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민하가 이렇게 속상한 표정일까?”
주머니에 손을 넣은 자세의 긴 그림자, 낮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는 담임선생님이다. 들키면 안 돼. 선생님 앞에서 나는 밝고 예쁜 아이여야 하잖아.
“아니에요.”
용수철 인형이 튀듯이 벌떡 일어나 씩씩하게 말했지만 내 말끝이 뭔가 물먹은 듯 무거웠다. 벤치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 내 뒤에서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언제든지 열려 있으니 말하고 싶을 때 찾아와!”
나는 토론 수업 때 소연이의 표정을 떠올리자 먹구름이 낀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4교시 국어 수업의 토론 주제는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우리 조는 선의의 거짓말은 괜찮다는 입장이었고 소연이네 조는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라는 입장이었다. 우리 조를 대표해서 내가 발표했다.
“제가 예를 들어 말해볼게요. 여러분이 친구 집에 놀러 갔어요. 친구 엄마께서 떡볶이를 만들어주셨어요. 그런데 맛이 없었어요. 아줌마, 이 떡볶이 진짜 맛없어요. 누가 이렇게 말하겠어요? 그냥 친구 엄마의 정성을 생각해서 배려하는 마음으로 거짓말을 한단 말이에요. 그냥 웃으면서 맛있다고 하면 친구 엄마는 기분이 좋으실 거고, 자신감도 붙고, 요리 실력도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의의 거짓말은 좋은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나의 말에 박수를 쳤다.
‘그렇지. 나는 매사에 흥분하지 않는 침착한 말투가 장점이라고 우리 엄마가 그러셨어.’
내가 뿌듯해하고 있을 때, 소연이가 벌떡 일어섰다. 소연이는 나보다는 한 옥타브 정도 높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거짓말 때문에 엄마들 요리 솜씨가 늘지 않는 겁니다. 정확하게 진실을 밝혀야죠. 그 거짓말은 아줌마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이 착한 아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싶은 거 아닌가요? 아줌마가 상처를 받더라도 그 떡볶이가 왜 그렇게 맛이 없는지를 알려줘야 합니다. 달지 않다, 짜다, 맵지 않다. 왜 이야기를 못합니까? 팩트가 그 아주머니를 발전하게 할 것입니다.”
소연이의 발표가 끝나자 아까 나에게 박수를 쳤던 아이들이 ‘와, 어느 쪽 편을 들어줘야 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께서는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셨다.
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소연이가 다가왔다.
“야, 회장. 너는 인생을 그렇게 사는 거야? 적당히 거짓말 슬슬 하면서?”
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음? 토론 때 했던 발언을 이렇게 꼬투리 잡는다고?”
“아니, 그렇잖아. 나는 속마음을 숨기고 사는 애들은 딱 싫거든. 네가 그런 스타일인가 확인해 보는 거야. 6학년이면 이제 교우 관계도 잘 관리해야 할 나이니까.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거라, 친구 잘 사귀어야 된다고.”
종례를 하시는 선생님 덕분에 말이 길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소연이는 말이 명쾌한데 가끔 상대를 벨 것 같다. 슬픈 것은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소연이랑 나는 5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다. 소연이는 성격이 쾌활하여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절대적으로 인기가 많았다. 소연이는 일초의 틈도 없을 만큼 빡빡하게 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음악이면 음악, 체육이면 체육, 못하는 게 없다. 그 아이에 비하면 나는 느슨한 편이었는데 정작 나는 수학과 영어, 그리고 피아노만 다녀도 벅찼다. 소연이의 그 얄미울 만큼 열심인 것은 부럽기도 하고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다.
“모여, 모여. 퀴즈 놀이 하자!”
소연이는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면 아이들을 모아 퀴즈 놀이를 하자고 했다. 문제가 끝까지 나오지도 않았는데 소연이가 정답을 맞히는 바람에 친구들은 자주 약이 올랐다. 나도 몇 번 당하고 나니 집에 가서 저절로 책이 펴졌다. 덕분에 나는 5학년 2학기가 되어서 숙제도 꼬박꼬박 잘하고, 시험도 곧잘 보는 모범생이 되었다.
6학년이 되자마자 학업성취도평가를 봤는데 내가 반에서 1등을 했다. 선생님이 그 사실을 아이들 앞에서 말씀하셨고 그것으로 인해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절대 아니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가 나를 회장 후보로 밀어붙이게 되었고, 나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침착 모드를 유지하는 바람에 회장이 되고 말았다. 엄마는 내가 5학년 2학기부터 공부에 바짝 열을 내고, 6학년 첫 시험에서 1등을 하고, 마침내 회장이 되자 표정이 밝아지셨다. 그런 엄마의 기대 때문이라면 비겁한 변명이겠지?
문제의 시작은 수학시험이었다. 수학 단원 평가에서 갑자기 복잡해진 소수의 나눗셈 문제에 막혀서 문제를 4개나 못 풀었고 그나마 푼 문제도 두 문제나 틀렸다. 70점짜리 시험지를 받았을 때 아이들이 볼까 봐 얼른 가방 안에 넣었다. 그리고 집에 왔을 때 시험지를 서랍 안에 넣었다.
‘기회 봐서 보여드려야지’.
서랍을 닫는 순간, 부스럭하고 시험지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다시 열었을 때 시험지가 안 보였다. 시험지가 어둡고 먼지가 쌓인 서랍 안쪽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숨길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시험지를 세 장이나 그곳에 숨기게 되었다. 수학, 역사, 또 수학.
문제는 그 숨 막히는 나의 비리를 소연이가 알고 있다는 거다. 수행평가 준비로 소연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이 말 저 말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소연이에게 말해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소연이가 쾌활하고 너그러운 친구인 줄만 알았다.
국어 시간에 배운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이 이렇게 잘 이해될 줄이야. 소연이가 ‘적당히 슬슬 거짓말하는 인생’이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 말이 ‘시험지를 숨기는 거짓된 인생’이라는 말로 들려 가슴이 뭐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야. 나는 그냥 거짓말쟁이야.’
이런 생각에 나는 다시 벤치에 주저앉고 말았다.
“자, 드디어 다음 주면 수학여행입니다!”
선생님이 조회시간에 신나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외쳤다.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같은 방에서 자면 좋겠죠?”
“네!!!!”
“한 조는 6명 정도. 7명까지는 괜찮은데 넘는 건 곤란해요. 조별 미션도 걸린 문제니까 신중하게 짤 것. 소외된 친구 없도록 배려하는 아름다움도 보여줄 것! 다 구성된 조는 회장에게 명단을 넘기세요.”
선생님이 조회를 마치고 교실을 나서자 아이들은 선착순 게임을 하듯 소란해졌다.
‘6명? 딱 맞겠다. 지우가 친구가 없으니까 지우를 끼워줘도 좋을 듯하고.’
내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소연이가 종이쪽지를 책상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깔끔한 글씨체로 모둠 이름이 씨즈걸스(c’s girls)라고 쓰여 있었다. c? 소연이의 성이 최 씨니까 최소연의 소녀들이라는 말인가? 그런데… 내 이름이 없다. 그것 말고는 내 머릿속을 들어갔다 나온 듯이 이름이 정확히 일치했다. 지우가 들어있는 것까지. 나만 빼고?
“어쩌지? 소연이가 너랑 같은 조 하기 불편하다고. 너랑 같이 할 사람은 조에서 빼줄 테니까 미리 말하라는데… 너는 지수네랑도 친하니까 괜찮지?”
연지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같이 못해서 아쉽다는 말은 진실이겠지만 연지는 포기하고 싶지 않을 거야. 소연이가 준비하고 있는 이벤트와 수학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걸그룹 댄스 말이야.
“어… 괜찮아. 난, 회장이잖아. 인원이 부족한 모둠에 들어가면 돼.”
‘아! 또 거짓말을 하고 있네.’
나는 내가 한 말을 마치 소연이가 된 것처럼 꼬집고 있었다.
연지는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엄지를 번쩍 추켜세웠다. 그런 연지를 바라보며 나도 웃어주었다.
나는 2조가 되었는데 남자아이들이 ‘이 조 뭐냐조’라고 별명을 붙이며 놀렸다.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남몰래 걸그룹 댄스를 연습해 왔던 것은 억울함의 이유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소연이가 나를 두고 했다는 그 말, 같이 하기 불편하다는 말! 그 말만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거짓말쟁이라서 그런 거니?’
수업이 모두 끝나자 소연이와 아이들이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나는 청소시간이 지나고 담임선생님께 갔다. 선생님께 이야기할 것이 많았다. 모둠 구성도 말씀드려야 하고, 청소시간에 남자아이들이 싸운 일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 애들이 싸우느라 하지 못한 청소를 내가 대신했다는 말은 하지 못할 거야. 나는 내가 겪은 손해 같은 거 이야기 못하는 아이니까……. 그것도 거짓말인가?
“정민하, 어서 와. 잠깐 앉을까?”
교무실에 들어가자 선생님은 나에게 자리를 내주셨다.
“모둠은 이렇게 해서 다 정리가 되었고요. 장기자랑 사회도 정해졌고. 그리고 레크리에이션은 민경호가 준비한대요.”
나는 미리 준비한 대로 수학여행 계획을 말씀드렸다.
“음… 정민하, 너무 잘하려고 힘든 거 아냐?”
“아니에요.”
“근데 너 평소에 친한 애들이 1조 애들 아니었어? 너만 똑 떨어진 것 같은데? 좀 아쉽겠다. 네가 원해서 그런 거야?”
“……”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내 눈에서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저런…”
‘멈춰, 제발…….’
나는 속으로 외쳤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은 가만히 옆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시험지를 숨겼던 것, 소연이에게 그 비밀을 공유했던 것, 처음에는 그것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던 소연이가 어느 순간 나를 차갑게 대했던 것까지 모두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 와중에도 소연이를 나쁘게 말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나 자신을 느꼈다. 왜? 친구를 고자질하는 나쁜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아서?
“저는… 저한테 친절한 아이들에게 잘해줘요. 문제는… 저한테 친절하지 않은 아이들한테도 최선을 다해서 잘 대해줘요.”
“그래. 그게 문제야?”
“네! 그게 문제예요. 저는 거짓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서랍 속에 숨겨놓은 그 시험지처럼 말이에요! 저는 제가 어떤 아이인지 모르겠어요.”
"......"
선생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으셨다. 그러다가 이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따뜻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민하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야. 그것을 거짓되다고 문제 삼은 사람은 민하의 착한 마음을 보는 눈이 없는 거야. 사람마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달라. 강요할 수는 없지.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 때문에 널 괴롭히지는 마. 선생님이 볼 때 민하는 아무 문제없어.”
나는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눈은 젖어 있었다. 그 눈은 이제 고작 열셋 먹은 아이에게 대충 하는 위로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혼란과 슬픔을 그대로 느끼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그 혼란에서 일어서기를 바라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시험지는 말이야. 70점이 뭐 부끄럽다고 숨기고 그러냐. 나는 50점 받은 적도 있는데. 나는 숨긴 것도 아니고 아예 찢어버렸어. 그때 엄마한테 효자손으로 되게 맞았는데. 너는 얼른 말씀드려라. 숨기는 게 더 괴로워.”
나는 교무실을 나섰다.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 가파른 길, 가로수가 없어서 유난히 더운 그 길이 오늘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선생님 말씀이 맞아. 친구 엄마의 떡볶이가 맛이 있다고 말한 건 거짓이 아니야. 겉으로 봤을 때는 맛이 없는 게 사실이겠지만 나는 그 엄마의 진실을 본 거라고. 딸과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 그건 맛 그 이상이라고! 그것을 볼 줄 아는 따뜻함이 나에게 있었던 거라고!’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집으로 달려갔다. 집으로 뛰어 들어간 나는 서랍을 벌컥 열어 시험지를 꺼냈다. 구겨진 채 먼지 쌓인 시험지를 펼쳐서 엄마께 드렸다. 엄마는 처음에는 눈이 동그래졌다가 얼마 되지 않아 상황을 이해하신 것 같았다. 엄마는 잠깐 시험지를 바라보며 멈추었다가 살짝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엄청 화내실 거야.’
어떤 벌이 내릴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내 앞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웃는 게 아닌가?
“우리 딸, 이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겠네?”
엄마는 70점밖에 못 맞아서 보여드리지 못한 내 마음을 모두 이해한다는 듯 두 팔을 벌려 안기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엄마 품에 쏙 안겼다.
일주일간 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 소연이도 별다른 표현을 하지 않아 오히려 이전보다 정돈된 느낌이었다. 수학여행은 관광, 조별 미션, 그리고 밤에 하는 장기자랑 모두 즐거웠다. 썰렁할 것 같았던 우리 방은 다른 방 아이들이 와서 노는 바람에 특별하게 즐거운 방이 되었다. 그동안 친하지 않았던 아이들도 함께여서 새로웠다.
소연이네 걸그룹 댄스는 기대 이상이었다. 의상도 맞춘 것처럼 보였다. 길고 가느다란 몸매에 하얀 티셔츠와 헐렁한 배기바지가 예뻤다. 춤출 때 흩어지는 머리카락의 움직임이 조명에 반짝였다. 댄스가 끝나자 사회를 보기 위해 나는 얼른 뛰어나갔다.
“여러분, 방금 블랙핑크와 뉴진스의 뒤를 이을 새로운 걸그룹이 탄생했네요. 그 이름은 씨즈걸스(c’s girls)입니다!!”
아이들의 환호성에 젖어 소연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소연이가 환하게 웃었다!
수학여행 마지막날, 바다가 보이는 언덕길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소연이가 다가왔다. 나란히 앉아 멀리 바다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소연이는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응?”
“음… 네가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불편했던 건 너 때문이 아니었어.”
소연이는 내가 자기 엄마 같아서 싫었다고 했다. 최근 소연이네 부모님이 이혼을 했는데 이혼 사실을 밝힐 때까지 두 분 사이가 안 좋은 줄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렇게 된 건 1년도 더 됐다는데, 그 사이에 영화관도 가고, 워터파크도 가고, 외국 여행도 갔는데 부모님은 감정을 철저히 숨겼다고. 부모님이 자신을 바보로 만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항상 친절한 널 보면서 엄마처럼 나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 다시는 속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어제 장기자랑을 마친 후 널 봤는데 날 향해서 웃고 있는 거야. 난 그때 느꼈어. 소연이 넌 정말 좋은 아이라고……. 괴롭혀서 미안해…….”
소연이의 말끝이 이렇게 흐려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대답 대신 진심을 담아서 소연이를 꼭 안아주었다. 나는 왠지 소연이 엄마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연이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말이다.
“아! 나, 시험지 엄마한테 보여드렸어. 네 덕분에 말이야. 고마워.”
소연이가 웃으며 잘했다고 박수를 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