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바라본 흐릿한 날씨는 모든 것을 보여줄 듯 투명해요.
네온사인이 위험한 것처럼 깜빡이다가 빗방울 사이로 도망친다.
빗물이 맺힌 창문에 얼굴을 대면 한기가 돌고,
손가락으로 쓸모없는 낙서를 해보곤 입김을 분다.
너무 다 보여서,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겠다.
곧 종점인데, 이제 내릴 곳을 정해야 하는데.
환상은 점점 또렷하게 지나간 장면을 보여주고
정거장을 지나칠 때마다 몸이 작아진다.
가로등 불빛 아래,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며 버스를 기다린다.
덩어리진 밤들 사이
또렷한 눈동자들이 깜빡인다.
저 버스일까, 이번에는 내릴까.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
땅에 그려진 그림을 다시 지우며
똑같은 노래를 매번 다르게 부르자
기다리는 건 너무 지루하고
입은 쉽게도 얼어붙는다
볼을 부풀리고 입을 크게 뻥끗
왜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어두운 터널을 지나간다.
눈동자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려야 할 시간이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씩씩하게 일어선다
종점에는 아무런 낙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