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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구두를 신은 Aug 18. 2023

일몰 2

"언니, 해지는 거 보러 가자"

선아가 성터를 향해 달린다. 

오래 된 성터는 산자락을 따라 지었는데

거인의 계단처럼 참이 크고 넓고 단단했다.


성곽 위에 앉아 해 지는 것을 구경한다.

열 셋밖에 안 된 생애도 서러운 게 많다 느낀다.

지는 해처럼 애달프다.


"봐, 여기에는 아직도 해가 있어"

두 개의 참쯤 올라가면 방금 지고 없던 해가 다시 보인다.

나란히 앉아 해를 보고 있을 때 선아는 무얼 했던가?


견고한 거인의 계단 이쪽 편은 무서운 절벽

내려다보면 안 돼!

절벽 아래에서 올라온 아카시아 가지를

손을 뻗어 뚝뚝 뜯어내는데 심장이 쿵 하고 무너진다.

선아가 흔드는 나뭇가지의 밑동이 너무 멀어 어지럽다.


지는 해를 또 보겠다며 선아는 맨발로 자꾸 올라간다.

"더 올라가도 이제 해는 보이지 않아.

나무도 해도 우리가 딛고 있는 견고한 성곽도 보이지 않잖아. 

내 신발은 어디에 있지?"


나뭇가지에 무엇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푸드덕 

산새 나는 소리가 난다. 춤추던 선아가 보이지 않는다.

하자 있는 여자의 딸 선아는 나를 버리고 집에 간 거지?

지금쯤 할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며 쌀을 씻고 있을 거야.


해는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신발, 신발을 찾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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