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각, 어느 슬픈 무정부주의자의 이야기 9화

대현의 별이 떨어지다

by 탁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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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곡양에서 장보군과 대치중인 동탁에게도 영천에서의 승전보가 전해졌다. 그러나 상황이 그의 계산대로 돌아가진 않았다. 황보숭과 주준은 장각의 본대가 아닌, 여남과 남양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큰일이구나. 나 혼자 장각과 장보의 두 대병을 상대하란 말인가.’


동탁은 초조했다. 장각의 본대를 뒤로 한 채 하곡양까지 올라온 이상, 이대로 퇴각한다면 분명 추격을 당할 것이고, 그대로 대치하자니 뒤가 불안했다. 그의 계산대로 주준 또는 황보숭이 동탁의 뒤를 지원하지 않게 되었으니, 광종의 장각이 보급로를 끊으면 큰 낭패에 빠지게 될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동탁은 골똘히 생각했다. 장환*54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떠한 묘책을 떠올렸을까. 십수 년 전, 장환의 지휘를 받으며 강족을 대파한 그 때를 떠올려본다. 적은 병력으로 대병을 상대하는 방안. 그러나 장환은 그 지역에서 위세를 떨치던 인물이라 위엄으로 굴복시키는 전략이 가능했으나, 이곳 하북에서 그는 외지인, 더 나아가 황건적의 봉기에 가담한 백성들에게는 침략군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역시 시간이 그의 편이 아니었다. 동탁은 결단을 내렸다. 즉시 부하들을 불러 명령을 내리니,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병기를 갖추고 출병 준비를 하도록 각 부에 명하라. 2개 부만 군영을 지키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 성을 포위한다.”

“포위하기엔 병사가 너무 적습니다. 조정에 원군을 요청하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애초에 조정에서 원군을 보낼 여유가 있었다면, 노식도 파직되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께서는 이 하나의 군대로 모든 걸 해결하길 원하시는 것이다.”

“승산이 있겠습니까?”

“적들에게 없고, 우리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기병이다. 장각과 장보의 군대가 도적떼 중에서도 오래도록 훈련을 해온 정예라 하나, 기병 전술은 단 시간 내에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병을 앞세우고 그 뒤는 내가 기병을 끌고 진군할 것이다.*55 적들은 우리 수가 적은 것을 보고 즉각 반격하려 할 것이다. 그 때 기병대가 적들의 후미를 공격한다.”


동탁은 강족들의 땅에서 나고 자랐고, 사적으로는 그들과 친했으며, 공적으로는 그들을 토벌한 전공도 있으니, 믿을 것이라고는 그가 체득한 강족의 기병 전술 뿐이었다. 황건적들이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하나, 강족의 기병술을 앞세운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 본 것이다. 또 한 가지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장각의 움직임이었다. 여남의 황건적이 와해되고 있으니*56, 장각도 쉽게 군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이미 장보의 서신을 품에 숨긴 전령이 장각의 군영에 도착하고 있었다.


장보의 전령은 급히 아문에 들어 장각에게 장보의 서신을 건넨다.


「듣자하니 동탁의 군영이 갑자기 부산스럽고, 사마 이상의 무장들이 급히 병사들의 군기를 점검하고 있다고 합니다.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 바로 2개 대방에게 명령을 내려 이곳으로 진군하게 하십시오. 그의 보급로를 끊으면서 협공한다면 그는 곧 포로가 될 것입니다.」


장각은 손뼉을 치며 그 즉시 대방장들을 불러 하곡양으로 진군하게 했다. 그 때였다. 또 다른 전령이 도착하여 비보를 전한다.


“조홍 대방장이 전사하였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장만성이 죽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조홍까지 죽었단 말이냐!”

“각 방은 한충 대방장이 정돈하여 문제 없으나, 식량이 부족합니다.”

“얼마나 버틸 것 같으냐?”

“사실 지금 이미 완성은 우리의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이어 전령이 도착하더니,


“큰일입니다! 동군의 소방장 복사가 황보숭에 패해 사로잡혔습니다!”

“군대는 누가 이었느냐 양중녕은? 장백은?”

“소방 하나가 전멸하고,*57 나머지는 모두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두 소방장도 모두 사로잡혔습니다!”


이에 장각은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었다.


안개 낀 깊은 산이었다. 숨 막힐 듯 짙은 안개가 코로 스며드니, 장각은 숨을 헐떡이며 일어났다.


‘여긴 어디란 말인가. 나의 군대들은 어디에 있는가. 설마 모두 패한 것인가.’


보이는 것이라고는 나무와 안개, 그리고 그림처럼 둘러진. 끝을 알 수 없는 절벽들 뿐이었다. 장각은 정처 없이 걷기 시작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혼자 버려졌다는 건 이미 군대가 패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민가로 내려가면 위험하다. 장각은 깊은 산 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 즈음 걸었을까. 어느 두 노인이 바위를 의자삼아 한가롭게 바둑을 두고 있는게 아닌가. 장각은 노인들에게 다가가 길을 묻기로 한다.


“어르신들, 혹시 이 쪽으로 지나가는 한 무리의 군대를 보신 적 있습니까? 보신 적이 있다면, 머리에 황건을 두르고 있었습니까?”


두 노인은 장각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바둑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을 발견한 장각도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휴식을 취할 겸 노인들의 대국을 구경하기로 한다. 그 때 한 노인이 장고의 수를 두며 말한다.

“대마가 잡힐 형세이니 이제 어찌하겠는가?”

“있는 그대로 두어야지요. 죽을 것은 죽을 것이요, 살 것은 살지 않겠습니까?”

“살 수 있는 수가 두 군데나 있다.”

“그 수를 두어 살린다면, 또 다른 무언가 죽어야되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 말도 맞다.”


노인들의 대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장각은 그들의 행색을 자세히 관찰하니, 한 명은 꽤 많은 나이에도 혈색이 젊은이와 같았으며, 다리가 있어야 할 곳에 다리가 없고, 뱀의 꼬리가 다리를 대신하고 있는 게 아닌가. 또 한명의 노인은 수염이 덮수룩하고, 구름을 수놓은 흰 옷을 입고 있었으니, 장각은 그들이 복희와 노자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에 장각은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절을 올리며 말한다.


“몰라봬서 송구합니다. 소인은 두분의 가르침을 세상에 설파하고 있는 장각이라고 합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제서야 노자가 두던 바둑을 멈추고 장각을 훑어본다.


“그래, 고생이 많다 들었다. 무엇을 알고 싶은 것이냐.”

“소인은 큰 병을 앓고 있습니다. 분명 청문을 쓰고 행하는 자는 죽지 않는다 가르치지 않으셨습니까? 혹시 저는 이미 죽은 것입니까?”


노자는 장각을 내려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네놈이 제대로 배우려면 한참 멀었구나. 그 뒤의 구절을 기억하느냐?”

“생과 사는 천당의 명부에 의해 정해진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렇다. 나도 모르는 천당의 명부를 네놈이 어찌 알겠느냐?”

“저는 백성들을 계몽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려 했을 뿐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게 두어라. 이게 내 가르침이거늘, 너는 도대체 무엇을 배워 군을 일으키고, 백성들을 약탈하여 세상을 혼란케 하였느냐?”


이에 장각이 억울한 듯 받아친다.


“여기 계신 복희*58께서도 어리석은 백성들을 계몽하여 여러 가지 살아갈 방도들을 마련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어찌 그 가르침을 뒤로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장각의 말에 바둑의 수를 읽고 있던 복희가 갑자기 크게 웃더니 답한다.


“그래, 무엇을 가르쳤느냐? 낚시를 가르쳤느냐? 농사를 가르쳤느냐? 아니면 낚싯대와 농기구 대신 무기를 들려주었느냐?”


장각이 힘없이 답한다.


“무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복희는 너그러운 말투로 장각을 일으켜 세우고, 바둑판을 자세히 보게 한다.


“흑의 형세를 보아라. 어떻게 되고 있느냐?”

“대마*59가 잡힐 위기입니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응당 포위를 뚫어 대마를 살리고, 우상귀*60에서 반격할 것입니다.”

“저기 앉아있는 태상노군*61은 그러지 않았다. 이유를 아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아둔한 소인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이 대국이 끝나면 어찌될 것 같으냐? 그저 다음 판이 시작될 뿐이다. 네 놈이 성공하여 나라를 뒤집었다 해서 무엇이 바뀔 것 같으냐? 네 놈들이 약탈로 일어섰으니,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는 무도함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아니냐?”


노자 역시 크게 웃으며 말하니,


“내가 그냥 흘러가게 두어라 가르치고자 한 상대는 힘을 가진 자들이었다. 반면에, 복희께서 계몽하고 가르치고자 한 자들은 힘없는 백성들이었느니라. 백성들은 부단히 움직여야 할 것이고, 권력자들은 그들을 개인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세상이 이치대로 돌아가는 법이다. 즉, 복희께서는 백성들을 부단히 움직이도록 가르친 것이고, 나는 권력자들이 백성들의 세상을 그저 그대로 두도록 가르치고자 한 것이니, 이 둘의 차이를 알지 못하면서 어찌 백성들을 이끌고 일을 도모하려 하였느냐?”


마치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 때 장각의 귓가에 요란한 소리가 맴돌았다.


“장군! 장군!! 정신이 드십니까?”

“여긴 어딘가.”

“장군의 처소입니다. 아까 급보를 듣고 쓰러지신 지 한 나절이 지났습니다.”

“내 신선들의 바둑을 보았다.”

“신.. 신선들의 바둑이라니요?”

“인간의 그것과 매우 다르더구나. 이기고 짓밟는게 목적이 아닌 대국이었다.”


장각은 크게 낙심하여, 한 숨을 쉬더니 다시 아문으로 향한다.


한 편, 하곡양의 동탁은 보병을 앞세우고, 기병대는 뒤에 숨긴 채 성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이를 보고받은 장보는 그 즉시 군사를 꾸리고 출진 준비를 한다. 그리고 1개 대방과 4개의 소방에게 명해 군을 5개로 나누고, 전후좌우 군이 본대를 보좌하게 하니, 그 위용이 여느 때와 달랐다. 시간 상으로 장각의 지원군이 도착하려면 세 시진*62 정도가 필요했다.


두 군세는 오전부터 싸워 치열한 공방을 주고 받았다. 그 때, 한 무리의 기병대가 장보의 후군을 치는게 아닌가. 동탁의 기병대였다. 장보의 후군은 속절없이 무너지니, 장보는 직접 측근 정예를 끌고 후미로 향했다.


“버텨라! 버텨야 한다! 원군이 오고 있다!”


장보의 격려에 도망가려던 황건적 병사들은 던져놓은 무기들을 다시 줍고 기병대의 돌격에 항전한다. 그 때였다. 기병의 지휘가 한창인 동탁에게 퇴각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동탁은 필시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하고 기병대를 추려 다시 본대로 향했다.


“어떤 놈이냐! 내 허락도 없이 퇴각의 북을 울린 놈이!”


“후미에 적군이 나타났습니다!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장각 그놈이 결국 군을 움직였구나! 퇴각하라! 계속 퇴각의 북을 울려라!!”


협공으로 군이 와해될 것을 염려한 동탁은 그대로 본영으로 돌아가 병력을 추려 도망하였다. 이에 황건적들은 만세를 지르며 동탁을 추격하려고 하였다.


“추격 말라! 전 대 소방의 병사들은 다시 성으로 들라!”

“아니, 장군! 다 이긴 전투인데 추격을 하지 말라니요?!”

“병서에 도망가는 적은 함부로 쫒지 말라 하였다. 하물며, 멀지 않은 곳에 하진의 군대가 있다. 필시 매복이 있을 것이다.”


장보는 추격하려는 병사들을 다시 복귀시키고, 대승했음을 축하하는 연회를 여는 동시에 이 소식을 장각에게 사람을 보내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 편지는 장각에게 전해지지 못하고 만다.


장각은 다시 쓰러지고 일어나 아문으로 향하고를 몇 차례나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는 더 이상 일어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장각은 운명을 직감했는지 동생 장량과 부하들을 불러 마지막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한다.


“동생아. 내 일전에 꿈에서 복희와 노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그 대국은 세상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 깨달았다. 스스로 오래도록 대현이라 칭했으나, 나는 대현이 아니었느니라. 그러니 내가 병으로 죽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형님, 그게 무슨 소리유? 이 중원의 땅에 형님보다 배움이 깊은 자가 있단 말이오? 저들을 보시오. 우리가 두려워 대병을 일으켜 토벌하려 하지 않소? 어서 엄살 피우지말고 일어나시오!”


장량이 아이처럼 흐느끼며 장각의 손을 잡고 일어날 것을 보채니, 이를 보는 자들 중 울지 않는 자들이 없었다. 장각은 장보에게 태평경을 건네며 힘없이 말을 잇는다.


“이 태평경을 잘 연구하여라. 일이 성사된다면 부디 그 가르침대로 세상을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내 뒤는 장보가 잇도록 하고, 너는 형을 도와 백성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 말을 끝으로 장각은 숨을 거두니, 184년 10월, 그가 거병한 지 8개월 만이었다.


탁송지주


*54 양주삼명 일원으로, 동탁이 출세할 수 있게 해준 은인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장환은 동탁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55 일반적으로는 기병대가 앞장선다.

*56 당시 이미 와해된 상태였던 걸로 보이나, 소식은 아직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57 7천이 죽은 것이다.

*58 인간에게 많은 기술을 전수하였다는 중국 전설 속 인물.

*59 바둑에서 많은 돌이 두어진 곳.

*60 바둑판의 오른쪽 상단.

*61 노자를 뜻한다.

*62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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