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30년 전 이야기이다
출판사의 신입으로 일할 때였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만들던 회사인지라 부서명은 수학과, 국어과, 영어과
뭐 이런 식이었다.
그중 수학과 최 과장님은 왕따였다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침묵을 택한 남자
비 오는 날에는 검은색 장우산을 들고 다니면서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던
그렇게 말이 없어도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던
수학과 신입으로 입사한 동기 창렬 씨는
유독 말이 많고 흉내도 잘 내어
곧잘 우리 모임의 화두는 최 과장이었다.
어느 날 구내식당에서 내가 식사기도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기도하고 있는 그가 보였다.
동기가 낄낄거리면서
저거 봐, 00 씨 기도보다 세 배는 길 것 같은데?
아닌 게 아니라 성당이나 어느 교회에서 볼 법하게 오래도록 기도하고 있었다.
한 번은 회사가 내부 수리를 한다 해서 재택근무로 돌려진 적이 있었다
우리 부서는 마감이 밀려 그럼에도 출근을 했다.
수학과 최 과장도 출근을 했네? 쯧쯧 아무도 얘기 안 해줬다 봐.
어느 날 야유회, 모두들 모여서 삼삼오오 떠들고 있었다.
이런 날, 이런 곳이 얼마나 불편할까.
그는 역시나 아무하고도 말을 섞지 않고
그저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었다.
수학과 창렬 씨는 물 만난 고기처럼 파닥거렸다.
그때, 나는 봤다. 분명히 봤다.
창렬 씨, 창렬 씨
무슨 용건이 있는지 그가 애써 손까지 내밀어 창렬을 불렀다.
창렬은 목청껏 떠들어대느라 듣지 못했다.
아니 아무도 듣지 못했다.
오직 나만 그 장면을 우연히 봤을 뿐이다.
30년이 지나도 그날의 서늘함을 잊지 못한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