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타 Jun 02. 2016

어느 초여름의 밤

수평선을 사랑했네

2년 전 초여름이었다.

초여름이라고는 말하지만 고등학교에서의 여름이란 으레 다른 곳보다는 빨리 찾아오는 법이라,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는 교장 선생님을 욕하며 손부채질을 하고는 했다.

허나 그런 교장 선생님이 자신의 의지를 꺾고 에어컨을 틀어준 날이 있었으니,

6월 모의고사였다.


우리는 시험지를 받아들고 침묵 속에서 소리를 질렀다. 사락, 친구들이 한 장 넘길 때마다 나와 스피드를 비교해야만 했던 절망 같던 침묵.

시험 종료 종이 치자마자 자리에서 쓰러지듯 엎드리는 아이들과, 일어나서 하나하나 답안지를 걷어가던 뒷자리 아이들.

조용히 하라고 교탁을 탕탕 치던 젊은 생물 선생님, 국어 선생님, 음악 선생님-그리고 얼굴마저 아득한 선생님들.


쉬는 시간마다 우리는 초콜렛을 먹었고 서둘러 1층 매점으로 달려가 과자를 빵을 우유를 피크닉을 알 수 없는 허기를 그렇게 때웠다.


숨을 멈추는 소리 킥킥대는 소리 간헐적인 기침, 선생님의 조용히 하라는 그 소리


나를 죽이는 소리들이 섞여 시험이 끝나면 저녁을 먹고 야자를 했다. 집중이 되지 않아 웅성거리는 아이들과 당일 내준 모의고사 정리를 시작하는 아이들, 잠에 쫓겨 엎드렸다가도 이내 선생님께 걸려 등을 맞는 아이들 그리고 그 속에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저 울고 싶던 시간.


교무실에 불려가 모의고사 점수를 말해야 했던 순간, 수학 선생님의 낮은 신음과 진로부장 선생님의 질책 사이에서 그저 웃어야 했던 시간.


더 열심히 할게요, 나를 죽이던 시간.



그래도 10시, 야자가 끝나고 올려다본 하늘은 지독히도 까맣고 푸르러서 건물과 건물 사이 땅과 하늘 사이, 그 수평선을 사랑했네.

작가의 이전글 운명을 믿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