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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방 할머니와 접시꽃

7월 5일

by 향기로울형


이맘때 작은 도서관 화단에 접시꽃이 핀다는 것을 아는 나는 며칠 전부터 작심합니다. 주말에는 꼭 보고 말 것이라고. 연분홍의 꽃을 모조리 좋아합니다. 흰색과 분홍이 섞여 차근차근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지면 한 뼘 더 위로 솟아 새로운 꽃이 핍니다. 벌써 여러 송이의 꽃이 피었다 졌는지 주렁주렁 씨앗들을 매달고 한참 높은 꽃대 위에 꽃들이 피었습니다.


접시꽃은 나를 유년의 어느 뜰로 데려다 놓습니다.

오빠들은 어린 나를 떼어놓고 나가버렸습니다.

큰 오빠는 쌩하니 나가버리고

작은 오빠는 몇 번이나 뒤돌아보다가 나가버리고

나는 홀로 남아 서성이다가

그만 무서워져서

얕은 돌담을 넘어 옆집으로 놀러 갑니다.


옆집에는 서서방 할머니가 늘 집에 계셨으니까요

서서방 할머니는 우리랑 같은 최 씨입니다.

나는 서서방 할머니를 매일 보고,

서서방 할머니의 쌍둥이 딸들도 매일 보았지만

서서방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집 나가서 멀리 떠나버린,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은 왔다 간다는 서서방을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앉은뱅이가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게 어디냐며


앉은뱅이 서서방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곱게 핀 접시꽃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나를 보고는

어서 오니라, 오빠들이 또 너만 내삐고 가버렸냐


서서방 할머니는 나를 어여삐 여기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습니다.

서서방 할머니랑 나는 마루에 앉아 그저 별말 없이

마당 한귀퉁이에 피어있는 꽃을 바라보았습니다.


서서방 할머니의 딸이 결혼을 하고 다시 자녀를 낳고, 그 자녀가 훌쩍 커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얼마 전 바람결에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서서방 할머니는 여전히 그곳 그 툇마루에 앉아 접시꽃을 보고만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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