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해방일지]
나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좋아했다.
부드러운 털, 감정을 숨지기 못하고 살랑이는 꼬리. 늘 외로웠던 나와 똑 닮은 모습까지 좋았다. 강아지도 혼자, 나도 혼자.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강아지들이 나를 지나갔고 그 강아지들은 모두 죽었다. 죽음의 이유는 가지각색이었는데 늙었다는 이유로 보신탕집에 팔려가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맞아 죽기도 했고, 교통사고로 죽기도 했다. 더 많은 죽음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모두 강아지이기 때문에 그렇게 죽은 것이다. 강아지라서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죽는 삶. 친구라기에 나는 너무 힘없고 보잘 것 없는 부끄러운 인간이다.
몬난이는 내가 17살에 만난 강아지다. 몬난이가 지금 17살이니 딱 저 나이에 나를 만났다. 그때 할머니는 세월이라고 부를 만큼 오랜 시간동안 강아지를 키워왔는데 마침 선임 강아지가 죽고 할머니에게 온 마지막 강아지가 몬난이다.
몬난이는 노포동 시장에서 사왔다. 종이 박스에 꼬물거리는 강아지 중에서 가장 활발했다고 한다. 눈은 짙은 갈색인데 털이 어두운 색이라 밤이면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삼촌은 깜순이라고 불렀고 할머니는 몬난이라고 불렀다. 나는 몬난이의 보호자가 할머니라고 생각해서 몬난이라고 부르기로했다. 삼촌은 아직도 깜순이라고 부른다.
몬난이는 못났다. 까만 털도 못났지만 목보다 짧은 다리, 어쩌면 유난히 긴 목과 몸통. 이상하게 큰 귀. 몸통과 어울리지 않게 큰 얼굴. 억울하게 생긴 눈썹 모양의 털까지 하나 같이 못났다. 그래도 예쁜 곳이 있다면 다른 강아지에게는 찾기 어려운 눈동자다. 꼭 사람처럼 깊은 눈을 하고 있는데 그 눈을 보고 있으면 갈색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 쏟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몬난이는 할머니와 오래오래 행복했다. 이건 몬난이가 알려준 게 아니라서 확실치는 않지만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늦는 날이면 애타게 할머니를 찾았으니 할머니를 좋아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할머니는 너무 할머니가 되었고 몬난이가 살아온 주택도 재개발로 사라져서 몬난이는 갈 곳이 없어졌다. 마침 강아지를 좋아하는 나와, 스스로 동물애호가라고 하는 동거인이 강아지를 구한다는 핑계로 데려왔고 벌써 7년이 넘었다.
함께 지낸지 3년 정도 되었을 때 건강했던 몬난이 배에 혹이 생기기 시작했다. 유선종양이라는 암이었다. 종양을 제거하는 것은 어려운 수술이 아니었다. 수술을 해도 며칠이면 금방 회복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산책하고 간식을 먹었다. 그렇게 7년이 지나는 동안 종양은 몬난이 몸에 점점 길을 넓혀갔고 1년에 한 번씩 하던 수술을 몇 개월에 한 번씩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수술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몬난이는 하루하루가 달랐다. 몇 개월 전까지 뛰어다니던 몬난이는 이제 잘 걷지도 못한다. 사료만 아니면 뭐든 좋다던 몬난이가 이제는 밥도 물도 거의 먹지 않는다. 산책을 좋아해서 저녁이면 먼저 나를 찾아오곤 했는데 이제는 산책을 해도 멍하니 서있기만 한다. 몬난이는 배는 종양으로 부풀고 살이 빠진 등은 뼈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렇게 죽을거야? 하면서 몬난이에게 농담을 던지는 일이 잦아졌다. 이제는 농담이 아니게 되었지만. 수술이 몬난이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나는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둘도 없는 친구인양 보듬으면서 속으로는 수술비를 걱정했으니. 집을 팔아서라도 행복하게 해줄 것처럼 하더니 이제는 먹을 만큼 나이를 먹었으니 죽을 때가 되면 죽으라며 어차피 모두 죽으니 몬난이 너 하나 죽는 거 대단한 일도 아니라고 한다.
나와 동거인은 몬난이가 없는 하루를 상상하며 자주 운다.
나와 동거인보다 몬난이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으니 이 집은 몬난이의 집이다. 몬난이가 없는 몬난이의 집. 여기저기 몬난이의 흔적은 넘치지만 정작 몬난이는 없는 하루. 그렇게 산책을 좋아하고 간식을 좋아했는데 혹시 더 살고 싶지 않았을까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들. 몬난이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울고 침묵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 우리의 상상 속에서 몬난이는 이미 수없이 죽었다. 제발 저승 따위 없기를. 천국이니 지옥이니 강아지별이니 뭐니 다 없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나길 바란다. 그래서 누구를 기다리지도 않고 애태우지도 않게.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에는 내가 꼭 함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