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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현 Nov 02. 2019

동풍이 불어오는 날, 나는 두 배로 행복해질 것이다.

어느 아재의 반성

휴대폰에 매일같이 빨간 악마가 뜬다.

일 년 중 절반은 이 놈을 만나는 것 같다.

앞이 잘 안 보이고, 크게 숨 쉬면 죽을 것 같다.

마스크를 써보지만 이게 효과가 있나 싶다.  

그나저나 안경에 끼는 김서림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군 시절 화생방 훈련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어쩌다 한 번이고 비상구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 놈은 일상이고 피할 길이 없다.

우울해진다.

인생이 불행해진다.

뭘 할 수 있는 게 없다.

오로지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귀한 날을

간절히 기다릴 수밖에.


미리부터 준비해야 한다.

귀한 날을 

더 귀하게 보낼 수 있고

피폭당한 피해를

두 배로 보상받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계획을 미리부터 세워야 한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아닌

맑은공기 일상배가조치가 필요하다.


실내에 머물기보다는

시야가 환해진 세상에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나가

밤늦게까지 버티며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냥 털털 걸어 다니기보다는

폐 속 구석구석 박혀있는 먼지를 말끔히 걷어내고

깨끗한 공기를 두 배로 마실 수 있는

격렬한 운동을 할 것이다.


홀로 속상한 일을 참고 답답해하기보다는

길가의 카페 야외 테이블에서

대화가 통하는 누군가와

속이 뻥 뚫리는 후련한 소통을 할 것이다.


혼탁해진 나의 심신을

세상 깨끗한 공기 속에서 말끔히 정화하여

원래의 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정말로 미세먼지가 없는 날에는

내 삶이 두 배로 행복해질 것이다.

휴대폰 속 빨간 악마가 사라지는 선물 같은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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