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을 하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글쓰기를 시작한 지 일 년째. 습작생 주제에 절필 선언을 한 지 십 년째다. 멈춰버린 내가 다시 쓸 수 있을까. 아마도 이번 여름에는 꽤 많은 땀을 흘려야 할 것 같다.
나는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어릴 때는 내가 뭘 잘하는지 몰랐고, 뭘 하고 싶은지, 심지어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단순히 대학 진학은 해야 했기에 적당한 과를 골랐고, 그게 문예창작학과였다.
그런데 운 좋게도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 내뱉기엔 우습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받은 인정들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고백하건대 나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글을 많이 쓰지도 않았다. 게으른 나는 늘 마감기한에 쫓겨 억지로 글을 짜 내곤 했는데, 놀랍게도 그런 글들로 칭찬받는 일이 제법 잦았다. 간혹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했다. 큰 노력 없이 이뤄낸 성취는 나를 찝찝하게 만들었다. 어쩐지 그 사람들을 속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졸업 작품을 쓰면서 더는 글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그만하겠다는 다짐도 갑작스러웠다. 아마도 직감했던 것 같다. 초심자의 행운은 여기까지라는 걸. 노력 없는 좋은 글에는 한계가 있을 터였다. 내 얕은 바닥이 드러나기 전에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내가, 다시, 쓰고 있다. 이제 와서.
이건 내 이상한 취향 때문이 아닐까. 나는 주사를 맞을 때 주삿바늘을 응시하고 있는다.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나, 주사를 맞는 건 내게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피를 뽑는 주사기를 관찰한 적이 있는가. 주삿바늘이 살갗을 찌르는 순간은 따끔하지만, 울컥 뽑혀 나오는 혈액을 보면 '내가 정말 살아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글 쓰는 일은 흡사 피를 뽑는 일과 같지 않을까. 고통스럽지만 그렇기에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그래서 나는, 다시, 쓰고 있다. 늦었지만.
지난 일 년간 한 달에 한 편씩 글을 써 왔다. 원고를 마감할 때마다 끔찍한 결과물에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왜 쓰는가. 이것에 대한 답은 조금이나마 찾았다. ㅡ살아있기 위해서 쓴다. 그렇다면 독자는 왜 읽는가. 내 글은 읽을 가치가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보이지 않아 막막하다. 이 생각의 끝에는 죄책감이 몰려온다. 그리고 피하고 싶어진다. 절필 선언을 하던 그때처럼. 왜냐면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엉망진창인 글만 쓰고 있기 때문이다. 글 쓰고 싶지만 또 그만큼이나 쓰기 싫은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출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그러다 친구의 추천으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게 되었다. 이 사회고발적 영화를 보고 뜬금없게도 나는, 작은 히어로를 발견했고, 나에게 조금 관대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매직캐슬"의 외양은 마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처럼 보인다. 화사한 보랏빛으로 칠해져 있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 보이지만 투숙객의 대부분이 홈리스 빈민층인, 지극히도 현실적인 공간이다. 인근에 위치한 꿈과 환상의 공간인 "디즈니 월드"와 대비되는 이곳에서 여섯 살 '무니'는 스물두 살 미혼모 '핼리'와 함께 장기 투숙 중이다.
무니는 모르는 사람 차에 침을 뱉으며 노는 천하의 악동 같지만 웃음소리만큼은 순수 그 자체인 조숙한 꼬마다. 이 소녀의 시선을 통해 여러 캐릭터가 묘사되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모텔 관리인 '바비'다. 바비는 무니에게 엄격한 동네 아저씨이면서 또 무뚝뚝한 아빠 같기도, 친근한 삼촌 같기도 한 존재이다. 무니는 술, 담배, 마약 외에도 매춘이나 성범죄 등에 노출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한 마음을 들게 하는데, 바비는 그런 환경에서 최소한의 방어막이 되어주는 어른의 역할을 한다.
그는 언제나 주인공들의 삶과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보고 있다. 건물의 관리인으로서 투숙객들의 동향을 살피고, 수상한 사람이 접근하지는 않는지 CCTV로 관찰한다. 그는 그의 일을 할 뿐이다. 이 어린 모녀가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해서 안타까움에 숙박비를 대신 내 주는 일은 없다. 그러나 핼리가 누군가에게 협박당하고 있을 때는 모텔 매니저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그를 저지하고, 수상한 노인(아마도 소아성애자로 보이는)이 무니에게 접근하려 하자 곧장 다가가 그를 쫓아낸다. 사실 그것까지는 그가 강조하는 '건물 관리인의 일'이 아님에도 말이다.
바비는 핼리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거나 금전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지만,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것을 선뜻 내어주진 못해도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미약하게나마 그들을 돕고자 하는 평범하고 선한 인물 바비. 나는 그가 매직캐슬의 작은 영웅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아이언맨'이나 '스파이더맨'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이들을 괜히 '슈퍼히어로'라고 부르는 게 아닐 텐데 말이다. 현실은 매직캐슬의 관리인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간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우리는 지구를 구하지는 못해도 이웃 꼬마의 세상이 조금이라도 안전해지도록 도울 수 있다. 이건 지구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절실한 일이지 않나.
너무 잘하고 싶은 일은 너무 하기 싫은 일이 되기도 하나보다. 나는 나에 대한 기대가 높은 사람이고, 내가 대단한 무언가가 되기를 기대했다.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누구보다도 하찮게 여겼다. 차분히 돌아보면 사실 대학에 다닐 때에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눈물 날 정도로 괴로워하고 있다. 괴롭지만 계속해 나간다는 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다. 밥 굶고 잠 안 자고 코피 흘려가며 하는 일만이 노력은 아닐 텐데, 본인에게 무척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글에 대한 권태로움은 나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커서 만들어진 회피성 싫증이 아닐까.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작품을 많이 접하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우연히 만난 좋은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덕에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다시금 글쓰기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저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영화를 보고 이런 감상을 늘어놓은 걸 보니 역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존재인가 보다.
영화에서 무니는 친구 잰시와 함께 엄청 큰 나무 옆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녀가 말하길 그 나무는 '쓰러졌지만 계속해서 자라는' 나무다. 하늘로 높이 치솟지 못해도 옆으로 가지를 펼쳐 나가는 쓰러진 나무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살고자 한다. 너무 높은 기준으로 나를 억누르지 말자. 거창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가 작은 영웅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매직캐슬 바비의 작은 날갯짓이 내게 날아와 시원한 바람이 된 것처럼.
덧붙이는 말) '바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바비'와 동명이인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이끌렸는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