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지졸 도쿄 여행기

조화로운 가족

by 이애리

여긴 어디. 또 도쿄였다.


우리 가족은 26년 새해 계획표를 쓰다가 갑자기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급작스럽지만 검색해 보니, 비행기 좌석이 있다. 숙소도 있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 뒤에 도쿄에 가야 한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꼬였던 거다. 황금 연말에 비행기 표가 있다니. 숙소가 있다니! 나는 30일부터 돌숲 방학을 하고, 첫째도 29일 월요일에 학교 방학이니 30일 화요일부터 가자고 했다. 그러나 개미들은 다르다. 남편과 둘째 딸은 이틀 먼저 가 있겠다고 한다.

아, 이때만 해도 집에 있겠다고 했더라면. 내 5일을(어떻게 마련한 5일인데!) 그렇게 날렸다. 불완전하고 불분명한 계획 속으로.


정이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종업식은 월요일이 아니라 화요일인데, 행정적 업무를 마무리해야 하니 더 늦춰서 갈 수 없겠냐고 하신다. 그렇다. 가지 말라는 첫 신호를, 나는 해맑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보고서를 미리 써서 내서라도 가겠다고 했다.

정이가 써낸 보고서는 느낀 점이 부족하다고 반려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상상해서 쓸 수 있어야 한다며 그동안 경험한 체험을 떠올리고 감정 이입해서 쓰라고 독려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을 문자로 보내 달라고 하셨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 정이와 나는 핸드폰 문제로 싸우다 말고, 셀카를 들이대고 부은 얼굴에 경직된 미소로 사진을 찍어서 전송했다. 다행히 잘 다녀오라는 선생님의 허락하는 문자가 이륙 전에 도착했다. 뭔가 일이 착착 진행되는 느낌이, 뭔가 막연히 좋다고만 생각했다.


개미가 없어도 잘할 수 있다 이거야!

우리는 가열차게 하늘 위로 솟았다.

오기였나.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잠이 든 아이는 갑자기 잠에서 깨더니 어지럽다고 승무원을 불러달라고 한다. 꿈꿨니,라고 묻고 싶지만 아이는 가끔 체한 건지, 호르몬 영향인지 한 번씩 어지러워한다. 입술이 하얘지며 손을 만져 달라고 하더니, 벗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벗지 않던 윗도리를 나시만 남긴 채 허겁지겁 다 벗었다. 다급했다.

기체가 불안정해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승무원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증상의 이유를 잘 모르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려고 한다. 가령, 만능 혈자리인 엄지와 검지 사이에 폭 파인 합곡혈을 사정없이 누르거나, 등을 치거나, 어깨를 주물러 주며 이중에 얻어걸리기를 바라지만, 이제라도 수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합곡혈을 얼마나 눌러 댔을까. 아아, 입술에 핏기가 돌아온다.

체했나 싶다. 비행기 탑승 전에 푸드 코트에서 미역국으로 거하게 아침을 먹은 정이는 던킨도너츠에 들러서 도넛 2개를 입안에 욱여넣었다. 캐리어를 부치지 않아 시간이 많이 비자, 정이는 구석에 웅크리고 건드리면 죽일 기세로 핸드폰을 봤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전날부터 목이 아파 감기약을 먹고 정신이 혼미한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면세점에 들어가 아이쇼핑을 했더랬다.

그러고는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아, 그렇다. 좀 더 일찍 정이가 어지럽다고 했다면, 비행기를 안 탔을지도 모른다. 분명,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엄마한테 전화도 왔었다. 급작스레 떠나는 만큼 조용히 다녀오려고 했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 엄마한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신정에는 어떡할 거니.

이 자잘하고 사소한 부정적인 신호들을 알아챘어야 하는데. 이때도 나는 기회를 흘려버렸다. 우리는 얼마나 감들을 무시하며 사는 것일까. 잠이 쏟아진다. 김홍 작가의 <<말뚝들>>을 다 읽을 무렵 무사히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생각해 보면, 말뚝이 주인공 앞으로 나타났을 때의 내 기분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희열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하루키 문학관에 가서 읽고 있던 <<해변의 카프카>>와 인증하고 싶었던 나는 방학이라 문학관이 있는 와세다 대학이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루키를 내팽개치고 김홍을 택했던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눈을 뗄 수 없는 서사와 문체에서 이런 똘끼를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암튼, 김홍, 그는 이번 여행의 쾌거랄까, 그랬다. 중요한 것은 와세다 대학이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우리는 나리타 공항인데, 우리가 직접 헤어진 가족을 만나러 가야 한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나는 덩그러니 서있는 정이 옆에서 남편이 별표 쳐서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정독한다. 지하로 내려가 남편이 준비한 큐알 바우처를 게이세이 스카이라이너 창구에서 닛포리 역으로 가는 티켓으로 교환했다. 왕복 티켓이니까 보관에 유의하라는 남편의 메시지를 지키기 위해 정이 점퍼 주머니가 나을지 그나마 내 점퍼 주머니가 나을지 옥신각신하다 우리 점퍼가 색만 다른 똑같은 점퍼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정이는 흰색, 그녀의 엄마는 보라색이다. 마주 보고 선 우리는 데칼코마니다. 세일할 때 막 지른 남편의 센스에 화가 치미는데 이제야 알아차린 나에게 소름 끼친다. 오십 보 백 보지만, 스카이라이너 왕복 티켓은 보라색 점퍼 주머니 속으로 향한다. 언젠가 어느 작가님이 우리의 싸움을 두고, 자매의 싸움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엄마는 엄마니까, 좀 낫지 않겠어...

드디어 스카이라이너를 타고 남편과 막내가 있는 곳으로 간다. 이미 개미들은 다른 코스에 들렀다가 온다며 늦는단다. 닛뽀리에서 내린다. 아무 출구로 나가니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한가득 몰려 아래를 내려다본다. 우리(하양이와 보라)도 합세해 같이 내려다본다. 수십 개의 선로가 교차하면서 네다섯 대가 한꺼번에 오고 가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 선로에 다양한 기차가 한꺼번에 교차하면 정말 멋질 것 같다. 사람들은 그때를 기다리는 듯하다. 도쿄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때가 종종 있다. 무겁고 큰 카메라를 든 가족이 다리 위에서 열차가 지나가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때를. 그러면 우리는 함께 기다리다가 그냥 가던 길을 가곤 했다.

배고픈 우리는 관광객들이 가는 방향 대로 따라 걷는다. 캐리어가 없으니 가뿐하다. 관광객과 주민인 듯한 사람들을 따라 걸어가 야나카 긴자를 구경한다. 석양 명소로 유명한 이곳 계단을 따라 내려가 상점이 많은 고양이 마을을 구경한다. 날도 다스해 흰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어 땅에 툭툭 떨어지고, 새해라 그런지 꽃양배추와 낙상홍 붉은 열매가 포장된 기이한 꽃다발들이 가게 밖에 나와있다. 손님 줄이 긴 가게마다 따라 서서 우리는 온갖 간식을 다 먹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멘치카스와 아이스크림이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잘 먹은 편이었다.

가챠샵이 보인다. 곧 만날 가족 생각에 마음이 푸근해진 나는 엄마와 와서 눈치만 보는 첫째가 이제야 안쓰러워 동전을 양껏 주었다. 개미가 없어도 된다 이거야! 공항에서 환전까지 한 나라고! 물론 하나은행 창구에서 환전할 때 할인받으라고 남편이 다운로드하여준 쿠폰은 정작 잊었지만. 할인율은 그다지 크지 않은 걸로.

정이와 내가 번갈아 가며 뽑기를 했는데도 그들이 올 생각을 않는다. 우리가 닛뽀리 역으로 다시 향한다. 내가 아는 부녀가 멀리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놀래켜 주었다.


현준 상, 곤니치와.


두 사람 표정이 안 좋다. 여기로 오는 사이에 개미 1호와 2호가 분열됐단다. 2호가 말하길, 그동안 많이 참았단다. 맨날 아빠가 화만 냈단다. 개미 1호 왈, 엄마 왔다고 태세 전환이란다. 쟨 뽑기만 하고 폰만 봤단다. 2호 왈, 눈치도 봤어. 분열된 가족을 보니, 베짱이 1호와 2호는 그저 흐뭇해진다. 보라와 하양이는 어깨동무를 하며, 약 올린다.

그새 그들은 일본 사람이 다 됐다. 전철을 타더니 혀를 내두를 정도로 능숙하게 우리를 다음 숙소로 안내한다. 가만히 걷지 못하는 밤이는 낯선 거리에 홀로 춤을 추며 흐느적 걷는다. 우리는 한국인 여행자로 일본에 사는 한국 교포를 만나러 온 기분이다. 왠지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베짱이 팀과 개미팀은 이때까지도 모든 게 순조로웠다.


이다음부터는 2만 보, 3만 보를 걸어서 가는 곳마다 연말과 설이라 죄다 문이 닫힌 현실을 맞닥뜨려야만 했다. 포켓몬 센터, 다이소, 맛집 어디든. 물론 검색할 때는 ‘영업 중’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걸어 걸어갔다. 밤이가 짠 스케줄은 분 단위로 촘촘했는데, 문이 닫혀 있으면 다음 장소로 빠르게 이동해야만 했다. 그런데 다음 장소도 역시 문은 닫혀 있었다. 철제 셔터에 붙은 말 그림이 그려진 안내문에는 새해 인사와 1월 5일부터 오픈한다는 글이 적혀있었(던 것 같)다. 지난 추석 연휴가 떠오른다. 영주 시장에 그 유명한 떡볶이 가게도 추석 당일 아침부터 버젓이 열었는데, 도쿄에는 먹을 곳도, 쇼핑할 곳도 없었다. 그나마 개미 두 명은 일찍 가서 도쿄를 원하는 대로 누린 듯하다. 뽑기를 원대로 하고, 이미 캐리어 한가득 쇼핑도 하고, 만두도 먹었단다.

일본에서 산 2만 원 가까이하는 종합 감기약을 하루 세 번 챙겨 먹어야 했던 나는 아침에는 맥도널드 해피밀 세트로, 점심에는 문 연 아무 데서, 저녁에는 편의점에서 산 빵부스러기로 삼시 세끼를 달래야만 했다. 먹을거리 앞에서 나는 늘 한국의 김밥 천국과 우리 집 상가에 요런 분식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전철이라도 타면 나는 금세 곯아떨어져 잠들었다. 정신 차리면 또 걷다가 문 닫힌 셔터를 맞닥뜨리고 한 칸짜리 목조 주택으로 돌아와 추위에 떨면서 잠들었다. 나는 감기에 걸려서든, 감기약에 취해서든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 이동할 생각도 전혀 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마지막 감기약을 털어 먹었을 때-는 이미 마지막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지난 도쿄 여행 때 인상 깊었던 오기쿠보역에 같은 숙소를 예약했다. 물론 이 숙소가 좋았던 이유는 주변에 친절하고 아기자기한 상점이 많았기 때문인데, 추억의 상점들을 투어 하고 싶었던 남편은 그나마 문이 열려서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던 도쿄국립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정말 눈도장만 찍고 다시 나서자고 했다.

미술관 정원을 거닐고, 그곳에 있던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했더라면. 분수대 앞에 앉아 10분만이라도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그곳에서 진정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에 없다. 다행히 티켓 한 장이 없다며 남편은 밖에서 쉬고, 어지러운 나는 나보다 더 어지럽다는 두 아이를 끌며 미술관 안을 뱅뱅 돌았다. 정신착란을 일으키 직전인 나는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출구를 찾아 나온 기억 밖에는 없다.

잠시 앉지도 못하고 남편의 손에 이끌려 다시 오기쿠보역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엄청 큰 묘역 옆을 지나가는데, 크고 우람한 나무의 정체가 궁금해 기웃대다 나뭇가지에 앉아서 쉬시는 까마귀가 나한테 달려들 듯이 날아왔다. 나는 식겁하며 횡단보도를 무작위로 달리며 우리 가족에게 크나큰 즐거움을 주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던 오기쿠보역에 당도했다. 스산하다. 이곳에서도 양사이드로 철제 셔터가 우리를 맞이한다. 설마, 꼬치집을 지난다. 당고집도 지난다. 돈가스 정식집, 이탈리안 레스토랑, 비싼 벌꿀 과자집. 모두 문 닫았다. 괜찮다. 체념은 빨라졌다.

우리 숙소는 문 열린 1층 케밥 가게 위에 2층이다. 2층 문을 열자마자 냉기가 쏟아져 나와 우리 뺨을 찰싹 인다. 온 방에 케밥 냄새가 진동을 한다. 늦은 밤, 케밥 냄새와 먼 침대 안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던 내게 남편은 케밥이라도 먹을 테냐고 묻는다. 전국에서 수상한 유명한 집이란다.

일본에 올해 첫눈이 내린다. 폭설을 뚫고 동키호테와 케밥 가게에 다녀온 세 사람은 신나 보인다. 터키인 케밥 가게 사장이 ‘짜이찌엔’이라고 했단다. 방명록에 쓰여 있기를, 케밥집 사장의 할아버지가 6.25에 참전해서 한국에 굉장히 애정을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짜이찌엔이라니. 안녕이라고 수정하지 그랬어. 나는 짐짓 우울하게 케밥을 뜯는다. 이 케밥마저 내가 싫어하는 소고기가 가득이다.

남편은 그래도 너는 원하는 가부키 공연도 보고, 박물관, 미술관은 가지 않았냐, 나는 오기쿠보역에서 지난번에 못 먹은 꼬치를 먹으며 맥주 한 잔 하고 싶었는데 못 했다며 맥주를 들이켠다.

그렇다. 잊고 있었던 가부키 공연. 그 화려했던 시부야 밤거리에 입구도 알 수 없는 나이트클럽에서 가족 극단이 운영하는 듯한 차력쇼, 그것을 말한다. 이 사기극에 믿을 수 없어, 뭔가 더 남았을 거라고 말하며 다른 외국인 관광객도 다 나가는 판에 끝끝내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나였다. 민족적 자존심을 버리고 이마에 묶은 무사 끈을 풀며 허망하게 출구를 찾아 더듬거리며 나왔던 공연이었다.

바람에 덜거덕이는 유리창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내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한다. 눈이 멈추지 않는다. 거실 유리문을 여니 축축한 대기에 제법 성글어진 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뭔가 이번 여행은 몽롱한 정신으로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출구를 찾아 모험한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김홍 작가는 두 가지 사건을 던지며 시작하는 하루키와도 닮았고 그 유머스러움과 문체는 이기호 작가를 떠올리게 했다. 세 작가 모두 출구를 찾는 글을 쓰지 않았던가. 하긴 사는 게 다 출구로 향하는 길이다. 이기호 작가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지난 시절 한 방을 꿈꾸던 내 정신의 초상과도 같은 작품이다. 한국에 무사히 돌아간다면 작가의 최신작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을 무조건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잊고 지낸 것들이 사무치게 그리운 밤이다.

그래도 남편은 매일 밤마다 문 닫기 전 마트에서 할인하는 안주거리-당고나 도시락-를 사 와 다양한 일본 맥주를 마신 밤이 이번 여행의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첫째는 이번 여행 중에 가장 좋았던 숙소가 공항버스 타는 터미널 옆에서 묵은 수원 호텔이라고 말했다. “대궐 같은 방에 층간 소음도 없고, 바닥도 따뜻하고. TV가 어찌나 크던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막내는 뭐라고 말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가오는 자신의 생일에 뽑기 기계를 사달라고 한 말밖에는. 이번 여행의 수혜자는 막내였다. ‘뽑기에 도른 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연말 연초에 가는 데마다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뽑기. 눈에 뵈는 게 없어진 그녀는 뽑기 기계만 보면 돈을 요구했다. 안 주면 눈빛이 돌변했는데 그 눈빛이 뭔가 익숙했던 터라, 이 참에 나는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사행성은 담을 쌓아야 한다. 너희의 증조할아버지 최 00 씨는 오 00 며느리와 사는 동안 한 번도 구직활동을 한 적이 없었다. 어리고 차돌 같은 너희 아빠를 매일 데리고 남산을 오르내리면서 약수를 뜨시고 노름을 하러 다니셨지. 마음씨가 좋으셔서 너희 친할머니는 증조할아버지를 미워한 적이 없었다고 해. 놀고먹는데 마음씨는 당연히 좋았겠지. 덕분에 독자였던 너희 친할아버지는 다섯 고모와 엄마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셨어. 사행 행위 근처에도 안 간 너희 할아버지는 주식 투자 한 번 하지 않으셨단 말이다.

너희 외할아버지는 어떻고. 노름으로 가산 탕진을 몇 번 했을까. 이 엄마는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랑 이혼하지 않은 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해. 그건 사랑이야. 얼마나 사랑하면 그럴 수 있는 걸까. 외할아버지가 탄 배가 삼천포에 들어오면 외할머니는 손바닥만 한 티코를 타고 외할아버지를 모시러(잡으러) 가셨단다. 혹여나 할아버지가 도망을 치면(날으면)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를 찾으러(잡으러) 다니셨지. 티코가 전국방방곡곡 안 다닌 국도가 없다고 들었어.

자, 우리 양가 산맥에는 노름쟁이 피가 흐르고 있다. 고로, 우리 집에는 사행성은 있을 수 없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 1층 카페요앞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던 중에, 어디서든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여유로움만 있으면 괜찮은 여행 중이란 사실을, 꽤 명확하게 깨달았다. 그런 때가 이번 여행에는 없지 않았나, 생각하다 한 순간이 떠올랐다.

1월 1일 새해가 이대로 가는 게 아쉬워서 기타센주에 묵었던 숙소 근처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던 것이다. (이 즈음이면 할 건 다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갓밝이에 다른 때와 다름없이 적요한 골목길에 우리 가족만 떠들썩하니, 새해가 맞나 의혹이 들었다. 혹 일본인은 일출을 안 보는 것인가 궁금해진다. 일본 골목길은 새벽이나 밤이나 인적이 뜸하다. 대신에 동박새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꽃이 핀 골목 사이사이 찾아가니 우리 숙소 근처 동백나무에 하얀 테두리 눈에 연둣빛 동박새 두 마리가 흰 동백꽃 꿀을 빨아먹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는 정적이 깔린 남의 집 담벼락에 쏟아질 듯한 동백나무 아래에 서서 새벽을 내 것인 양 누렸다. 나는 떨어진 흰 동백꽃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앞서 걷는 남편을 뒤따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집마다 내놓은 꽃구경을 하며 골목길을 10분 걸어, 계단을 올라 제방길에 다다르니 아라카와 강이 나온다. 본류는 스미다 강인데 도쿄만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을 보고 아이들은 <스즈메의 문단속>을 떠올린다. 하늘 끝에서 다리 끝까지 가득 찬 구름을 보니, 스즈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재난을 부르는 문이 열린 것은 아닌가 문득, 오싹해진다.


문을 닫아야만 하잖아요, 여기를!


일출을 보려는지 강가에 있던 텐트에서 지퍼를 열고 젊은이 네다섯이 나온다. 도쿄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골목길마다 들어차는 게 아래로 보인다. 구름을 뚫고 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먼 데를 바라본다. 이곳에 다 같이 있는 지금 이 순간 국적을 막론하고 남녀노소 우리는 한 가지만 바란다. 하늘에 동살이 들기 바쁘게 주변이 오렌지빛으로 빛나니 이미 해가 떴나 보다, 한다. 돌아가려는데 누군가 우리 뒤로 해가 뜬다고 말한다. 엄한 데를 바라본 우리는 뒤돌아서 동쪽에 뜨는 진짜 햇귀를 바라본다. 구름이 움직이다 잠시 벌어진 틈 사이를 가득 채운 노랗고 귀여운 해다. 우여곡절 끝에 오합지졸은 어떻게든 해를 보긴 본 것이다.


엄마, 아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의 신정은 도쿄에서 맞을게요. 올해도 건강을 빌며 우리는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골목길 모퉁이에 자리한 유명한 당고집은 역시나 문이 닫혀 있었다. 이번에 우리는 그 앞에서 서성이는 관광객을 따라 같이 절망하거나 우물쭈물하지 않는다. 그들과 닫힌 문은 뒤로 하고, 다음 문을 향해 다시 걸어야 한다. 우리 가족의 ‘스즈메의 문단속’의 다른 버전이랄까.

나는 타국의 어느 마을 어느 강에서 일출을 맞이하던 그 아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오래 전에 잡힌 모임 장소로 혼자 이동했다. 오래된 모임의 총무인 나는 연말에 회비를 털기 위해서 1년에 한 번 공연을 잡는데, 이번에는 열 번도 더 읽은 <<파이 이야기>> 연극을 예매한 것이다. 태평양 한가운데서 리처드 파커와 살아 돌아와서는 두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를 믿냐고 묻던 파이의 이야기다. 때마침 식사 장소에 이르게 도착해 소고기 편육찜과 밥 한 공기를 시켜서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 말도 없이 목구멍으로 넘겼다. 오랜만에 본 그녀들이 나보고 굶었냐고 물어본다. 그저 내 무릎 위에 올려진 가방에는 뽑기템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뿐.

수원에 도착한 가족들도 밥을 먹으러 가는 길이라고 연락이 왔다.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초밥 가게라는 말에 박장대소했다. 일본 산지에서 문 연 데를 물어물어 찾아간 유명한 가게의 오리지널 초밥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넘사벽이었다. 두툼하게 썰어 올린 회가 너무 싱싱해서 느끼했던 탓에 우리는 계속 유부 초밥만 시켜 먹었더랬다. 결국 수원에 온 세 남매, 이번 여행으로 남편은 남매로 승격(?) 되었다, 의 첫 끼니는 집 근처에 싸고 저렴한 초밥 가게의 1900원짜리 퓨전 스시였다. 맛도 솔직히 인정한다. 소고기가 올라간 스시와 낙지 군함, 살짝 구운 연어에 달짝지근한 소스가 올려진 연어초밥(오리지널 아님). 군침 돈다.


남편은 새해 계획표에 ‘둘째 딸과 여행 가기’에 밑줄을 그었다. 첫째에게 여행 어디 가고 싶냐고 물으니 “미국.”이라고 말한다. 그래, 미국 어디 냐고 물으니 그냥 미국이란다.

나는 세탁하려고 보라색 뽀글이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물컹한 뭔가가 잡힌다. 그날 주워온 흰 동백꽃이 바래어져 오므린 채로 여태 있었다. 손바닥 위에 놓인 동백꽃에는 아직, 달콤한 잔향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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