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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가는 길

마치 여행처럼

by 이애리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지난주 내린 비는 왠지 토닥토닥이는 비였는데 오늘 내리는 비는 청승맞다. 올해 하도 비가 내리니, 비를 좋아하는 나도 올여름 내내 숨 막힐 듯한 습기에 감히 비가 좋다는 말이 안 나온다. 물기가 걷힌 바람이 불다가 다시 비가 오니 좋더니만, 오늘은 기분이 오묘하다.

어떤 연쇄 작용처럼, 책을 읽는 사람들로부터 책을 읽을 수 없고, 모임에 나올 수 없는 다양한 변명을 계속 듣다 보니, 어느새 내 기분도 처진다. 그럴 수 있지요,를 연발하며 나는 <변명 문장 수집> 혹은 <변명 사전>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변명과 핑계 두 단어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인생에 있어서 핑계는 너무 가벼우니까, 변명이 좋겠다고 혼자 벙싯 웃는다.

“생은 고(生苦), 노는 고(老苦), 병은 고(病苦), 사는 고(死苦)”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모두 고통이라고, ‘일체개고’라는 붓다의 사성제 중에 첫 번째 진리인 고제(苦諦)를 평소에 즐겨 쓴다. ‘일체개고’를 떠올리면, 온통 고통이며 모호하기까지 한 인생에서 내 어려움은 당연한 것이 되고, 찰나로 느끼는 기쁨과 충만함에 감사하게 된다. 그런데도 지옥을 살고 있다는 사람들을 연속으로 만나니, 이들을 아는 게 지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어찌할 수 없는 인생에서 나는 그저 노란 메시지 창에 진절머리를 내며 배달길에 오른다.

오랜만에 대량 납품 주문이 들어왔다. 기관에 납품하는 주문이 자주 들어오지 않지만, 거의 지인이 주문하는 거라 은근히 그리고 굉장히 신경이 쓰이는 작업이다. 일이라는 게 “굉장히”라는 마음이 생기면, 도망치고 싶어진다. 내 입장에서는 책 권수가 적으면 남는 게 없어서 하기 싫고, 많으면 (할 일이) 무거우니 하기 싫다. 살수록 싫어하는 것 투성이라고 생각하다가, 살면서 좋아하는 것도 별로 없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배달이 먼저 들어오면 주문 도서 목록과 금액을 엑셀로 직접 정리해서, 구석에 자리한 복사기를 켜서 복사를 한다. 어느 선반엔가 놓여 있었던 봉투 한 장을 찾아내어 복사한 주문서를 넣는다. 온라인에서 시킨 책이 오면 상자를 열어 입고 확인을 하여 다시 큰 상자에 넣어, 아이들 발에 안 차이는 어디 구석진 곳에 보관하다가, 때가 되면 다시 수량 확인을 하고 집에 있는 카트를 가져와 모두 싣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턱이 있는 데서 부주의 한 나는 한 번 다 쓰러뜨린 후, 다시 쌓아서 끌고는 차에 싣는다. 그 사이 오다가다 만나는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배달 시각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다급히 달리고, 도착지에 내리고, 어디로 갈까 헤매다가 데스크에 방문증을 받아 담당자를 만나 책을 전달함으로써 배달을 완료한다.

이 자잘한 과정 안에 내가 좋아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어떻게 인생에 좋아하는 일만 하냐고 할 수는 있지만, 당장 바꾸지도 않겠지만, 마흔을 넘어 이제야 내게 집중하게 된 나는 나의 호불호를 알아가는 게 무척 중요하다. 고로, 나는 이 사이사이에 기록되지 않은 소소한 즐거움들 때문에 일련의 일들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수익도 있다. 만 원 책 한 권에 2천 원 남을까 말까인데, 이번에는 200여 권이 되니 꽤 남는다. 수익을 생각해도 즐겁지만, 대량 주문이 아니라도 상대가 읽을 책이 급하면 서너 권이라도 다달이 배달을 간다. 한 권도 간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도보로 책을 배달하는 일은 일상이다. 9월 한 달 동안은 포도도 직접 배달했다. 배달하며 풍경을 살피고, 책을 건네며 사람 얼굴도 보고, 배달한 후에 산책을 한다. 운이 좋으면 맛있는 식사와 커피도 한다. 자주 가는 배달지 중에 슬로우리딩 2기 멤버 한 분이 사는 영통의 한 아파트도 있다. 그곳에 가면 상가에 자리한 ‘작은 숲’이라는 꽃카페에 꼭 들러 친구를 만나고 서로 꽃을 사주고 창가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소나무에 날아드는 새들을 관찰한다. 커피를 다 마시면 아파트를 둘러싼 산책로를 몇 바퀴나 자박자박 걷는다.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산책로에 자리한 카페는 특히 겨울이 되면 난로가 나와 더욱 운치를 더한다. ‘작은 숲’은 두 분이서 동업을 하시는데, 두 분 다 친절하고 작은 식물을 죽이지 않고 잘 키우는 능력자다. 생화도 저렴히 판다. 지금은 근처에 ‘오평’이라는 독립 책방도 알게 돼 더욱 좋아진 배달지다. 일부러 찾아간다.

어떤 일이든 의미를 부여한다. 비장함은 없다. 겸사겸사 마음으로 일을 대한다. 예상치 못한 일을 기대하며 즐겁게 떠난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무엇을 보게 될까.

마치 여행처럼, 나는 배달을 떠난다.


아파트를 벗어나기도 전에, 머리를 휘날리며 커피를 들고 지나가는 소문자에쓰를 알아본다. 너무 오랜만이라 아는 체하고 싶다. 어떡할까 하다가 차를 돌려 방지턱 앞, 그녀가 지나가는 길목에 차를 세운다. 야! 타!, 나, 타? 응! 왼손에 들고 있는 빵 봉투를 조수석에 던지고 정말 차에 올라탄다. 오늘 일을 쉬는지 무턱대고 따라갈 모양이다. 출발하려는데 s가 갑자기 얼굴에 쓴 마스크를 만지더니, 몸살기가 있다며 그제야 내린다. 뚜레쥬르에서 방금 나온 소금빵 하나를 건네고는, 홀더에 꽂힌 커피는 나보고 마시란다. 오늘 날씨와 맞춤인 듯 따뜻한 카푸치노를 한 모금 들이키니, 벌써 노곤해진다.

아파트를 나서자마자 어린 까치 한 마리가 도로 한가운데서 나뭇잎에 붙은 맛있는 먹이를 먹느라 비켜줄 생각을 안 한다. 1차로를 달리던 나는 순간적으로 2차선으로 차를 비키자, 2차로에서 달려오는 차가 내게 클락숀을 울린다. 까치가 후드득 날아가고 나도 아차, 제자리로 돌아온다. 문득 타고난 능력들이-순발력이나, 직관력, 집중력과 같은-조금씩 무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너지고 있을지도. 그동안 이런 아슬아슬한 순간을 무수하게 운 좋게 넘기며 살았지, 하면서도 앞으로는 대응이 혹은 운이 점점 예전만큼 못할 거라는 비애가 들이친다. 이제는 호기심보다는 내 몫을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때가 왔다고, 당장 운전에 집중해야 한다고 나를 다그친다.

나는 운전할 때 산만하다. 우선 라디오를 틀고, 창문을 여는 데다가, 노래도 따라 부르는데, 옆에 튀어나온 나뭇가지들과 인사하고, 잠시 정차한 사이 옆에 먹구름이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며 모르는 노래는 검색도 한다. 물론 라떼도 마셔야 하는데 다 마시면 졸음 퇴치하는 껌을 씹는다. 갑자기 신호등 구멍에 참새가 날아들어갈 때도 포착하고, 독수리인지 매인지 하늘에 활공하는 순간에 사진도 찍어야 하며, 추수가 끝난 휑한 논에 흰 백로가 몇 마리나 있는지 보기도 해야 한다. 오감을 가만히 두지 않는 편이다. 운전할 때 특히, 오감은 활짝 열려있다.

어째 오늘은 비까지 오니 집중이 더 안 된다. 최근에 왼쪽 눈이 흐릿했는데, 최근에는 오른쪽 눈마저 잘 안 보여서 더 찡그리게 된다. 인상을 힘껏 썼지만 봉담으로 빠져야 할 곳에 전광판 글씨가 잘 안 보여서 수그리다 사고가 날까 싶어 그냥 지나갔다. 아침에 너무 여유를 부렸나. 늦었다.

자동차 전용도롯가에 미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뭇가지가 미친 듯이 흔들어 댄다. 무슨 꽃인가 궁금해 자꾸 눈길이 간다. 결국 달리던 차를 옆으로 붙인다. 여태 피었다가 지기 시작하는 쉬땅나무 꽃이다. 처량히 내리는 빗속에 누런 꽃이 점점이 번져, 모네의 그림 같은 풍경이 된다. 카푸치노와 까치와 미색 꽃. 지난번과 같은 길을 가지만 오늘 배달길은 또 다르다. 목적지만을 향해 달리는 길은 의미가 없다. 겸사겸사의 마음도 없다. 호기심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지.

오르막길에 오른쪽 창문을 열고 멀리 벌판을 내다본다. 뾰족뾰족 푸르렀던 벼가 어느새 휘어져 누릇누릇 익어가고 있다. 앞에 자리한 농장에도 다 크면 주먹만 해진다는 대추가 500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로 잔뜩 달려서는 붉은빛을 낸다. 배는 잘 안 되는 모양인지, 한 나무에 배 한 개가 달려서는 가지와 닿은 부분이 썩고 있다. 배를 물었을 때 입 안에 고이는 시원하고 단 뱃물이 생각나 입맛을 다신다. 아깝다.

얼마 전 막내 고모가 ‘고디’를 아는 사람이 잡았는데, 보내주겠다며 전화가 왔다. 막내 고모가 세심하게 챙기는 성격은 아니라서, 내심 사람이 갑자기 왜 저러나 겁이 나면서도 깨끗한 도랑에서 잡은 고디를 삶아서 삶은 옥수수와 배나무 아래 평상 위에서 먹던 생각이 나서 보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모한테 먹지도 못하는 돌배를 꽃밭에 왜 심었냐고 물었더니,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배를 니는 안 먹어봤냐며, 약 올린다. 왜 기억에 없는지 모르겠다. 배나무에 꼬이는 배나무방패벌레가 방안에 하도 들어와 내가 울며 성화를 부리자, 어느 날 할머니는 배나무를 베어버렸다. 그 뒤로 배나무 그루터기가 마음 한편에 남아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그루터기에 싹이 나고 가지가 뻗어 배가 열리고 따 먹을 수만 있다면. 아니다. 어떤 일은 베어버려서 미련이 남기도 해야 한다. 어린 시절은 돌아갈 수 없으므로, 후회와 그리움으로 점철된 아름다운 과거다.


주차장에 도착했다. 내가 그동안 큰 차를 몰고 다니며 주차 운빨 총량을 다 쓴 게 아닐까. 요즘은 가는 곳마다 주차가 쉽지 않다. 주차 라인이 없는 데라도 잘 주차할까 싶은데, 이 드넓은 신설 학교 주차장에 차로 빼곡히 다 차서는 돌고 돌아도 쏘렌토 한 대 댈 자리가 없다. 결국 돌아가서 뒷마당에 주차를 하며 그동안은 요령껏 살았는데 이제는 통하지가 않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나이 들수록 바르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자꾸만 생각이 들어 머리와 마음이 소란하다.

나의 상념을 깨트리려는 듯 이내 책을 주문한 장본인인 친구가 나왔다. 이렇게 배달을 오가며 돌숲에 오가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가 커피를 내려주길래 후딱 마시고는 함께 뒷산 산책길에 나선다. 대나무 속에 살고 있는 청개구리를 보여준단다. 굳이 싫어하는 개구리를 보고 싶지는 않지만 들뜬 친구의 성의를 생각해 우물쭈물 뒤따른다. 산을 잘라내 만든 동네라 밤나무에는 누레지는 밤송이가 통실통실 매달려있고 그 아래 미국자리공이 붉은 가지에 열매가 까맣게 물들어 잔뜩 자라고 있다. 얼마 전에는 뱀도 나왔단다. 뱀을 피해 개구리가 위에 매달아 놓은 대나무 속에 사는 것 같단다. 나는 예전부터 뱀보다 개구리가 더 무서운데, 좋아하는 밤송이도 미국자리공도 무서워져 시선을 둘 데 없이 떨면서 걷는다. 그러다 내 시야에 걸려든 청개구리는 정말, 거기 살고 있었다. 어찌나 촉촉하고 안전한 아지트 안에 자리를 잘 잡았는지, 더없는 곰살맞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구리에 진절머리를 치며 친구를 끌고 후다닥 내려온다.

둘러 내려가는데 텃밭에 아이들 이름으로 심은 무가 실하게 자랐다. 밑동을 잘라 무를 베어 먹을 생각에 이미 입안에는 쌉싸름하고 청량한 무물이 가득 고이는 듯하다. 요즘은 신선한 채소만 보면, 그 본연의 맛이 상상되면서 입맛이 자극되는 거다. 얼마 전 땅콩을 주문하면서, 서걱거리는 땅콩 식감이 떠올라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었다. 아, 멀리 급식실에서 밥 짓는 냄새마저 코끝을 간질인다.

얼른 차에 올라탄다. 또, 와!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한다. 바람결에 누레진 벼도 양껏 흔들리며 나를 배웅한다. 큰 도로에 들어서자마자 좌회전을 하니 오른쪽에 새 편의점이 들어섰다. 뒤로 황량한 벌판이 펼쳐져 뭔가 영화 속에나 나올법한 편의점에 언젠가 들르고 싶었다. 시골이라 편의점 주차장도 넓다. 내려서 보니, 연한 댑싸리가 황무지에 잔뜩 자라고 있다. 대각선으로 때리는 비를 마구 맞으며 저 속에 걷고 싶다, 서 있고 싶다는 기분이 간절하다. 우산을 쓰고 그저 한참 바라본다. 와, 옆에서 한 남자가 나와 같은 자세로 서서 담배를 피우는데, 담배 냄새마저 향긋하다. 오늘 같은 날에 피는 담배는 얼마나 맛있을까. 콧구멍이 들썩인다.

주인마저 친절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젤리 등 군것질거리를 잔뜩 사서 나왔다. 아이들 말마냥 편의점 플렉스까지 마치니, 허기졌던 배가 벌써 불러온다. 이제야 핸드폰 노란 창을 띄우고 하나하나 성의껏 답을 한다. 티맵을 켜고 도착지로 다시, 돌숲을 찍는다. 시간이 넉넉하니, 천천히 돌아가자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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