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동료가 있다.

돌멩이 수프

by 이애리

유리창에 '돌멩이 수프'와 '개미 미용실' 글자가 붙은 시트지 사이로 개미 이모와 눈빛이 엉킨다.


아침 독서 모임에 온 사십 대 중반인 손님이 대학생 때부터 개미 미용실을 다녔다는 말에 내 동공은 흔들렸다.

개미 이모만 보면 나를 품어주는 그 미소에 대고 바쁘다, 힘들다, 죽겠다고 앓는 소리를 한 내가 한심하다. 나는 책방이 자리 잡힌 지 돌숲 4년 차, 이모는 개미 미용실을 운영한 지 n 년 차. 개미 이모는 25살, 개미 미용실 직원일 때부터 이곳에서 일을 하셨다고 한다.


뛴다. 백팩에 매달린 키링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나오기 직전에 감아 물이 맺힌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뛴다. 두 딸을 등교시키자마자 상가로 향한다. 2층에 뛰어올라 오는 나를 보고 J가 대학생 코스프레 아니죠, 피폐한 나를 보고 좋은 구경 했다며 얄밉게 웃으며 지나간다.

월요일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목이 따갑다. 이번 주는 행사가 줄줄이인데 감기에 몸살 기운까지 겹쳐 삭신이 쑤신다. ‘동행 공간’ 지원사업팀에서 돌숲 공간을 촬영하는 날이라 잠시만 나와 있기로 했다. 촬영하는 틈틈이 옆집 소아과에 가서 진료를 보고, 맞은편 약국에서 약을 지어먹었다.

촬영 기사님이 가시고 나도 들어갈 요량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12시가 다 돼 간다. 월요일은 어린이들이 4교시라서 12시 20분이면 온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은 몸을 사리고 집에 들어가 쉬고 싶다. 내일은 테레사 책방지기님께서 오셔서 프레드릭 인형 만들기를 함께 한다. 열 분 가까이 모시는 자리에 내가 병이 나면 안 될 것 같다. 어서 나를 대신해 알바를 해줄 분을 카톡으로 물색한다.

돌숲 알바를 꿀알바라고 말하는 J는 일단 패스, 안샘은 어제 아이가 열이 났다는데 피해야지, 원두언니는 카톡이 조용한 거 보니 바쁘겠지, 실성님은 도서관에 갔다가 오후에 일 가시겠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앞집에 '늘 있는' 개미 이모가 보인다. 얼굴을 마주하는 건 하루에 한두 번일까 말까다. 내가 아침에 일찍 문을 여는 날에는 성인 모임으로 이모의 출근을 거의 보지 못한다. 낮에 이모는 예약 손님으로, 나는 멤버십 어린이로 가게가 내내 들락인다. 그러면 우리는 퇴근하면서 하루 첫인사 겸 마지막 인사를 할 때도 있고, 먹거리를 나눌 때 빛의 속도로 겨우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오늘은 개미 이모가 왜 일찍 나왔냐고 먼저 인사하신다. 물론, 어린 내가 먼저 인사를 하지 않아도 이모는 쏘쿨하다. 나는 이모께 물어본다.


“이모는 아픈 날에는 어떡해요? 일요일 빼고 쉬는 날을 못 본 거 같아요.”


개미 이모는 상호명 한 번 잘 지었다고 생각할 만큼 10시 즈음부터 9시까지, 일개미처럼 일을 한다. 내가 6시 반에 돌숲 문을 닫고 밀린 일을 하느라 남아 있으면, 앞에서 쉬지 않고 손님 머리를 만지는 이모가 보인다. 나이도 나보다 많고, 몸매도 야리야리해서 툭치면 쓰러질 거 같은데 아슬아슬하게 버틴다. 얼굴이 붉어져도, 마스크를 껴도, 토악질을 해서라도 이모는 여태 쓰러지거나 미용실 문을 닫지 않으셨다.


“나도 감기가 계속 들었다 나갔다 해. 어떡해. 약 먹고 해야지.”


그러고는 부끄러운 듯이 미소 지으신다. 나는 나를 대체할 일일 책방지기가 있지만 이모는 미용 기술이라 대신해줄 이 없으니, 그냥 혼자서 늘 해왔던 거다. 매일 굿모닝, 굿나잇 인사를 나누었던 이모는 어떤 날은 아팠고, 어떤 날은 힘들었을 텐데. 어찌 그리 티 내지 않고 매번 웃으면서 나와 인사를 나누며 쉬지 않고 일을 하셨던 것일까.

문 앞에 알라딘 택배 두 박스가 놓인다. 손님이 주문한 책과 신간이 들어 있어서 얼른 정리한다. 주문하신 분께는 문자와 카톡을 드리고, 신간은 신간 섹션에 정리한다. 30분은 금방 지나, 멤버십 어린이들이 밀려 들어온다. 방학 직전이라, 방과 후 수업도 하지 않은 아이들까지 등록하러 와서 9평 실내가 더욱 붐빈다. 오늘따라 이렇게 바쁜데, 알바 분이 했으면 정신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시간이 후딱 지났다. 내가 너무 몸 사렸던 것일까. 약 기운이 돌아 수마가 덮치는가 싶더니, 식은땀이 흐르고 시간이 갈수록 팔팔해진다. 우리 옆옆옆집 소아과 약이 독하기로 유명한데, 약을 먹으면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잠이 쏟아져서 안 잘 수가 없는 마법의 약이다. 이모도, 나도 급할 때만 지어먹는 약이다.

북적이던 시간이 지나 잠시, 개미 이모는 내가 저번에 음식 담아서 드린 접시와 컵을 돌려주면서 전복죽 작은 한 통까지 덤으로 주신다. 내가 아픈 걸 모르는 이모는 나를 위해 준비했을 리는 없고, 이모도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아니 안 아파. 나 전복죽 좋아해. 손님이 계속 들어오니까 빨리 먹을 수 있고, 소화가 잘 되거든. ”


프로다. 자영업 30년 이상 n 년 차 이모는 다르다. 진정한 자영업 고수는 끼니를 거르지 않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으로 빠르게 채우는 법이다. 일에 무리가지 않게 아침, 점심, 저녁으로 자신의 몸을 챙긴다. 전복죽은 영양가가 높고, 특히 본죽 전복죽은 맛도 좋다. 삼계탕, 쌀국수, 전복죽, 팥죽 등 몸을 보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종류도 다양하게 드신다. 돌숲 4년 차인 나는 여전히 점심을 건너뛴다. 퇴근해서 폭식과 야식을 즐긴다.

이모한테 쌍따봉을 날렸더니, 파안대소한다. 복도에서 이모한테 핸드폰 사진 전송하는 순서를 알려드리며, 인수자를 찾는다고 하니 여지없이 웃는다. 내가 이렇게 바쁜데, 돈은 왜 못 버는지 모르겠다고 쥐어짜는 소리를 해도 해맑게 웃으신다. 돌숲을 하기 전에 손님으로 이모를 만났을 때는 기운이 없으시고, 시니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용실 사장님으로서 단면만 보았던 그때는 이모의 매력을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 만나는 그녀는, 자신이 가진 가냘프지만 강단 있는 에너지로 미소 지으며 손님의 머리를 만지고, 최선을 다해 일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 가족은 이모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데, 헤어스타일 변덕이 심한 나는 아직 이모의 손이 낯설지만(아마 이모도 내 머리가 늘 낯설 것이다.) 머리를 하는 날 우리는 가장 많은 대화-안부와 경제흐름과 같은-를 나눈다. 우리가 커피숍에서 만나는 건 뭔가 남사스러운 느낌도 살짝 있는데, 이렇게 서로의 각자 일터 안에서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게 자연스럽고 편하다.

머리를 하다가 알게 되었다. 이모는 소소하게 주식을 한다. 그 뒤로 서로 보유한 주식이 오르면 출근길에 유리창 너머로 눈을 찡긋한다. 무언의 눈빛으로 서로 축하해 주는 것이다. 최근에는 80세 주식 고수 할아버지가 쓴 <<주식의 기쁨>>을 사가셨다. 다 읽으시면 부의 철학서인 신간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을 추천드리려고 한다.

이모는 가끔 내게 책을 추천받아서 읽기도 하신다. 정말 바쁜 틈에 책을 읽을 시간이 있을까 모르겠다. 손님한테 얼핏 들었다면서 <<파친코 1>>을 읽으시고는, 2권을 사가셨다. 돌숲에서 북토크하는 책을 구매하기도 하고, 손님 추천 책을 구매하기도 하신다. 돌숲을 오픈했을 때부터 개미 이모는 미용실에 둘 <우먼 센스> 잡지를 매월 주문해 달라고 하시면서 매번 정가로 구매하신다. 사소한 것에 배려해 주시는 마음에, 나는 이왕 같은 돈이면 품절되기 전에 사은품까지 있는 우먼센스를 선점하려고 신경 쓴다.

저번에 머리를 하면서는 옷은 어디서 사냐고 물었다. 어느 겨울에 단지 내를 돌면서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하다가 개미 이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앞치마만 입은 이모만 보다가, 트렌디한 이모를 보고는 못 알아볼 뻔했다. 장성한 아들만 둘인데, 이모 혼자서 대체 저런 옷은 어떻게 사 입는 것일까. 물 빠진 연청 통바지에 허리가 잘록한 롱 패딩을 입고, 머리핀을 빼고 펌 헤어를 휘날리며 나를 보며 방긋이 웃을 때 나는 이모한테 입덕했다. 난 운동한답시고 쫄쫄이를 입고 올록볼록한 몸매를 드러내고는 아무도 나를 못 알아보게 할 요량으로 캡모자까지 썼는데, 눈썰미까지 있는 이모는 나에게 손을 흔들며 간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수십 번 숙이며 얼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옷은 아무 데서나 구입하신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3년 동안 각자의 시간 속에서 함께하는 이야기를 쌓았다. 우리는 나이와 연륜과 업종을 뛰어넘은, 동료다. 내가 평상심으로 일관되게 가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앞에 늘 묵묵히 서 있는 개미 이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사이에 친구나 동반자도 있고, 스승과 제자 사이도 있고, 이웃도 있지만 왠지 이모와 나는 동료이고 싶다. 손님 머리를 만지다 지친 틈에 이모가 창문 너머 돌숲을 바라봤을 때, 나도 이모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우스갯소리도 좋고, 미소도 좋다. 그렇게 혼자 일하는 이모에게만은 나도 변치 않는 동료이고 싶다.

어느새 8시가 넘었다. 9시를 넘기지 않으려고 나는 먼저 퇴근한다. 인사를 하려고 창문 시트지 사이로 이모를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이모, 부르며 안으로 들어서니 이모는 안쪽에 놓인 샴푸대 의자에 누워서 쉬고 계신다. 또 속이 좋지 않으신지 얼굴이 벌겋고 입술이 허옇다. 내일 쉴 만도 하신데, 아마 이모는 내일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개미 미용실' 문을 열 것이다. 그저 우리는 함박 웃으며 내일을 기약할 뿐.

1층으로 내려가자마자 '요런 분식' 부부 사장님 두 분께서 아직 정리 중이시다. 아침에 출근할 때도 계셨는데 퇴근할 때도 뵙는다. 하는 일에 방해가 되실까 봐 다른 때는 부러 인사를 하지 않지만, 오늘은 두 분 다 눈을 맞추고 크게 인사를 나누며 밖을 나선다.

집과 일터를 여러 번 오가며 내내 혼자 종종 거린다는 서러움이 때때로 밀려온다. 그럴 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오늘도, 내일도 있는 동료가 내게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참 든든하다.


작가의 이전글오합지졸 도쿄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