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우주가 돕는 아무튼, 습작
"깔깔깔. 애리야, 너도 곧 대운이 들어온다. 그때 돌숲을 했으면 대박 났을 텐데."
"책방에 대박이 어딨 나요. 접는 게 대박이지."
글을 쓰다가 인간이 궁금해 사주쟁이가 된 엠언니가 핸드폰에 저장된 내 사주팔자를 지나치지 못하고 한 마디 한다. 왜 그냥 일신상 이야기만 해도 궁금치 않은 사주를 봐주는지. 은근 이 맛이 떨린단 말이다. 나도 재담으로 순간 넘겼지만, 삼재처럼 일생에 3번 온다는 대운을 어찌 맞이할지 내심 신경이 쓰인다. 대운이 들어오면 준비하던 일이 운에 올라타 더 잘 풀리기 때문에 새롭게 어떤 일을 하기가 좋다. 그래서 곧 대운인 엠언니의 형부도 어울리지 않는 뚱딴지같은 자격증 시험을 공부하고 있었다.
이 얘기를 엄마 자신이 부처라고 생각하는 엄마한테 말했더니, 내가 까부는 게 못마땅했던지 몸도 조심해야 하는 때라고 한다. 그만큼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운인데, 사람이 죽기도 한단다. 내가 염치없이 운에 묻어가려고 했던 것일까? 드디어 내 세상이 온다는데 온몸으로 찬란하게 맞이하면 안 되는 것인가?
책방을 연 지 3개월이 되었을 즈음, 나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멤버쉽에 가입한 어린이들은 언제나 책을 볼 수 있고, 등교한 아이의 학부모가 아침에 자신만의 방을 가지길 바라며 9시에 오픈하는 등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고(?!) 아파트 부녀회장이나 시의원에 출마해 보라는 권유를 받으며 사명감은 불탈지 언정, 경제적으로는 가난하고 개인적으로는 책 한 줄 읽지 못하고 글 한 줄 쓰지 못하는 책방지기의 형편이 그닥 행복하지 않았다. 다정한 병에 걸린 나는 사람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타인의 행복에 외려 박탈감을 느끼며, 나는 불행해졌다.
북토크와 원데이 클래스 같은 행사를 더 많이 기획하며 보람을 쫓았지만, 돌숲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더 헛헛해졌다. 들뜬 포부는 사라지고 터무니없는 이상만 남아 여전히 마흔 언저리에서 나는 헤매고 있었다. 책방만 열면 내 인생이 뭔가 드라마틱하게 변할 줄 알았다. 뭔가 나는 여전히 내 인생이 불편했다.
괜찮아지고 싶어서 전체에서 나에게로 집중하는 모드로 바꿔야만 했다. 그것은 돌숲 사장을 가늘고 길게 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했다.
결국 <<도둑맞은 집중력>> 구조 속에 살아가는 나부터 구하고자 '읽게 해 드립니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천천히 읽는 슬로우 리딩 독서 모임을 꾸리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에 책 2 권을 슬로우 슬로우 읽으며 기쁘게 모임을 이어나가던 중에 그래도 뭔가 명징한 행복함이 들지 않고, 슬며시 찝찝한 마음이 들고일어났다.
이제는 멤버쉽과 독서모임이 늘며 한 달에 100만 원도 벌며 돌숲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나는 왜 충분하지 않다는 마음이 들까. 돈의 액수가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치는 점도 있었겠지만, 그마저도 부처 엄마가 말씀하시길, 싸돌아 다니면 한 달에 2백만 원도 쓸 텐데, 처박혀서(?!) 니 용돈이나 버는 게 어디냐고 해서, 그것도 금방 납득이 되었다. 앉은자리에서 갑자기 3백 버는 나는야, 정신 승리자!
우리 아이들이 오며 가며 나를 늘 볼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돌숲이 필요한 꼬꼬마들이 아지트에 와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초등학교가 사라지지 않는 한, 돌숲을 계속 지치지 않고 계속해야 할 명분이 커져만 갔다. 이런 이유들로 나를 세뇌시킴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켠에 불편함이 계속 도사리고 있었다.
그 때 어렴풋이 2년 동안 글 한 줄 쓰지 않은 나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40여년 동안 글쓰기에 오롯이 전념하지 않았던 나는 글쓰기에 부채감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그 무렵, 아는 동생이 혼자서는 글을 쓰기가 힘드니 같이 써보자고 제안했다. 곁가지로 일을 많이 하는 동생이나 나나 둘이서는 글 쓰기가 어려울 게 눈에 훤히 보였다. 그래서 나는 동생에게 적은 강사료나마 주고, 돌숲에서 에세이 쓰기 프로그램을 열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에세이를 써보기로 했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돌멩이 수프 책방지기로서 책방을 운영하는 에세이를 쓰는 건 고역이었다. 클래스 당일 새벽에 해치우듯 쓰는 에세이는 조악했고, 결국 넷 중에 나만 책으로 엮지 못했다. 다행히 다른 수강생은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하고, 에세이를 묶어내고, 그 작업이 시발점으로 전자책으로 이어지며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글쓰기에 대한 나의 갈망은 점점 높아졌지만, 그만큼 절망감도 깊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의 사랑방인 이 돌숲에 대한 애정이 자꾸만 커져가고, 가늘고 길게 이 공간을 오래 유지하고 싶어졌다. 지치지 않으려면 내가 우선 괜찮아져야 한다.
나는 또 마음에 맞는 지인들과 '다음 이 시간에 계속...'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글을 썼다. 이때 나는 이 글쓰기에 지치지 않기 위해 주식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그러나 이 역시도 강제성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여서인지 다음 이 시간은 계속되지 않았다.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흐지부지 24년이 되었다. 시작은 늘 반짝 반짝이고 거창한 아이디어 덩어리다.
돌숲 재계약을 결정하면서, 돌숲 2주년 기념으로 그림책 작가님을 매 달 모시고 북토크를 열기로 했다. 북토크를 연이어 기획하는 것은 필요한 곳에 매 달 기부하는 단체를 늘리는 것처럼, 버는 돈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자는 나의 신념에 일조하는 뜻깊은 일이었다. 시작은 감사하게도 <<새의 모양>> <<터널의 날들>>을 그리고 쓰신 이미나 작가님이 와주셨다. 그리고 서현 작가님, 오소리 작가님, 신유미 작가님, 이순옥 작가님과 만남을 가졌다. 그 북토크를 진행하면 할수록 이 모든 만남이 타인을 위한 일만이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한 초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글을 계속 쓰게 하는 동기가 되어주었다. 작가님들은 오래도록 쓰고 좌절하면서 결국, 계속 쓰고 계셨다. 그분들을 옆에서 뵈며 감히, 내가 그만둔다는 어쭙잖은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드는 것을 놓지 말고 계속하라고 말하고 싶다. 계속하는 사람이 계속할 수 있다."
이수지 작가, <<만질 수 있는 생각>>
수많은 작가님과 책이 내게 스승이 되어 주었다. 이전까지는 나를 들들 볶으며 스스로 질책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책과 작가님들을 만나면서 오랜 시간 생업과 가느다랗게 지속해 온 글쓰기 덕분에 오히려 나는 글쓰기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담긴 글에서 무르익은 글이 나올 수 있다고 이제는 믿는다. 지금 책 한 권, 드라마 한 편 바로 나오지 않더라도 나의 묵힌 시간으로 진한 글을 오래도록 쓸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것은 나에 대한 확신이었다. 더 완숙한 글을 쓰는 게 목표가 되었고, 일일이 다급하게 쓰지 않았다. 물론 절박하지 않은 성격적인 일면도 있겠지만, 순간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한 편의 수필에 일주일, 한 달이, 일생이라는 시간이 걸려 쓸 수도 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늘 전공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래서 전공자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책을 보고 배우고 사유하며 글을 써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결국 호매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그림책 만들기, 담해북스 서점에서 진행하는 하루 3줄 쓰기, 돌숲 프로그램으로 책 읽고 필사하기 등 성공과 실패라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글쓰기에 뭔가 다른 탈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는 행사와 가게 오픈 준비-도서관 가기, 북토크, 독서 완독 모임, 대청소 등 -로 짬이 나질 않았고, 저녁에는 우리 아이들을 건사하고, 밤에는 책을 읽다가 소파에서 잠드는 게 일쑤였다. 이제 나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창 젊을 때마냥 잠과 에너지를 줄여 글을 쓸 수는 없었다.
글을 쓰려면, 돈을 써야 한다. 글을 쓰면서 돈도 벌면 좋겠지만, 가장 원하는 것은 가장 큰 대가를 들여 얻어야 한다는 것을 내 지난날 글쓰기를 통해 배웠다.
이제 버는 돈의 액수에 연연하지 말고, 더욱 잘 쓰는 데 집중한다. 일주일 중에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3일 동안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 두 시간씩 안샘께 돌숲을 맡기고 드디어 나는 19호실로 간다. 시간 단축을 위해 1층 커피숍 창가 좁은 자리에 앉아 아는 사람을 피해 블라인드를 내리고 글을 쓴다.
알바비 2만 원과 라테 한 잔 4천 원으로 두 시간을 산다. 때마침 아이들은 간식을 요구하고, 학원에 데려다 달라고 연락이 온다. 업무차 사람들이 오기도 한다. 무슨 일은 꼭 생기므로.
그러나 2만 4천 원의 시간에 난 반드시 글을 쓰고 싶다. 책 배달을 가거나, 리프레시 차원에서 걷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글을 쓰기로 한다. 책을 읽지도 않는다. 물론 가장 졸릴 때라, 엎어져 자고 싶기도 하고, 코 앞에 있는 집에 드러눕고 싶기도 하지만 2만 4천 원과 돌숲에 있을 안샘과 아이들을 생각하면 도리상 잘 수가 없다. 졸더라도 글 앞에서 졸아야 한다. 이제는 커피숍 한 켠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머리를 싸매고 있는 내가 익숙해진 동네 지인분들도 모른 척 가거나, 간식을 몰래 챙겨주고 간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잠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오래 붙들지 않는다.
무슨 글을 쓰느냐고 많이들 물어본다. 처음에는 막상 내려왔으나, 의지만 있지 무엇을 써야 할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습작하던 대본을 꺼내며 수정 방향을 생각한다. 예전 글은 기술적으로 부족하지만, 어떻게 내가 이런 글을 생각해 낼 수가 있었을까 경이롭기도 하다. 나는 천재였을까. 초고는 쓰레기였을지 언정, 습작의 시간까지 쓰레기는 아니었다. 예전 작품을 보며 과거의 나로부터 해방되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과거의 나에게 관대해진다는 것이다.
그림책 글을 썼다. 가장 잘 쓰고 싶었지만, 창작은 늘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커서 앞에 정지된 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매일 새로운 창작을 할 수는 없었다. 그 사이사이 다른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스타에 글을 쓰고, 매일 일기를 썼다.
그즈음 '다음 시간에 계속...' 중에 작가님 두 분을 함께 만날 일이 많아졌다. 쿵짝이 잘 맞는 이 셋은 "질보다 양"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급작스레 결성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그룹명이나 무슨 글을 써야 할지 가닥조차 없었다.
그때 권지영 작가님의 <<글쓰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첫 줄을 시작할 용기를 주는 63가지 글쓰기 경험"이라는 부제가 나에게 찰떡이었다. 책이 좋아 북토크까지 열면서 그때 작가님의 이벤트로 나는 "질보다 양을 먼저"라는 챕터에 쓰기 싫어도 계속 써야 한다는 스티븐 킹의 문장을 뽑았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우리는 질은 생각지 말고, 양을 채우자라는 산뜻한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그룹명이 되었다.
아무리 질보다 양이라지만 제대로 된 틀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아무 글을 브런치에 올리자고 건의했다. 나는 인스타에, 두 분은 블로그에 적을 두고 있던 참이라 익숙한 것을 버리고 낯선 플랫폼을 이용하는 게 스스로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끄적이는 글이 아닌, 뭔가 제대로 된 아무 글(?!) 한 편씩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가입 후에 방치된 브런치 스토리를 드디어 제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의 친구, 시련은 계속 온다.
일주일에 한 편씩 그동안 생각했던 글을 우후죽순 쓰는데, 대략 돌멩이 수프, 가족, 주식, 걷기 에세이 그리고 창작에 관한 글로 가닥이 섰다. 한 편을 하루에 뚝딱 쓰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에세이라는 것이 매번 사람 욕만 쓰는 듯한 기분이 들어 울적해진다. 좋은 책을 볼 때마다 굳이 내 글까지 보탤 필요가 있나 회의가 몰아닥친다. 그럴 땐 <<글쓰기의 즐거움>> 에서 "글쓰기는 돌아 돌아서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글쓰기는 자신을 꺼내기 위한 시간이며 조금씩 알을 깨뜨리며 세상에 나오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라는 문장을 생각한다. 사람 욕을 쓰며 나와 다를 바 없는 그를 이해하고 더욱 잘해주게 된다. 글쓰기로 훌륭한 책은 될 수 없다 해도, 훌륭한 마음을 연마하기로 한다.
그 새 일주일에 3번이던 알바는 방학 동안 5번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탄력이 붙은 나의 글쓰기는 스스로 짬을 내어 새벽에도, 한밤에도 이어졌다. 물론 계속 지속할 수 없는 이유가 셀 수 없이 생기지만, 바로 결과물이 이어지지 않지만, 그저 작은 변화로 활력이 생긴다. 덕분에 글쓰기 루틴이라는 게 생겼다. 얕고 넓은 지대한 호기심의 결정체인 ENFP에게 루틴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내게 글쓰기는 늘 닥쳐서 하는 일의 하나였다. 그런데 스스로 글쓰기를 하고 있다니! 물론 브런치 스토리와 질보다 양이라는 강제성이 있지만, 나름 소속감까지 생겼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난 이마저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안샘께서 아들의 학원 일정이 바뀌어 당분간 이틀은 알바를 하실 수가 없단다. 순간, 청천벽력은 이것이로구나 느꼈다. 그래서 안샘이 안 오시는 금요일 오늘, 나는 새벽에 일어났다. 글을 쓰는 지금, 창틀에 연한 화분걸이에 다소곳이 내려앉은 황조롱이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댄다. 늘 창가에 수십 마리씩 줄을 지어 앉은 멧비둘기도 나름 반갑지만, 새벽 글을 쓰는 나를 응원하러 황조롱이까지 내려온 듯해 기쁘다.
지난 주말에 괴산에 다녀왔다. 왜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계속 들어 혼란스러운 찰나, 갑자기 교육원에서 함께 대본을 썼던 언니가 생각이 났다. 예전에 언니가 썼던 대본이 꽤 인상에 남아 언니에게 열렬한 팬심으로 피드백을 해주었는데, 갑자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집 근처까지 오면서 인연이 되었다. 그러나 더 친해지기도 전에 언니는 갑자기 괴산으로 이사를 하였고 돌숲 오픈 할 때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리스를 보내는 가 하면, 괴산에 친환경 농작물을 몇 번 보내어 주며 인연이 가늘게 이어지고 있었다. 괴산에 가겠다는 말만 하고 3년이 지난 게 불현듯 떠올라 버스를 갈아타고 5시간 걸려 언니에게 갔다.
원래 영어 선생님이었던 언니는 지금 대안학교에 기숙사 사감으로 지내고 있었다. 남편과 둘이 사는 사택에서 투박하게 툭툭 싼, 아보카도가 들어간 김밥을 얻어먹으며 언니가 건강에 관심은 많지만 요리는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근처 개천을 한 바퀴 돌며 남편의 노후를 위한 이야기를 듣는데, 예전에 언니가 쓴 칼갈이 직업으로 하는 대본이 남편으로부터 나온 소재인 것을 듣고 웃었다. 인터넷이 안 되는 사택보다는 기숙사에서 지내기를 좋아한다는 언니를 따라 일하는 곳으로 갔다. 방 한 켠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모두 책과 차로 단정히 꾸려진 공간이었다. 언니의 책상 위에는 로버트 맥기의 <<캐릭터>>라는 책이 놓여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뭉클하고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감동을 느꼈다. 속초에서 사 온 90년 된 보이차를 내놓고 물을 계속 따르길래 그만하라니까 언니는 그게 좋단다. 뭐 하면서 지내냐니 안경을 닦으며 자기는 혼자 지내는 게 너무 재미있단다. 드라마를 보고, 작법서를 보고 글을 끄적인단다. 작법서로 공부만 하고 글을 안 쓰면 어쩌냐니, 안 쓰는 건 아니니까 괜찮단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보고, 개천을 걸으면 하루가 짧단다. 나는 이제 한국 드라마는 잘 안 본다. 드라마 이야기를 해도 시청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 드라마에 박식한 언니 이야기에 미소가 지어진다.
언닌 왜 계속 글을 써요. 난 이런 게 좋아요. 가르치는 게 안 맞더라고. 찻물을 우리러 물을 계속 뜨러 가길래, 큰 데다가 떠다 놓으라니, 그마저도 그게 좋아서 하는 일이란다. 언니의 글처럼, 언니의 말과 삶이 참 담백했다. 예전에 언니가 우리 집에 불쑥 찾아온 순수한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때도 지금도 좋아서 하는 것이다. 알면서도 감동하고 납득이 된다. 너무나 단순하고 명징한 이유를 몸에 새기면 참 좋으련만. 반복된 물음에 답을 찾으며 쓰는 것이다.
며칠 전 올케가 책방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내게 책을 자주 사러 오시는 한 손님을 19호실에 만났다. 동경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본다. 보통은 그 시선이 부담되거나 방해가 될 텐데 그날은 손님의 반짝임으로 잠시 피로가 가신다. 조앤 롤링도 커피숍에서 해피포터를 썼다고 했잖아요. 너무나 옛날이야기에다가 나를 조앤롤링에 빗대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으나 이 손님의 눈길 따라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진다. 글로 유명해지고 싶다. 나도 언젠간 탈고는 스위트룸에서 하려나. 응? 카페요앞은 엘리펀트하우스가 되고?
엄마가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란다. 나는 그 어마무시한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볼 용기가 아직 없다. 그러나 부모, 자식, 일상에 주변의 이야기를 나 말고 어느 누가 애정으로 기록해 줄리는 만무하다. 언제가는 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글을 쓰는 일에 이토록 구구절절한 이유를 대야 하며 한 편으로는 거창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제야 온 우주가 내가 글을 쓰도록 돕는다. 아무튼, 습작으로 시련이라는 장애를 극복하게끔 이마저도 천지신명이 돌보시어 내년, 혹은 내후년 대운으로 나를 살피신다.
그동안 글쓰기 준비를 착착하고 있었구만요. 브런치 스토리를 본 지인이 말을 건넨다.
잘 모르겠다. 나는 늘 지금 괜찮은 마음에 의지해 나아가는 나 자신이 중요하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사장님도, 작가도, 선생님도, 언니도, 아내도, 엄마도 없다. 글 속에 내가 있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맺는 관계의 밀도 역시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