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바람 구두를 신은
Feb 19. 2024
숲은 비어 있었다
나무는 가진 것이 하나 없어도
그대로 손을 뻗고 으쓱하며
새들에게 어깨를 내주었다
지난 여름, 산은 빽빽하여 뻔히 아는 길도 시치미를 뚝 떼고 숨겼는데
겨울 숲은
그렇게 큰 산이 아니었음을 겸손히 드러내보였다.
길이 아닌 곳도 길처럼 너그러웠다.
안개가
시범 삼아
나를 먼저 감싸주었다.
멀리 있는 것은 지우고
여기 이곳에 머물러
가까이 있는 것들만
분별하며 살아가라고
지난해의 아픈 일들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