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황천
노식은 연일 장각의 본대가 주둔 중인 광종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장각이 직접 이끄는 군대는 그 어느 지역의 황건적 군대보다 훈련이 잘 되어있는 정예였지만, 북중랑장 노식이 이끄는 관군의 매서운 군세에 연일 패배하고 성 안에 갇혔으니, 시간은 관군의 편인 듯 했다. 노식은 여기서 한 번 더 이겨도 황건적의 잔당들이 기주 북부로 퇴각할 것이고, 그리고 그 곳에서 이겨도 유주로 연이어 퇴각하여 항전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이번 공성전에서 적을 패퇴시킨다 해도, 군의 피해가 막심할 것이고, 적들은 또 대병의 장점을 등에 업고 포위망을 뚫고 후방으로 군을 물릴 것이다. 이에 우리가 또 북진한다면 보급로가 길어질 것이고, 장병들 역시 지칠 것이니, 이는 용병의 근심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저들 대부분은 한황실의 백성들이기도 하지 않는가. 마땅히 저들을 지치게 하여 투항을 유도하고, 여기서 군세를 궤멸시켜야 한다.’
그 때, 황제는 노식의 승전보가 끊긴 것을 의아해하여 좌풍을 감군사자로 보내 군대의 규율과 전황을 살펴보게 했다.
“내 듣기로 중랑장께서 연일 승리하였다고 알고 있는데, 이후 사자가 당도하고 있지 않으니, 무슨 문제가 있소? 지존께서도 이 곳에서 지체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하십니다.”
“양 사도*39께서도 저들은 대부분이 우리 백성이니, 우두머리들만을 처단하는 게 상책이라 하셨소. 저들을 투항시킬 계책을 마련하는 중이니, 황제께 잘 말씀해주실 수 없겠소?”
“황상께서 나를 보내신 이유는 그런 변명을 가지고 오라는 데에 있지 않을 것이오!”
좌풍이 화난 듯 물러가자, 주변에서 간한다.
“저 자가 이 곳 상황을 모르고 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 돈을 원하는 것 같으니, 어느 정도 쥐어주고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한 행태 때문에 저들이 들고 일어난 것인데, 어찌 잘못을 반복하란 말이냐!”
노식은 주변의 간언을 일언지하에 물리치고, 계속 장각군을 와해시킬 방책을 구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며칠이 지나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당도하지 않자, 좌풍은 그대로 낙양으로 돌아가 황제에게 보고한다.
“노식은 무능하여 그저 황제께서 내려주신 병력을 놀리면서 요행으로 이기길 기다리고 있으니, 당장 소환하여 죄를 물을 것을 청합니다.”
“그게 사실이냐? 노식의 절과 인수를 걷고 정위*40에 의해 그 죄가 밝혀지게 하라!”
이에, 장각의 군세를 광종에서 와해시킬 계책을 강구하던 노식은 황제의 명령으로 함거에 실려 낙양으로 압송되었고, 그 후임으로는 하동 태수 동탁이 동중랑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노식 그 자는 시간을 끌다가 처벌을 면치 못하게 되었으니, 이번 전쟁은 속결로 끝내 황제 폐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작전계획을 보고하라.”
“전임 북중랑장께서는 적들이 여기서 패전한다 해도 대병으로 포위망을 뚫고 후방으로 도망갈 것을 염려하여 성의 포위를 유지하고, 적을 내부로부터 무너뜨리려는 계책을 궁리 중이셨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전쟁을 오래 지속하는 건 하책에 불과하다. 도적들이 뒤로 물러날 것이 염려된다면, 그 배후지를 끊으면 될 것 아니냐. 우리는 하곡양*41을 친다.”
“하곡양은 장보가 대병을 거느리며 지키고 있습니다. 자칫하다간 협공당할 수 있습니다.”
“황상께서 내게 병력과 작전권은 허락하셨으나, 시간은 허락지 않으셨다. 다른 수가 없느니라.”
동탁은 군을 정비하여 소규모 별부만을 남기고, 본대는 장보가 주둔중인 하곡양을 향하도록 하였다. 당시 동탁이 부임하였을 때에는 여남의 황건적이 괴멸 중이었기 때문에, 장각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고, 운이 따라준다면 여남에서 승리한 관군이 동탁의 뒤를 지키러 와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장보는 동탁이, 장각은 주준과 황보숭이 맡는 괜찮은 그림이 나올 것이었다.*42 그러나, 장보의 군대는 장각의 본대에서 차출된 정예로, 노략질이나 해대는 다른 지역의 황건적과는 크게 달랐다. 관군의 북상을 보고받은 장보는 그 즉시 장각에게 이를 알리며 계책을 전했다.
한 편, 장각 역시 동탁군의 북진을 알고 있었다. 장각은 어느 때와 같이 태평경을 읊으며 계책을 구하고 있었다. 이 때, 장보의 전령이 급히 당도하여 편지를 전하니, 향후 계책에 관한 내용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지난 날 노식은 앞으로 강경하면서, 뒤로는 우리 병사들을 회유하려는 계책을 쓰려 하였습니다. 비록 기주의 우리 병사들이 정예병이긴 하나, 전쟁에 경험이 없는 이상, 포위가 길어지면 필시 편안함을 구하게 될 것이니, 이는 우리에게 치명인 계책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허나, 그러한 계책은 대개 시간을 요하는 법입니다. 이로 인해 노식이 의심을 받아 파직되었으니, 이는 실로 황천이 당립하였음을 알리는 계시인 것입니다. 우리 군은 세 개의 큰 전선*43에서 적들과 치열한 교전 중이고,*44 우리와 같은 계시를 받은 오두미도의 무리가 파군에서 거병*45할 것이라 합니다. 이는, 나라에서 이 쪽으로 추가적인 출병을 할 여유가 없을 것임을 뜻합니다. 대세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때가 되면 날랜 자를 보낼 것이니, 동탁의 뒤를 치십시오. 그 때 호응하여 이곳의 대방 병력들도 그의 정면을 칠 것입니다.」
“하하, 내가 괜히 이 녀석에게 지공장군의 관호를 내린 것이 아니다!”
협공책이었다. 장각은 장보의 계책에 매우 만족하며, 포위망이 풀린 동안 쉬게 두었던 병사들의 소집을 명하여 하곡양으로의 출정을 준비시켰다.
노식에게 포위당한 뒤로 얼마만의 여유인가. 장각은 다시 태평경을 펼쳐 구절을 읊기 시작한다.
“생사는 천당의 명부에 달려있으니, 흑문*46을 쓰는 자들은 죽을 것이오, 청문을 쓰는 자들은 살 것이다.”
“청문자는 살 것이다!”
장각은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주위에 알릴 순 없었다. 그의 신도들은 태평경의 가르침에 따라 그가 영생을 하리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퍼지면, 군의 사기에 막대한 영향을 줄 것이 명백했다. 그가 남몰래 피를 토하면서도 약을 먹지 않는 이유였다. 만약 병으로 인해 약을 먹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병을 낫게 하는 그를 믿고 따르던 신도들은 이를 어찌 생각할 것인가. 그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청문자’는 살 것이라는 태평경의 한 구절 뿐이었다.
그 때였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전령이 숨을 헐떡거리며 장각에게 급보를 전하는 게 아닌가.
“천공장군께 인사 올립니다. 저희 여남 병력은 와해되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파재가 주준을 물리쳤다 하지 않았는가?! 영천 공략에 실패했는가?”
“황보숭이라는 자에게 대패하였습니다.”
“파재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리고 잔류 병력들은?”
“생사를 알 수 없습니다. 여남 일대 모든 대소방들은 모두 흩어졌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황보숭 그 자가 동군까지 북진하고 있습니다.”
“그 곳엔 우리의 완편된 3개 소방*47이 지키고 있으니, 당장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너는 지금 간편한 요깃거리를 받아 바로 동군의 복사에게 가라. 그리고 절대 싸우지 말고 성을 지키라 하라. 이 곳이 정리되면 구원 갈 것이다.”
여남 깊숙이 토벌하여 그 일대 황건적을 도륙 낸 황보숭과 주준은 논공행상을 알리는 칙서에 첨부된 황제의 명에 따라 각각 동군*48과 남양군*49으로 향하고 있었다. 주준의 병력은 앞선 파재와의 전투에서 대패하고, 그 이후 연이은 전투로 1만 2천 정도가 남아있었다. 강하도위를 지내다 새로 남양태수로 임명된 진힐이 적장 장만성을 죽였으나, 그 뒤를 이은 조홍은 아직도 10만 여 군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적을 토벌하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병력이었다. 주준은 급히 남양태수 진힐에게 전령을 보내 군을 합쳐 싸울 것을 요청하고,*50 집결지를 정하여 합류하기로 하였다. 진힐의 군세와 합류한 주준은 진힐의 군대를 보니, 역시 그 전열이 훌륭했다.
“도위부의 병사들은 일당백이라 하더니, 장만성을 벤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소.”
“과찬입니다. 적장을 베었다 하나, 아직 조홍의 무리들이 10만에 달하여, 적은 병력으로 고민하던 찰나, 군후*51의 편지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습니다.”
“붙잡은 포로들에 의하면, 조홍 그 자는 장만성과 다르게 지모가 있는 자라 하오. 내 일전에 과거의 군공을 믿고 파재를 얕보다 크게 패한 적이 있으니, 신중하게 임해야 할 것이오.”
“방책이 있으십니까?”
“적들이 점거하고 있는 완성이 비록 경사와 형주를 잇는 요충지라 하나, 10만에 달하는 군세가 먹을 식량은 충분치 않을 것이오. 이는 병서에 나오는, 적군의 수가 우리의 병사들을 압도할 때, 적들이 함부로 싸우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상황이오.*52 적들은 필시 모자란 군량을 채우려 약탈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니, 저들의 군대가 약탈을 하지 못하도록 성을 에워싸고, 적당한 시기에 대세에 따라 응변하는 것이 상책이오. 보급의 근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적들의 전략적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오.”
주준과 진일의 1만 8천 병력은 그 즉시 완성을 에워싸고 포위하기 시작했다. 장만성을 이은 대방장 조홍은 역시 주준의 생각대로 군량 문제를 고심하고 있었다. 매일 5천의 병력을 성 밖으로 내보내 인근 현을 약탈, 식량을 모으고 있었으나, 포위로 인해 더 이상 약탈조를 내보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조홍은 휘하 대소방장들을 모아 회의를 시작한다.
“큰일이다. 적들이 포위를 쉽게 풀지 않을 것 같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저들의 숫자는 불과 2만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대병으로 한 번에 몰아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다. 주준과 진힐이 이끄는 군은 각각 영천과 이곳에서 승리를 맛 본 군대들이다. 사기가 높을 때 치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그렇다면 야음을 틈타 동문으로 빠져나가 포위망을 뚫는 것은 어떻습니까?”
“여남의 우리 군대가 와해된 이 때, 이 곳까지 잃으면 우리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다. 어찌 천공장군님을 뵈려 하는가? 또한, 우리의 동쪽이 무너졌으니 우린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오늘부터 병사들의 배급량을 반으로 줄이고, 성의 경계를 더욱 방비하도록 하라. 적들도 결국 허점을 보일 것이다.”
황보숭과 진힐은 참호를 파고 매일 완성 내에 화살을 퍼부었다. 이는 병력 손실은 줄이되, 지속적으로 싸움을 걸어 성 내의 적들을 지치게 하려는 심산이었다.*53 적들은 관군에 비하면 노인과 아이, 아녀자가 포함된 가족 단위로 몰려다니는 도적들일 뿐이고, 보급도 충분치 않으니, 주준의 생각대로 시간은 관군의 편일 것이었다. 그러나 조홍도 만만치 않은 자였는지, 배급을 줄이며 항전하길 두 달이 흘렀다.
한 편, 조정에서는 주준의 장기전 전략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에 황제에게 주준을 탄핵해야 된다는 상소가 올라오니,
「주준은 과거의 공만 믿고 폐하께서 내리신 임무를 태만하게 행하고 있으니, 이는 마치 정위 앞에서 죄를 기다리고 있는 노식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즉시 주준을 파면하시고 새로운 인물로 대체하여야 합니다.」
황제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주준을 파직시키기엔 과거 그의 군공이 너무 크고, 그대로 두자니 달달한 승전보를 가져다 줄 다른 장수들만 못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황제는 사공 장손에게 이 문제를 묻기로 한다.
“진적중랑장 주준이 승리하고 있지 못하니, 그 군대의 여력과 힘이 다 소진된 게 아니겠소? 지휘관을 교체하라는 상주문이 올라왔는데 어찌 생각하오?”
“진의 백기와 연의 악의는 명장이라 일컬어지나, 그들조차 전쟁을 쉽게 끝내진 못했습니다. 그들 역시 치밀한 방책에 따르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으니, 때로는 해를 넘기기도 한건 그 이유입니다. 진적중랑장은 이미 영천에서 황건적을 격파하여 공을 세우고, 그들의 장점과 약점을 파악하여 비책을 마련했을 것이니, 기다려 보심이 어떠십니까?”
황제는 장손의 말이 옳다하여 주준을 믿어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주준과 진힐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니, 진힐이 걱정하여 주준에게 아뢴다.
“조정에서 우리에게 시간을 더 주지 않을 모양입니다. 지금은 잘 넘어갔으나, 시간을 더 끌면 필시 화를 당할 듯합니다.”
“나도 그 얘기는 들었소. 적들의 형세를 살펴보니, 이미 군량이 바닥나서 병사들이 서로의 것을 빼앗는 등 성 내 군기가 문란하다 하오. 적들은 필시 곧 성문을 열고 싸우려 할 것이오. 그 때까지 기다려야 되오.”
조홍은 역시 마음이 급했다. 배급을 줄인 지 두 달여 지나자, 병사들의 불만은 폭주했고, 그나마 남은 군량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조홍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 오늘 성문을 나가 적들을 무찌르고 치중을 노획하여 올 것이다. 한충! 내가 잘못되면 이 군세를 이끌어 끝까지 이 성을 지키도록 하라.”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곳의 상황을 적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필시 내가 나올 것을 저들이 알고 있을 것이니, 어찌 성공을 장담하겠느냐. 하늘에 맡길 뿐이다.”
이에 조홍이 병력을 이끌고 성문을 열어 관군에 대항하니, 주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거에 조홍군을 감싸 포위하였다. 이미 사기가 떨어질 때로 떨어진 황건적들은 포위가 되자마자 포위망을 뚫고 다시 성으로 도망가려 하기 일쑤였고, 조홍은 손쉽게 붙잡혀 처형당했다. 그리고 그 자리는 한충이 이어 항전을 계속하였다.
탁송지주
*39 양사는 당시 사도에서 파면된 상태였으나, 예우적 차원에서 지칭할 때, 과거 올랐던 가장 높은 관호를 붙이는게 일반적이었다. 참고로, 현 관호가 더 높더라도 전 관호가 명예로운 관호라면 과거의 관호로 지칭하기도 한다. 하후돈은 한나라 관호였던 복파장군 이후, 위나라 관호로 전장군을 받았으나, 그 뒤로도 계속 ‘하후복파’로 불렸다. 복파장군은 군호 상 전장군에 미치지 못하는 잡호에 불과하였으나, 한나라 마원, 노박덕 즉, 이복파사가 받은 명예로운 군호였기 때문이다.
*40 2천석의 구경 중 하나로, 지금의 검찰총장. 일반 백성들의 죄는 보통 현령이 취조하였으나, 중죄 또는 대신들의 죄는 정위가 취조하였다.
*41 장각이 주둔하고 있는 광종현보다 북쪽에 위치한다.
*42 그러나 결과적으로 주준은 남양으로 향하게 되고, 이는 사실상 동탁의 패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43 남양, 여남, 거록.
*44 당시에는 여남의 황건적이 대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전이다.
*45 184년 7월 오두미도 교주 장형의 거병을 뜻하는 것이다. 장형은 장로의 부친이다.
*46 원래 오색문채의 한 부류를 뜻하나, 보통은 타락 또는 반동의 의미를 가진다.
*47 6~7천명으로 알려져있다.
*48 연주.
*49 형주 북부.
*50 당시 주준과 진힐 중, 지휘관은 황제의 부절을 가지고 있는 주준이 맡은 것으로 보인다.
*51 제후를 예우하여 부르는 호칭. 당시 주준은 서향후였다.
*52 손자병법 허실 편
*53 실제 전쟁에서 전투로 인해 죽는 사상자들보다 추위, 두려움, 배고픔 등의 전쟁 스트레스로 사망하는 자들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