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주작은행성 Jun 20. 2023

화자의 일기쓰기 13

짧은 호흡이 만든 결과는 불순물이 많고 쉽게 깨진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금요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쓸모 없는 밤을 보내는구나. 한숨이 따뜻해 짜증난다. 나의 밤은 길고 생각은 짧다. 아무것도 안하고 보내는 밤. 허무한 밤. 진눈깨비처럼. 우울한 비도 아니고, 포근한 눈도 아니고. 이도저도 아닌 밤. 그저 내려가는 밤.


쥬드프라이데이의 진눈깨비소년을 좋아한다. 비처럼 삐딱한 우진과 눈처럼 포근한 해나의 이야기. 수채화 풍의 그림체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진눈깨비소년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엑스트라가 없다는 점이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많은 등장인물 이야기 중 퇴사 이후 유리병을 만드는 사내의 에피소드를 좋아한다. 작은 공방을 빌려, 매일 밤 유리병을 만드는 사내. 쓸모 없어 보이는 나의 밤이 어떠한 형태가 되어가는 게 좋다는 사내.


잘라내기 힘든 밤을 어떻게 잘라야할까. 나의 일기에는 질문과 의문, 이해를 위한 단어들로 가득하다. 왜 그럴까.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걸까. 왜 그럴까. 왜 그럴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굳어간다. 판도라에게 축복을 내리듯 생각을 불어넣는다. 나와 반대되는 생각, 나와 같은 생각, 나와는 상관없는 생각. 동그랗게 말린 꼬리뼈를 잘라 형상을 만든다. 그래서 이게 무슨 생각일까. 쓸모 없어 보이는 밤을 어떠한 형태로 만드는 밤의 생각이다.


깨지기 쉬운 유리인간이 서있다.


짧은 호흡이 만든 결과는

불순물이 많고 쉽게 깨진다.


눈이 그쳤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자의 일기쓰기 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