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아버지는 내게 늘 보잘 것 없는 것을 주는 사람이었다. 중학생이 된 내게 초등학생들이나 차는 시계를 선물로 주었다. 디자인은 둘째치고 끈 길이가 짧아 여자아이인 내 손목에도 간신히 채워지는 것이었다. 받아들기는 했으나 고맙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 번을 차다가 친구들의 얄쌍하고 예쁜 시계와 비교되어 차라리 없는 것이 편하여 집안 어디에 두어버렸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점퍼를 사왔는데 남대문 시장에서 3000원쯤 하는 비닐 점퍼였다. 가죽도 아닌 것이 너무나 없어 보여서 평범한 티셔츠가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옷을 입었다.
어떨 때는 누군가 신던 신발을 가져왔다. 발 사이즈가 나보다는 조금 컸는데 그 역시 말없이 받아서 신다가 어느 날 문득 서러워지면 남몰래 집안 어디에 던져두었다. 그 모든 순간에 나는 한 번도 그에게 왜 그따위 것을 사오느냐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네, 하고 받았을 뿐이다.
어려서부터 익숙해진 무엇인가 부족한 아버지. 그에 대한 나의 적응 방법은 이것이었다. 아버지는 울타리 같은 존재라고. 만약 내가 아버지가 없다 치자. 그럼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괴로울 것이 아니냐. 뭐 이런 거.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그런데 오늘 새벽 문득, 발상의 전환이 왔다.
시계를 샀던, 점퍼를 샀던, 누군가 신던 신발을 가져오던 그날의 아버지가 갑자기 그려졌다.
주머니가 가벼운 아버지가 남대문 시장을 기웃거린다. 주머니에 든 얼마 안 되는 돈을 손끝으로 세며 이제 중학교에 들어간 막내딸을 떠올리며 얄쌍하고 예쁜 시계의 값을 묻고, 머뭇거리고, 가게를 나섰다가 다시 돌아가서는, 눈에도 안 차는 시계를 가리키며 물었을 거다.
“그건 얼마요?”
좋은 것을 보는 눈이 왜 없겠느냐, 돈이 없었던 거지.
비닐 점퍼도, 남이 신던 신발도 아마 그런 식으로 내게 왔던 거겠지.
아버지는 내게 늘 보잘 것 없는 것을 주긴 했지만 발상의 전환으로 보니 그는 늘 내게 뭔가를 주고 싶었던 아버지였다.
어려서도 나는 성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도통했나보다. 지천명, 무서운 나이다.
그 눈으로 바라보니 아버지가 주신 것 중에 히트 친 것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첫번째는 지금 집으로 이사온 날 선물로 주신 제라늄 화분이다. 8년째 꽃을 피운다. 계절에 따라 피는 게 아니라 일년 내내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지면 새 꽃대를 내어 꽃핀다.
두번째는 이번 어버이날에 친정에 갔을 때 사주신 호떡이다. 굳이 시장으로 딸, 사위, 손자를 끌고 가서 맛있다며 돌아가는 차 안에 넣어주셨는데 출발하고 5분도 안 되어 나와 아들들이 맛있게 다 먹었다. 아쉽게도 사위는 먹지 못했다. 운전하는 사이에 둘째 아들이 아빠꺼도 먹어버렸다. 그럴 줄 알았으면 권하시는 대로 여섯 개를 받아오는 건데. 아쉬웠다.
세번째는...내가 백수가 되고서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한겨울에 지리산 종주를 나섰을 때다. 아버지는 말없이 코펠과 침낭을 찾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