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아이
- 채0 이야기
채는 우리 반은 아니고 내가 교과 수업을 들어가는 반 학생이었다. 다리가 안 좋아서 휠체어로만 이동이 가능한 학생이었다. 1학년이었던 전 해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아 선생님들도 그 얼굴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한창이어서 모두들 학교에 나올 수 없게 되자 채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생겼다. 쌍방향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어 집에서도 수업을 참여할 수 있게 되자 컴퓨터로나마 얼굴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온라인 수업은 특이한 매력이 있었다. 아이들이 카메라를 끄고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수업을 라디오 수준으로도 안 듣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학교 수업보다도 더 내실 있게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조용한 집에서 선생님이 하라는 활동을 하고 과제방에 그 결과물을 올리면 다 같이 그것을 볼 수 있어서 수업을 열심히만 듣는다면 훨씬 매력적인 활동이 되기도 했다. 학생의 발표를 들을 때도 떠드는 아이들의 소음이 없어서 교사인 나와 발표하는 학생 사이에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는 뭔가 진솔하게 흘러가는 맛이 있었다. 채가 하는 말이 그랬다. 차분한 말투와 조리 있는 말솜씨가 생각이 깊고 책을 많이 읽는 아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어떤 아이일까, 만나고 싶다. 출석부용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채가 길고도 험한 수술을 거쳐 이제 휠체어에서 일어나 목발을 짚는 것을 병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엄청 위험한 수술이었고, 또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수술이라고 했다.
“물론 목발로 이동하는 게 많이 힘드니까 학교에서는 거의 휠체어를 타긴 하겠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사이에 수업도 대면수업으로 바뀌어서 채이도 등교하게 되었다.
교실 제일 뒤에 앉아 있는 채는 단발머리에 눈이 왠지 슬픈 듯 아름다웠고 얼굴은 수려하다는 표현이 어울려 중2치고는 성숙한 느낌이었다. 선생님들은 채의 반듯하고 진지한 수업 태도를 칭찬하며 잘 됐다, 잘 됐다, 기뻐했다. 그러나 두 주쯤 지났을 때 채의 등교가 퐁당퐁당, 어느 날은 오고 어느 날은 오지 않는 양상을 띠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1년 반이 지나 처음으로 등교하자 여러 아이들이 도우미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으나 휠체어를 밀고 화장실, 급식실, 특별실, 이리저리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채는 자신이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아이들과 친해지기도 전에 들었기 때문에 결국은 서먹한 채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학교 오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줄었다고 했다. 체력적인 문제는 말해서 무엇하랴…….
학교에 멀쩡히 다녀도 쌓이는 게 수행평가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국어의 경우만 봐도 책 한 권을 모두 읽고 써야 하는 독후감이 밀려 있었다. 그런데도 채는 차분히 안내를 듣고
“네, 해볼게요.”
혹은
“시간을 더 받을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다.
교무실 테이블 곁에 앉아서 ‘자화상’이라는 시 창작 수행평가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그림을 내내 그리고, 노래를 많이 듣는다는 아이는 자꾸만 듣는 노래가 어두운 쪽으로만, 그리는 그림이 기괴한 쪽으로만 흘러서 부모님을 근심케 했다는 아이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온라인 수업 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에 죽음을 비유한 노래를 소개하여 안쓰럽게 했던 아이. 그러한 어두움과 조용히 맞서서 견디고 있는 이 아이.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넌 정말 특별해. 다른 아이들은 겪어보지도 못한 일을 넌 겪었고 견뎌냈으니까. 견디는 것만으로도 위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