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말들

by 향기로울형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 버전으로만 살아본지라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신이 어떤지 알 방법이 없다. 나를 비추어 상대를 판단할 뿐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주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내색을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상처를 받지 않는 무던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 나는 정말 소중하거나 절실한 것은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정말 좋아했던 사람이라든가, 무엇인가 정말 소중했던 것을 잃어버린 것이라든가, 크나큰 실패담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그러니 글쓰기란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이 없는 외롭기 짝이 없는 유일한 친구가 되어 나를 그나마 지탱하게 해 주는 힘이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찾는 도서관은 내 약점을 아무리 털어놓아도 괜찮은 친구를 만나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나는 내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내 약점을 들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남편 앞에서도 울지 않는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 사이가 다섯 살 터울이나 되었던 것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 그 사이에 잠깐 내 안에 자리 잡았다가 떠난 작은 생명. 의사 선생님에게 그 생명이 더 이상 지탱되지 않으므로 수술 날짜를 정하여 보호자와 함께 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나는 차 안에서 홀로 울다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집에 들어갔다. 수술은 몹시 아팠으나 나는 얼마나 슬펐는지 남편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슬픈 일이 있었을 때도 남편은 지레짐작으로 내 슬픔을 가늠하고 이해하고 위로하려고 했으나 나는 고개를 돌리고 시큰둥한 말투로 말했을 뿐이다.

한 번은 남편이 이렇게도 말했다. 감정을 못 느끼는 사람이 사이코패스인 거래. 나는 자기가 너무 감정 표현을 안 하니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니까. 남편이 농담처럼 말했는데 나는 가슴이 쿵하여, 남편을 바라보았다.

나는 감정을 못 느끼는 게 아니라 표현을 못하는 거야.


내가 외면한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이 터진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준다고 생각했던 남편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갑자기 온 세상이 나를 그렇게 보겠거니 하는 생각에.

힘들어도 잘 견디고 있으려고 노력하는 가련하고 불쌍한 한 사람이

온 세상이 어둡게만 느껴지지만 아무도 탓하지 않으려고 홀로 외롭게 견디고 있는 한 영혼이

표현하지 않으므로 알 방법이 없으니 그 결과 값도 어쩔 수 없이 내 몫이라는 것을 인정, 또 인정하는 이 못난 사람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이제 와서 아이처럼 울 수도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말할 수도 없다. 그리하여 버려진 말들을 적어본다. 꾹꾹 눌러두었으나 아직도 떠오르는 감정의 언어들.

- 자기야, 우리 아기 잘못되면 어떡해? 나 너무 슬프고 두려워.

- 자기야, 우리 엄마 너무 불쌍해서 어떡해? 나 너무 견디기 힘들어. 직장에 나갈 힘도 없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사람들이 하는 위로가 분명히 고맙고 감사한데 오히려 슬픔이 더 커지기만 해.

- 둘째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나는 그 애가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선생님들에게 하찮은 아이 취급받을까 봐 잠이 오지 않아.

-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스트레스가 천적이라는데 이런저런 걱정들로 다시 병이 재발하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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