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독립
2025년이 됐다.
한국식 나이로 서른다섯 살이 됐다.
서른다섯, 부모로부터 독립하기로 마음먹었던 그 나이가 성큼 다가왔다.
쫓기듯이 집을 찾고 있다.
1. 35
굳이 2025년에 독립하고자 한 첫 번째 이유는 서른다섯이라는 균형 잡힌 나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서른은 너무 어렸다.
요즘 나이 서른이면 사람들이 어른으로 잘 쳐주지도 않는다.
법적으로는 어른이지만 스스로 마음만큼은 아직 이십 대에 머물러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이건 지금도 그럴지도 모른다.)
마흔은 너무 늦은 느낌이다.
40대에는 진정한 어른이 되어 있고 싶은데, 그러면 적어도 5년은 수련기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활력이라고는 없는 나는 독립하지 않은 채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서른과 마흔의 중간에 있는 서른다섯.
나는 이 나이를 독립하기 좋은 나이로 정했다.
그리고 나이 먹는 것은 나의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2. 빚
20살 이후로는 항상 빚에 시달려왔다.
학자금대출을 할 때마다 조금씩 생활비도 함께 빌렸다.
그 대출금 중 단 한 푼도 내 손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갚는 건 모두 내 몫이었다.
가족이 나를 키웠으니, 그 정도의 빚은 기꺼이 내가 책임질 수 있었다.
학자금 및 생활비대출을 갚는 데는 꼬박 10년이 걸렸다.
도중에 누군가의 실수를 덮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았다.
난생처음 3 금융권의 문을 두드렸을 때는 어찌나 심장이 떨리던지.
그때 그 빚만 없었다면 학자금을 더 일찍 상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빚 없는 생활도 잠시, 가족과 함께 이사하느라 또 몇천의 대출을 받았다.
다 갚아갈 쯤엔 또 자동차구매를 위한 대출이 이어졌다.
보통 차를 살 때 몇 퍼센트는 모아 둔 돈으로, 나머지는 대출로 해결한다던데 내게 모아 둔 돈이 있을 리 없었다.
용감하게도 또 몇천을 빌려 자동차를 샀다.
그래도 이 대출은 온전히 내 소유물을 사기 위한 것이었기에 덜 괴로웠다.
거의 처음으로 나의 필요로 인해 발생한 빚이었다.
그 빚이 끝나는 시점이 바로 2025년 2월이었다.
그래서 2025년에는 새로운 빚을 내서 집을 구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역시 내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사채 빚을 떠안게 되었다.
나는 도박도, 유흥도, 사치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다시금 내가 쓰지도 않은 돈을 빚졌다.
안고 있던 빚을 없애자 새로운 빚이 득달같이 생겨났다.
아니, 이거라도 없어졌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신이 있다면 그가 내 인생의 난이도를 잘못 조작한 게 틀림없다.
그래도 나는, 원래 있던 빚이 사라졌으니 독립해야 한다.
빚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간 영영 못할지도 모른다.
3. 엄마
글에 엄마 이야기를 쓰는 걸 싫어한다.
누구나 엄마 이야기에는 약해지니까, 뭔가 치트키 같아서 싫다.
그러나 나의 독립을 말하면서 엄마를 빼먹을 순 없다.
사실 엄마가 없었다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립했을지도 모른다.
내게 집은 시한폭탄 같은 곳이기에 한시도 편한 적 없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나마저 떠난다면 엄마는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내내 발목을 잡았다.
이 불편한 죄책감과 책임감이 나를 우물에 가두었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 때문에 독립하고자 한다.
엄마한테 이유 모를 미안함을 느끼다가, 언젠가부터 미움이 미안함보다 커졌다.
별일 아닌데도 자꾸 화를 내고, 내 감정대로 다 표출하다 보니 엄마가 내 눈치를 본다.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발산하고 나면 시원하기는커녕 당장 어딘가로 숨고 싶어 진다.
시간이 흐르니 죄책감도 들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내가 징그럽고 미워서 참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는 독립해야 한다.
이 공간을 일기장처럼 빌리자면,
나는 사실 이러고 글을 쓸 상태가 아니다.
누군가의 사채빚 때문에 시달리고 시달려 머리가 텅 비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당장 독립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털어내고 과연 홀로 설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내가 한 손으로 맨땅이라도 짚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