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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슴 Dec 12. 2024

최초의 강아지

나는 개가 무서웠다. 강아지, 멍멍이, 댕댕이, 강쥐, 갱얼쥐 등 개를 지칭하는 다양한 애칭은 이 동물이 인류의 애정을 듬뿍 받아왔다는 증거일 테지만, 내겐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생명체였다. 



개에 관한 첫 기억은 바로 '서나'였다. 서나는 우리 가족이 세 들어 살던 주인집에서 키우던 개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주인집 뒤편에 딸린 조그만 방에서 살았다. 그 셋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주인집 마당을 지나 안쪽으로 쭉 들어와서 집 뒤쪽으로 이어지는 곁길을 따라 들어가야 했다. 집으로 가는 데 큰 난관이 있었는데, 바로 마당을 지키는 개, 서나였다. (이름이 선아인지 서나인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선아가 아닐까 싶은데, 어릴 적 나는 명확히 '서나'라고 발음했으므로 내게 그 개는 서나가 분명하다.) 서나는 주인집 마당에서 목줄을 매고 살았다. 커다란 덩치에 그 당시 내 팔뚝만 한 꼬리를 단 풍채 좋은 개였다. 


어린 나는 서나가 진돗개인 줄 알았다. 순도 백프로 혈통을 타고난 진돗개는 매우 비싸다는 사실을 아는 지금, 어쩌면 진돗개가 섞인 잡종이 아닐까 싶다. 서나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당연하게도) 서나는 처음 본 우리 가족을 향해 맹렬히 짖었던 것이다. 서나의 목줄이 팽팽해졌다 느슨해졌다를 반복하는 장면이 공포영화의 예고편 같았다. 나는 강아지를 무서워하면서도, 한편으론 키우고 싶어 했던 보통의 대한민국 어린이였다. 여기서 ‘강아지’란 당시 유행했던(?) 말티즈나 시츄처럼 보송보송하고 귀여운, 내 작은 손으로도 달랑 들 수 있는 더 조그만 강아지를 의미했다. 그런 어린이 앞에 커다란 서나의 등장은 곧 귀갓길의 위기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서나가 언제 짖느냐였다. 그야말로 한주먹거리였던 나는 마당으로 들어설 때면 한껏 어깨를 움츠리고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걸었다. 서나는 내 자세를 갸륵하게 여긴 건지 이따금 무사히 넘어가 주었지만, 때로는 사납게 짖어 내가 비명을 지르며 줄행랑치게 만들었다. 서나도 알았다. 이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자기를 매우 무서워한다는 것을. 서나에게 내 마음을 들켰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당당하게 집으로 들어서려고 했지만, 마음속은 겁으로 한껏 쪼그라든 아이가 어깨라도 펴기 위해 움찔거리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일 뿐이었다. 서나는 내게 두려움 그 자체였다. 서나와 눈이 마주치면 대문 안으로 발을 디디는 것조차 힘들었다. 깨어있으면 무서워하는 내 표정을 들킬까 봐, 자고 있으면 언제 일어나서 급작스레 짖을까 무서웠다. 서나의 목소리가 돌연 귓전을 때리면, 나는 마음이 발바닥 아래로 쿵 떨어지면서 소름이 돋았고, 양팔 언저리와 뒤통수, 뒷덜미께가 정체 모를 공포심에 자글자글 얼어붙었다. 아차, 하는 순간 지옥으로 떨어지는 외나무다리 위에 서있는 내 심경과는 상관없이, 서나는 내키는 대로 나를 향해 짖거나 자던 낮잠을 내리 잤다.   

  

나는 집에 들어올 때마다 혼자서 난리통을 겪었다. 하지만 우린 선뜻 이 집을 떠날 수 없었다. 엄마는 고군분투하는 내게 한 문장을 알려주셨다. 두 손으로 꼬옥 쥐어 주듯. '서나야 짖지 마라.' 나는 그 문장을 가만가만 입술로 중얼거리면서 집으로 걸어갔다. 서나야, 짖지 마라. 서나야, 짖지 마라. 분명 서나에게 건네는 말이었지만, 그 말들은 서나에게 가지 않고 서나와 내 사이에 낙엽처럼 쌓였다. 후 불면 흩어져버릴 만큼 가벼웠지만, 내게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낮은 울타리 같았다.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아무 소동 없이. 주문을 네 번 정도 중얼거리면 무사히 서나 앞을 지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서나가 내게 흥미를 잃은 건지, 내가 대형견의 비위를 잘 맞추는 어린이로 성장한 건지 서나는 점점 짖지 않았지만 나는 그 집을 떠날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2년 뒤 우리는 이사를 갔고, 그다음 주인집에선 개를 기르지 않았다. 그 뒤로도 거리에서, 공원에서, 친구네 집에서 수많은 개와 마주쳤다. 개를 볼 때마다 언제 갑자기 큰 소리로 짖을지 모른다는 걱정부터 떠올랐다. 갑자기 달려들어 무서운 이빨로 덥석 물지는 않을까. 또 짖는 소리는 어찌나 큰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개가 맹렬하게 짖으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 휩싸였다. 공기를 잘게 찢어내는 무시무시한 굉음. 나에게 개는 갑자기 돌변하는 무서운 숨탄것이었다.      


다 자란 어른이 된 나는 집에서 독립한 후 우연한 기회로 개 한 마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같이 생활한 지 7년. 이제 개가 아무 이유 없이 짖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아무 이유 없이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배웠다. (사실은 사람이 문제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랑을 배우고, 나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개. 공포를 사랑스러움으로 바꾸는 힘을 지닌 개를 만나 내 세계가 차츰 넓어졌다. 꼬마였던 나를 울린 강아지도 이젠 그저 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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