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각, 어느 슬픈 무정부주의자의
이야기 5화

파재의 군략

by 탁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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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영천의 파재는 조정에서 보내는 토벌군에 대비하고 있었다. 파재는 복귀한 세작들에게 자세한 상황을 보고 받는다.


“적장이 누구인가?”

“우중랑장 주준이라고 합니다.”

“황보숭이라는 자가 있다고 들었다. 그는 오지 않았는가?”

“그는 장사현*21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 중랑장이 각 2만씩 1군을 거느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반절만 온 것이구나. 들어라. 2개 소방*22에 명하여 황건을 풀고 피난민으로 위장하게 하라. 황보숭이 오기 전에 속결로 끝내야 한다.”


아녀자와 노인, 아이들까지 포함된 만 오천여 명의 황건적들은 둘렀던 황건을 한 곳에 모아두고 약탈한 농기구와 짐을 꾸려 피난민으로 위장 후 모여드니, 영락없는 피난민의 행렬과 같았다.


“너희들은 양책현으로 간다. 잡담을 금하고, 평상시보다 느린 발걸음으로 행군하되, 회군을 명하는 전령이 이르면 그 즉시 강행군으로 복귀하여 적군의 뒤를 친다.”


얼마 즈음 걸었을까. 저 멀리 한 무리의 관군이 다가온다. 황제의 군대답게 무장은 잘 되어 있었으며, 이들을 지휘하는 몇몇은 휘장을 두르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말에서 내리더니, 위장한 피난민 행렬의 한 노인을 잡고 묻는다.


“어디서 오는 길이오?”

“우리는 여남에서 이 행렬에 합류하였소. 이미 그곳은 도적들이 마을 곳곳을 점령했다오.”

“적들의 군세를 본 적이 있소?”

“없소. 약탈만 해대며 옮겨 다니는 것 같소.”

이 역시 위계였다. 이를 옆에서 듣던 토벌군의 대장 주준이 말한다.

“들었는가? 적들은 재물만 탐하는 도적떼들일 뿐이다. 즉시 토벌하고 북진하여 장각의 목을 벤다!”

“와아아아아아아”


사기충천한 관군들은 다시 행군을 거듭하니, 이어 한 무리의 도적 떼가 보인다.


“적장의 목을 베는 자 교위가 될 것이다! 모두 죽여라!”


황건을 두른 도적떼들은 그럴 듯한 무기도 들지 않은 채 약탈한 보따리와 수레만 끌고 있다가, 관군을 보자 짐과 수레를 놔두고 도망치기 바빴다. 이에 손견이 심복 몇을 거느리고 맹렬히 추격하였다.


“하하, 이것도 전리품이라 할 수 있는가. 일단 챙겨 두어라. 백성들의 것이다.”


그리고 또 얼마 즈음 갔을까. 또 다른 한 무리의 도적떼가 있으니, 이들 역시 짐과 수레만 끌고 있는 자들이었고, 이들 역시 관군을 보자 모두 버리고 달아나기 바빴다. 그리고 이십여 리를 가는 동안 이런 일들은 서너 번이나 반복되었다. 주준은 이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뭔가 이상하구나. 이들의 행태가 자연스럽지 않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으니, 응당 추격하여 적들을 사살하거나 붙잡고 돌아왔어야 할 손견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마침 그 때,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사방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도적떼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는게 아닌가. 그제서야 주준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돌격을 뜻하는 북을 치게 하고는 외친다.


“적들이 제 발로 찾아 나왔다! 저들은 잡병들일 뿐이니, 물러서지 말고 돌격하라!”


파재가 이끄는 황건적 병사들은 주준이 듣던 잡병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각 군의 치소와 병기고를 털어 무장이 비교적 잘 되어있었고, 사기 또한 높았다. 그래도 훈련받은 관군에 비할 바는 아니었는지, 수적으로 우세하던 황건적은 점차 밀리기 시작한다.


바로 그 때, 뒤에서 한 무리의 군세가 다가오더니, 맹렬히 주준군의 뒤를 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바로 위장된 피난민들이었다. 아녀자와 노인, 아이들은 빠진, 순수 장정 1만이 뒤를 치며 죽은 관군들의 무기를 주워들고 무서운 기세로 살상을 하고 있었다.


‘너무 얕잡아봤구나. 내 군공으로 제후에 올랐거늘, 어찌 이런 실수를 했단 말인가!’


전세가 기운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한 주준은 퇴각의 북을 울리니, 황건적의 군대는 도망가는 관군을 무차별 학살, 사로잡고 벤 자들이 5천 가까이 되었다.*24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주준은 곧 장사현에 당도하는 황보숭의 군대와 마주친다.


“아니, 중랑장께서 어찌된 일이오?”

“내 도적들을 얕보았다가 불시의 기습을 당했소.”

“어찌 첨병*25조차 보내지 않았단 말이오?”

“피난민의 말을 곧이듣다 그리 된 것이오. 그 피난민조차 도적들이었소.”

“적장이라던 파재가 지모 있는 자라 들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소.”


한 편, 손견은 적들을 너무 깊숙이 추격한 나머지 길을 잃고 말았다. 그 때 갑자기 숲속에서 매복 중이던 한 무리의 도적떼들이 나타나서 손견을 에워싸니, 그는 창을 힘껏 휘둘러 순식간에 도적 셋을 베었다. 도적떼들이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손견은 말을 달려 그 곳을 빠져나갔다. 얼마 즈음 지나자, 또 다른 도적 무리들이 그를 발견하고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노란 두건을 두르고 있었다. 결국 포위된 그는 도적의 무리에게 호통을 친다.


“나는 하비승 손문대이다. 먼저 죽고 싶은 자 누구인가?”

“내 저 자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 저 자의 목과 말을 취해서 가져가면 우리 소방장께서 상을 내리실 것이다! 저 자는 죽이되, 말은 상하게 하지 말라!”


도적떼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자, 손견은 창을 휘두르며 적들의 머리를 수없이 베었다. 그러나 그의 체력도 거의 한계에 달해가고 있었다. 이미 그의 어깨에는 칼이 박혔고, 허벅지와 등 역시 수없이 베였다. 그러나 그의 용맹과 위세에 도적떼들은 나서길 주저하니, 포위망이 풀리기 시작했다. 손견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말을 달렸다. 이십 여리를 달리자, 황건적들은 추격을 포기한 듯 했다. 손견은 말을 세워놓고 풀숲에 기대며 말에게 속삭였다.


“나는 이제 틀렸구나. 너라도 살아라. 도적떼들에게 잡혀 그들에게 쓰여서는 안될 것이다.”


말은 손견의 속삭임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저 멀리 달려 나갔다.


“손견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가?”

“아까 추격한 이후로 소식이 없습니다.”

“날랜 자 몇을 보내 수색하게 하라! 시신이라도 찾아야 한다!”


주준은 손견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 때, 말 한 마리가 주준의 군영으로 달려오더니 울부짖는게 아닌가! 주준은 그 말을 한번에 알아보았다.


‘문대*26가 타던 말이다.’


주준과 눈빛을 교환한 말은 이윽고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저 말을 따라가라! 저 말이 문대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


수색군들이 말을 따라 한참 달리니, 큰 나무 옆의 풀숲에 손견이 피를 흘린 채 누워있었다. 병사들은 의식을 잃은 손견을 급히 호송하여 군영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군영에 도착하여 정신이 든 손견에게 주준이 안도하며 말한다.


“이 사람아! 말이 자네를 살렸네!”


탁송지주

*21 영천군 장사현. 허도(허창) 바로 지척이다.

*22 소방은 6~7천명 규모이다.

*23 상대를 속이는 계책

*24 주준이 후일 황건적 조홍과 겨룰 때 남양태수 진힐과 합친 병력이 1만8천으로 되어 있으니, 이 때 최소 5천 가까이 잃었을 것이다.

*25 본대보다 앞서 길, 매복 등을 살피는 수색군.

*26 손견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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