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은 불행 앞에 무기력해지지 않기를
서른의 감정
한동안 후원하던 결연 아동이 있었다.
그 아이는 가정폭력 피해자로, 격리시설에서 생활 중이라고 했다.
아이와 나를 이어주는 복지 기관에서는 종종 아이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주로 이 아이는 성격이 어떠하며, 어떤 꿈이 있고, 나에게 어떤 궁금한 점이 있는지 등 소소하지만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기관에서는 내게도 아이에게 짧은 편지라도 보내보라고 권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답하지 않았고, 무심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다 어느 날 후원 종료 통보를 받았다.
아이가 원가정으로 돌아가게 되었단다.
아이가 다시 가해자와 함께 생활한다는 소식을 접하여 나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아마도 분명 내가 모르는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보호시설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도 정해져 있을 것이고, 법적으로 보호 아동에 대한 원가정 복귀 규정이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 아이가 겪고 있을 상황을 가만히 두고 외면할 수는 없었다.
곧장 기관에 어떻게 된 일인지 문의를 하고, 아이와 직접 연락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기관의 연결 없이 혼자서라도 아이를 돕고 싶다는 게 나의 요지였다.
그러나 기관에서는 아이와 연락을 할 수는 없다고,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게 가장 좋다는 믿을 수 없는 답변을 해 왔다.
그제야 내 머리 위로 소나기처럼 후회가 쏟아져 내렸다.
그저 한 아이가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 멀리서 아주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다만 나 스스로 성숙한 인격체가 아니므로 아이에게는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한 사람이기를 바랐다.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면서도, 어차피 큰 도움이 될 수 없음에 두려워 선뜻 다가가지를 못했다.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불행 앞에 사람이 얼마나 무기력해지는지, 어린 시절의 그런 경험이 얼마나 마음을 갉아먹는지 알면서도 더 다가가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 어떤 존재가 되기에는 내가 너무 하찮아서, 아무런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그 아이와의 인연이 끊기고 다시 수개월이 지났다.
나는 꽤나 자주 그 아이를 떠올렸고, 되돌아간 환경에서 아이가 무사히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후회했다.
어떤 날은 온종일 그 아이 생각에 잠겨 괴로워하곤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건방지게 아이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사실은 내가 그 아이에게 어떤 존재가 되는 게 두려웠던 게 아니라, 그 아이가 내게 어떤 존재가 되는 걸 두려워했음을 깨달았다.
모자라고 나약한 나는 비겁하게 숨어버리기를 선택했고, 비극적인 선택의 결과에 속수무책으로 후회의 늪에 빠져들었다.
두려움이 많은 어른이란 얼마나 도움 안 되는 존재인가.
사무치는 죄책감을 통해서만 배워가는 못난 나날들, 언제쯤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막막할 따름이다.
내가 그 아이에게 무언가를 원해도 된다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어른으로 자라지 않기를,
내 생각보다 괴롭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