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눈이 조용히 쌓인다. 젖은 계단을 밟고 가게로 향한다. 발자국이 사라진 작은 물 웅덩이에, 누구의 발에서 떨어진 눈이었을까 상상하니 즐겁다. 마지막 계단에 올라 여느 때처럼 우체함을 확인한다. 스테인리스 은빛 덮개가 얌전히 덮여 있던 우체함에 큐알코드가 보이는 고지서 대신 오늘은 흰 봉투가 꽂혀 있다. 꺼내어 발신인을 확인한다. 내가 익히 아는 글씨체다.
띵동! 앞집에서 아기가 인사 왔다.
혼자 있던 둘째는 인터폰으로 화면에서 앞집 가족을 보고는 아는 체를 할 수가 없었단다. 엄마가 혼자 있을 때는 절대 인터폰에 답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인터폰 화면으로 앞집 아줌마 품에 포대기로 싸인 아기를 보고는 빙긋이 웃었다고 한다.
다시 띵동! 화면에 다시 앞집 남자가 떴다. 집에서 거의 헐벗고 있는 나는 옷을 입으려고 “잠시만요.” 말을 했으나, 인터폰이 고장 난 지 한참이다. 이 집에 8년 차 세입자다 보니, 집주인에게 고쳐달라고 말을 못 해, 엘리베이터도 미리 안 누르고 불편한 대로 산 지 오래되었다. 암튼 다시 한번 잠시,라고 외쳤으나 앞집 남자는 사라졌다. 앞집 남자가 아니었나 싶어, 꾹 닫힌 앞집 초인종을 다시 누르지 못했다.
몇 년 전 앞집에 신혼부부가 이사를 왔다. 오지랖 없는 쿨한 아줌마이고 싶었던 나는 긴 말을 나누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15층을 누르다 서로 알아보며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는 게 다였다.
그러다 낯이 익긴 있었는데, 앞집 남자분이 넉살이 좋았다. 15층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곰상곰상한 남자분은 우리 남편과 비슷한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간호사라고 했다. 여자분은 다소 낯을 가리는 타입인 듯했고, 나도 얼마간은 데면데면하는 스타일인지라, 앞집이라는 특이성으로 죄인 모드가 발동해 함박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들어왔다.
어느 날부터인가. 12시 즈음 다소 늦은 시간에 책방으로 출근하는 나는 전과 다르게 낮에 앞집 여자분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길래 그만둔 이유도 묻지 않았는데, 사실 무척 궁금했다. 그때 여자분은 뭔가 내 얼굴에 미련이 남은 듯, 내 얼굴을 끈덕지근하게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앞집 여자분은 내가 묻길 바랐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땐 그저 간호사 일이 힘들지, 짐작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때 물어볼걸, 지나고 나서야 후회한다. 꽤 괜찮은 이웃이 되기란, 조심하는 일이기에, ‘정말 좋은’과 ‘별로인’ 이 아닌 ‘꽤 괜찮은’ 은 조금 더 어렵다.
가을 즈음부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큰 택배 박스들이 여기저기 쌓이기 시작했다. 택배 기사님들이 엘리베이터에서 탄 채로 박스를 밀어 놓다 보니, 복도 중간에 덩그러니 상자가 놓여있는 때가 잦았다. 우리 집 상자인가 보면, 앞집 상자인데 거의 아기용품이었다.
어느 날은 방호문을 가로막는 커다란 박스가 도착했다. 내가 무얼 또 잘못 시켰나, 이웃집 배달이 잘못 왔나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바닥에 두껍게 까는 폴더 매트다. 아이를 키운다면 한 번쯤은 접했을 익숙한 매트. 앞집에 아기가 태어났음을 확신했다.
확신했으나 복도는 너무 조용하다. 아직 조리원에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후죽순 깔리는 택배 상자를 그때부터 앞집 문 옆에 차근차근 쌓아두었다.
오늘은 가제 손수건이 왔네, 오늘은 젖병 솔이 왔네, 장난감이 왔네. 상자를 쌓으며 앞집 문 가까이에서 소리도 들어보는데, 여전히 복도는 조용하다. 우리 집에 자매들 싸우는 소리는 우렁차게 들리는데 말이다. 집에 들어가서 조용히 하라고 더 큰 소리로 혼내고는 출근을 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말했더니, 남편이 새벽에 출근하는 길에 아기 울음소리를 희미하게 들었다고 한다. 오 마이갓! 우리 아이들 문콕 소리를 집중 단속했다. 엄마가 너희들 태어났을 때, 초인종 소리, 시계 초침 소리, 변기물 내리는 소리에도 아기가 잠 깰까 봐 무척 예민했다고 알려주면서 현관문을 한 번 잡고 슬며시 닫으라고 몇 번이고 주의를 주었다. 아이들은 얼마나 조심히 닫았는지, 문이 덜 닫혀서 나중에는 도어록 잠금장치가 작동이 되질 않아 결국 수리 기사님을 모시기까지 했다.
나중에는 아이들도 차례로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여전히 내 귀에는 아기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앞집 부부를 차례로 만나게 되면서 아기가 정말,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집 부부가 아기 울음소리가 시끄러워 죄송하다고 말한다. 웃음이 난다. 하나도 들리지 않지만, 얼마나 귀한 울음소린데, 문 열고 울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우리 자매들 싸우는 소리와 문콕 소리, 내가 발악하는 소리를 사과드렸다. 전혀 들어본 적 없다는데, 미심쩍지만 믿는다.
방학이 되어서 에너지를 비축하느라 최대한 몸 사리던 나는 괜히 수선을 피우고 싶어진다. 기쁜 일은 더 기쁘게 하고 싶다. 우선 아기 엄마가 모유 수유를 할지, 분유 수유를 할지 몰라 슴슴한 반찬을 하는 날이면 반찬을 앞집에 두었다.
아기를 위한 선물은 인터넷을 뒤지다가 백화점 갈 때를 맞추느라 시간만 지체되었다. 더 늦기 전에 부랴부랴 아기가 보면 좋을 그림책을 종이봉투에 넣어, 간단하게 아이들과 쓴 카드를 동봉해서는 붉은 리본을 달아 앞집에 두었다. 덩달아 우리 집도 빨간 리본을 달고 보니, 크리스마스 기분이 절로 생긴다.
그렇게 앞집은 인사 차 아기를 데리고 왔는데 번번이 우리와 어긋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띵동! 아기가 왔다. 그 사이 백일이라 신다. 놓칠세라, 우당탕탕 옷을 챙겨 입은 우리 네 식구는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뛰쳐나가 백일 아기를 맞이했다. 안아 봐도 되나요, 감사하게도 아기가 내 품에서 앙실방실 웃는다. 까꿍. 아기랑 놀아주는 모습을 딸들이 신기하게 바라본다.
아기의 백일 떡인 흰 백설기를 받은 우리는 귀중한 떡이라 이웃과 또 나눈다. 오고 가는 손길과 웃음 속에서 아기의 건강을 기원한다.
한 작가님의 북토크에 참여했던 육종서 님이 새해 인사 드리러 온다고 연락이 왔다. ADHD가 심해서 어릴 때부터 치료를 받았다는 그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까지 하면서 계속 도전을 멈추지 않는 분이다. 종종 연락을 주시는데, 저번 날에는 갑자기 후원금 3만 원을 보내시더니, 이번에는 찾아 오겠다고 하신다. 급작스러운 통보에 나도 당황할 만도 한데, 이번에는 그가 또 어떤 자격증에 도전했을지 내심 기대된다. 왠지 오는 날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정초에 눈이 자주 내린다. 지금 내리는 눈은 서설이다. 백설기 가루 같은 눈이 어둠을 덮는다. 누군가 이야기를 마쳤을 때 동화처럼 눈이 날린다. 관목에 눈꽃이 핀다. 내리기도 하고 흩날리기도 하고 쏟아지기도 한다. 눈이 오면 어린 날처럼, 하던 것을 멈추고, 기쁘게 맞이한다. 다양한 형태와 상징으로 내리는 흰 눈을 감상하는 일이 새로운 낙이다.
푸르스름한 동살에 목련 나무의 겨울눈 포엽이 떨어진다. 새해가 되어 나는 햇귀를 마주하며 국민 체조를 한다. 이제는 여러 모습의 해를 알아본다.
돌숲 복도에 소아과로 향하는 아기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건물 정전 방송에 유모차를 끌던 아기 엄마가 뛴다. 그 사이에 이웃은 붉은 꽃망울이 달린 동백 나뭇가지 두 대를 내밀고 사라진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서로 감응하며 건네지는 사이, 풍경은 일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