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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루 Dec 29. 2024

다시, 서른 즈음에

서른의 중반

멀어져 가는

비슷한 생활반경과 생활패턴, 관심사를 공유했던 학창 시절 친구들. 가족들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었기에 우리는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사춘기라는 대분류에 묶여 있었고 삼십 대 중반이 되자 제각각 소분류를 찾아 떠났다.

누군가는 결혼을 했고, 누군가는 하지 않았다. 또 누군가는 이미 결혼 한 번, 이혼 한 번을 했다. 아이를 양육 중인 친구, 아이가 없는 친구들은 만나면 공감되지도 않는 서로의 이야기에 영혼 없이 맞장구를 친다. 누구는 차가 있고, 누구는 집이 있고, 누구는 차와 집이 있고, 둘 다 없는 사람은 막막하다. 분명 다 함께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던 것 같은데, 한 직장에 계속 붙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여러 번 이직을 했거나 또 누구는 전업주부가 되어있다.

삼십 대의 친구들은 혼란하다. 이제 우리를 묶어주는 말은 "우리"밖에 없다.


점점 더 멀어져 가는

형제자매도 양육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친구들과 다를 바 없다. 자라면서 내 삶의 방식, 가치관이 공고해지는 동안 그들 역시 각자의 자아를 키워 왔다. 얼굴 맞대고 살아온 세월이 우리를 비슷하게 만들어주진 못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나와 완전히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와 가까운 관계에 있을수록 그 다름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형제들은 상대를 어릴 때부터 봐 왔으니, 그에 대한 본인의 판단이 완벽한 사실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 판단에 벗어나는 경우 다름을 인정하기 어렵다.

비슷한 성장환경에서도 기질에는 차이가 있고, 어른이 된 우리는 그 누구보다 다르다.


조금씩 잊혀 가는

마지막으로 장래희망을 떠올린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지금 내 모습이 어릴 때 내가 바라던 어른이나 "꿈"에 가까운 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뭘 바랐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가 서서히 잊혀 간다.

어른은 꿈을 꿀 수 없을까? 아무도 그렇게 정하지 않았는데,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뒤로는 꿈을 꾸지 않는다. 이제 와서 뭔가를 도전하기엔 귀찮고 피곤하다. 재미도 의미도 없는 일을 계속하는 건 새로운 일에 도전할 용기와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뭔가를 하지 않아도 살만하니까, 특별한 뭔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고 있다.

적어도 이렇게 낭만 없는 어른이 되고 싶진 않았지만, 꿈이 없어도 살아진다.


머물러 있는

내 곁에서 변하거나 떠나지 않는 것도 있다. 요즘 내가 나온 사진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미취학아동 시절에 보였던 내 표정이 겹쳐 보여서 간혹 소름이 돋는다. 걱정 없어 보이는 해맑은 미소나 시무룩해서 한껏 튀어나오는 입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하다. 순수할 때의 감정표현방식을 지금도 따르고 있다는 뜻 같아 어쩐지 감동이 몰려온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들도 꽤나 변함없이 남아 있는데, 특히나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큰 힘을 준다. 즐기는 서사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만화영화를 좋아하고, 참외나 수박을 좋아하는 것도 여전하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쌓여있는 눈만 보면 태어나 처음으로 눈을 보는 사람마냥 신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아주 보잘것없고 작은 것들, 그들이 나를 지탱하고 있다.


다시 돌아오는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를 어려워했다. 헤어짐이 두려워 모든 관계의 시작과 함께 마지막을 그리는 게 버릇이 됐다. 누군가 내게 다가오면 도망가고, 누가 너무 좋으면 또 도망치기를 반복하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내 인간관계는 조만간 좁고 고립된 상태로 고여버릴 것 같았다.

더는 새로운 사랑도 우정도 만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겨우 30년 남짓 살아보고 내린 섣부른 판단이었나 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보니 "친구"라고 정의 내리고 싶을 정도로 따뜻하고 좋은 직장동료도 있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를 찾아온 연인도 있었다. 한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다는 낯설고도 새로운 감정에 푹 빠져있는 요즘이다.

헤어짐은 여전히 두렵지만,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재미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연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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