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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셀 와이프, 브레이크 남편

by 향기로울형

모처럼 외국여행을 가려고 했더니...

큰 아들의 대학 학자금에 기숙사비, 예고에 편입하고 싶다는 작은 아들이 붙으면 내야 할 대학 학비 못지않은 수업료, 그리고 학원비까지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금 고지서도 날아왔다고. 열심히 모은 돈으로 여행비를 냈다고 하니, 이번엔 가정의 전체 상황을 외면하고 딴 주머니 찬 사람 취급이다.

***

2020년 2월에 베트남에 놀러 갔었다. 그때 뉴스에서 정체 불명의 전염병이 나타났다는 기사가 나왔다. 코로나19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아는 끔찍한 세월이 흘렀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치렀다는 할머니 세대처럼 전쟁 같은 세월이 지나갔다. 코로나 시기를 잘 살아남았지만 그 끝 무렵에 혹독한 병에 걸려 투병을 해야 했다.

2023년 1월, 나는 여행을 가고 싶었다. 수술을 앞두고 후딱 다녀오면 된다고 우겼지만 남편은 말도 안 된다며 취소를 주장했다. 여행사도 사정을 말하니 바로 '쾌유를 빕니다'라는 응원 메시지와 함께 100퍼센트 환불 처리를 해주었다.

2024년 2월, 복직을 한 달 남겨두고 나는 여행을 가고 싶었다. 이제 정말 괜찮으니 가도 된다고 우겼다.

"그런데 병 휴직이면 여행 못 가는 것 아니야?"

"왜? 이제 다 나았는데?"

문의해 보니 병 휴직 중에 다 나으면 복직을 해야지 여행을 가면 안 된단다.

복직을 해서 나는 바쁘고 큰 아들이 군대를 가는 바람에 국외 여행은 한참 동안 잊히고 말았다.


그리고 드디어 2025 여름이 되었다. 큰 아들은 제대를 하여 우리 가족은 완전체가 되었고, 나는 건강하다! 그러니 내가 외국 여행을 가겠다고 덜컥 예약을 한 것은 정말이지 순리이고 사필귀정이며 해피엔딩인 것이다!

여행을 잡은 것도, 비싼 호텔을 잡은 것도 절대로 즉흥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다. 큰 아들의 스케줄과 작은 아들의 스케줄을 피해 고르고 고른 일정에, 더위를 싫어하는 세 사람의 취향을 저격하여 고르고 고른 여행지이다. 그러니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으로 사고를 친 것은 아니란 말이다.


맨날 내가 하는 일에 브레이크만 거는 남편님아.


- 맨날 악셀만 밟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당신의 부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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