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그분들'이 있지만, 그 사건들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으려 한다. 때로는 억울했지만... 자식을 애틋해하는 인류 공통의 모성애와 성취지향적인 승부근성이 뒤섞인 극단적인 모습들이지만 그 시작이 '엄마'라는 사실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친정 엄마는 내게 늘 말한다.
"너는 참아서 병이 되는 거야. 억울한 일이 있으면 집에 와서라도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이불 뒤집어쓰고 베개라도 두들겨 패."
"엄마, 그럴 만한 일도 없어. 그리고 화를 내면 낼수록 더 힘들어지던데."
화를 내지 않는 나의 오래된 이 습성이 결국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패배주의에 해당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나를 더 불행하게 한다는 것을 알기에 '회피 전략'을 쓰는 것일 뿐이다.
"아휴, 세상에. 저런, 안 됐다."
악성민원에 시달렸다는 어느 초등학교 교사의 슬픈 소식을 들으면서는 내가 맨날 뉴스 보면서 하는 그 소리가 안 나온다. 이런 말은 남 일에나 하는 것인 것을 깨달았다. 그 선생님 이야기를 보면서는 그냥 마치 내 이야기가 소개되는 것만 같아서 아무런 말도 않고 숨만 쌕쌕 쉬는 것이다.
"그 심정 100퍼센트 이해해요."
친한 선생님이 말했다. '그 심정'이라 함은 초등학교 그 선생님의 상황과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교직생활에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다. 다만 그런 일이 있었을 때 누군가가 다독였더라면 괜찮았을까. 그 일은 일시적인 것이고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므로 잠시 숨고르고 내 뒤에 숨어!라고 누군가 말해주었더라면...
교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학점을 따고, 임용고시 준비를 하고 어렵게 붙었기 때문에 교사들은 힘들어도 그만두지 못한다. 투자한 세월이 아쉽고, 그토록 되고 싶었던 열망이 아직 식지 않았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고용안정성에 괜히 어깨 한 번 으쓱 올라가는 것도 발목을 잡는다. 만약 교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면 교사들은 아마도 한 달 만에 그만둘 것이다.
나만해도 맨날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집을 손님이 아닌 사장님의 눈으로 힐끔거린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떡볶이 가게가 더 좋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