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주작은행성 Jun 06. 2023

화자의 일기쓰기 8

오늘의 화자는 여행 지도를 펼칩니다.

여권 만들어 오세요. 


6년 전 일입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매년 해외로 단체 워크샵을 갔습니다. 1년 6개월 만에 퇴사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석한 워크숍이었지만 저는 첫 해외여행에 가슴이 떨렸습니다. 목적지는 세부. 사실 일하느라 정신없어 세부가 어디인지, 여행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여행에서 뭘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그저 여행사가 이끄는 대로 티켓을 받고, 환전 금액을 수령하고, 여권을 확인받은 뒤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비행기의 첫 느낌은 어..? 생각보다 작네… 버스랑 똑같네. 아니 더 작은가? 비행기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커서였을까. 분명 미드나 영화에서 이미 비행기 장면을 보았는데. 어떤 구조인지 알고 있는데. 현실에서 마주한 비행기는 분주한 교통수단의 내부일 뿐였습니다. 잠시만요, 나갈게요, 저.. 화장실 좀.. 물 한 잔주세요. 기내식은 한식이요. 고추장 하나 챙겨, 해외 가면 그립다 너.


세부에 도착했을 때 후덥지근하고 습도 가득한 날씨를 아직까지도 기억합니다. 그 외 기억나는 건 날리는 밥, 바디랭귀지로 산 현지 망고. 아주 달고 달았던 망고. 모터 나무배. 마사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노클링.


전 제가 수영을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가니까. 그러나 필리핀의 바다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발이 닿지 않는 투명한 바다. 형형색색의 물고기. 그리고 아주 아주 거대한 바다거북. 거대한 바다거북은 저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대학생 첫 미팅보다도 더 떨리는 순간. 바다거북과 아이컨택을 하며 생각했습니다. 저 정도 크기의 입이면 내 머리를 물어뜯을 수도 있겠다. 도망치고 싶은데 앞으로 가질 않네?. 회사 동료들은 점점 멀어지고, 앞에서는 물살이 계속 밀어내고 뒤에서는 바다거북이 상어처럼 헤엄쳐 오고. 아 이렇게 죽는 건가. 윌슨이 보고 싶네… 바다는 참 무서운 곳이었구나. 저기 아래의 보이는 산호에는 스폰지밥이 살고 있을까? 게살 버거 맛있겠다.


아쉽지만 게살 버거는 먹을 일이 없었습니다. 지켜보던 관광가이드가 저를 구해주었고 저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문화센터의 수영 수업을 등록했습니다. 지금은 평영과 접영까지 할 수 있게 되어 가끔씩 수영을 즐기는 수영인이 되었습니다.


그날의 바다거북은 웃고 있었습니다. 퍼덕이는 인간에 대한 비웃음 같기는 했지만 저도 당시의 제 모습을 보았다면 비웃었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여행은 좋아하지 않고 가더라도 패키지여행을 선호하지만 그래도 여행의 재미를 조금은 알게 된 워크숍이었습니다.


오늘의 화자는 여행 지도를 펼칩니다.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있다는 건

모든 것을 경험한 뒤 그 세계에 빠지지 않더라도 

다시 낭만을 품게 되는 일입니다.


여름휴가는 국내로 떠날 것입니다.

새로운 낭만을 발견하러.

헤엄칩니다. 오늘도.

매거진의 이전글 화자의 일기쓰기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