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밤 오목눈이는 덩굴 사이사이에서 친구들과 나란히 몸을 맞대어 자고, 그 옆에는 몸을 동그랗게 만 고양이가 새근새근 잠들었을 수도 있다.

결국 세상사란 객관이 아니라 주관이고 내 신경쇠약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내 일신을 보존하는 것에 대한 염려를 오목눈이에 투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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