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문학 시간에 시의 표현에 대해 수업하다가 '인생'을 은유로 표현하기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학생에게는 맛있는 빵과 우유, 아이스크림으로 구성된 매점 풀코스를 선물로 드립니다~"
부끄러움 많은 아이는 문학 책에 일찌감치 적어놓고 언제 선생님이 자기 주변에 들러주시나 눈치만 살살 보고, 껄렁껄렁한 남자아이들은 창밖을 쳐다보며 머리를 굴린다. 얌전한 여진이는 인생은 일기라고 썼다. 각자 자기만의 비밀이 많으니까라고 이유를 밝혔다. 어떤 아이가 공감~하고 외친다. 칠판에 여진이 것을 적었다. 공감을 받으면 일단 후보에 올린다. '아, 나올 것 같은데...' 하면서 머리를 긁던 한 남학생이 말한다.
"선생님! 인생은 다리털입니다"
아이들은 '응? 뭐야?' 하는 표정을 짓는다.
"해석을 들어보세요. 다리털이 보기 흉하잖아요. 그렇다고 뽑자니 얼마나 아파요. 절대 못 뽑습니다. 인생도 그래요. 살기에 힘들어도 절대 못 죽습니다. 자, 자 공감! 공감해야지"
자기가 말해놓고 공감을 유도하느라 주변 친구들을 둘러본다. 어떤 여학생은 인생은 백지라고 썼다. 자기가 그리기 나름이라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것을 쓴 여학생은 정말이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것 같았다.
그때, 우리 반 만년꼴찌인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규는 진짜 꼴찌처럼 생기지 않았다. 새하얀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띠면 여학생들이 호감을 갖는 아이다. 말 수도 적고, 그렇다고 말썽을 부리지도 않는다. 글씨도 안 써서 그렇지 써놓은 걸 보면 단정하다. 그런데도 꼴찌다. 문제는 만성적인 무기력이다. 싸워도 보고, 상담도 해 보고, 엄마도 와 보고, 아빠도 불러봤다. 말이 없고 쓸쓸한 표정은 아빠를 닮았더라. 아빠는 말없이 죄송합니다, 조금 더 기회를 주세요, 선생님이 조금 더 보듬어 주세요, 나지막한 소리로 부탁하셨다. 규에게 조금 더 잘해보겠다는 억지 다짐을 받고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도 항상 늦은 시간에 어슬렁어슬렁 나타난다. 그리고 이유를 물어도 말이 없다. 해 봐야지 하는 것도 없다. 댄스를 배우겠다고 하는데, 축제 때도 좀 끼는가 싶더니 어물쩍 뒷전으로 물러나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런 규가 수업시간에 손을 든 거다.
"그래, 0규!"
"저도 해도 돼요?"
"물론이지."
"인생은 일회용 컵이에요"
"왜?"
"한 번밖에 쓸 수 없잖아요. 한 번 성공하면 성공이지만 실패하면 다음이 없어요. 그게 다죠."
잠시 아이들 사이에 숙연한 기운이 돌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말했다.
"공감"
가슴이 서늘했다. 다른 사람이 말을 했다면 "오~~ 그럴싸하군"하고 말할 것을 규가 그 말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규야, 한 번뿐인 인생이 이미 실패했다고 생각하니? 이제 너에게는 다음이 없는 것 같니?'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제 장원을 정할 차례다. 장원은 아이들이 박수로 결정한다. 후보작이 지명될 때 아이들이 박수를 치면 내가 그 인원수를 세면 된다. 이 방법은 사실, 문학성이 떨어지는 작품이 장원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문학의 큰 미덕 아니냐.
규가 장원이 되었다. 아이들은 말은 안 하지만 각자 자신의 인생이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지는가보다. 외줄 타기처럼, 이번 시험을 망치면 인생이 크게 비틀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내일모레면 고3이 되는 아이들이 아니던가.
규는 나의 온갖 협박과 회유 속에서도 '무기력'을 유지하며 고3으로 진학했다. 부모님은 규가 고등학교만 제대로 졸업해 주길 바라셨으니 성공이 눈앞에 있는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규를 복도에서 만났다.
"오랜만~"
"선생님, 저 대학 붙었어요~"
기뻤다. 펄쩍 뛰며,
"정말? 축하한다~"
"대학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학과는 좋은 과예요"
"그래 그래 대학 가서 공부 열심히 해라~~"
관광과 관련된 학과라고 하니, 규와 잘 어울릴 것도 같다. 어쨌든 다시 에너지를 얻어서 열심히 살길 바랄 뿐이다. 규야, 한 번뿐인 너의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