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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주작은행성 Apr 11. 2024

사진일기3

양가감정이 끄는 쌍두마차

몇 번의 이사를 거쳤지만 여전히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고

상견례를 위해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고향에 내려갈 때 마다 드는 생각은 고향에 내려갈 시기가 되면

저는 항상 약한 감정일 때라는 겁니다.


내 생에

첫 잿빛 선물


집을 나설때마다 삐걱거리는 녹슨 철문 소리와

떨어지는 검붉은 녹 조각은 나의 호흡을 짓누르고


매일 아침 꾸겨진 양은 솥에 수돗물을 담아 가스레인지로 솥을 데운 뒤

머리를 쭈구린 채 하늘색 바가지 들고 머리에 부으면

고개 숙이는 일이 어렵지 않아

미납에 대한 이유가 쉬워지고

거짓말에 익숙해지고

엄마의 아쉬운 소리에

무감각해졌어요.

교회보다는 절을 좋아했습니다.

절실한 기도보다는 끊어지지 않는 유연함이 필요했어요.

둥근 목탁을 때리며 내 안을 비우는 일


동그랗게 말린 한숨연등에 띄우며

삶에 치어지는 일들에도 나는 맑은 소리를  것이라고

 그렇게 삶에 유연해지는 게 필요했어요.

조용한 분노와 뜨거운 처연함

두 감정이 이끄는 마차는

숲길을 떠나 도시로 떠납니다.

노란 어리광,

순수한 노스텔지어를 여기에 두고


나는 나의 잿빛 테두리를 떠납니다.

PC방, 편의점, 택배상하차, 포장마차

도시는 잠에 들지 않는군요.

낮에 느끼는 뜨거움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나를 고개 숙이게 해요


밤에 피어 있는 꽃이 좋아요

그래도 밤에는 피어날 수 있는 꽃


아직은 봉오리일지라도

반드시 피기를 약속하는 꽃

-

오리너구를 아십니까?

오리너구리,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고아에게 아무렇게나 이름을 짓듯

강의 동쪽을 강동이라 부르고 누에 치던 방을 잠실이라 부르는 것처럼


나를 위하여 내가 하는 일은

밖과 안을 기우는 것 몸을 실날으로 풀어, 헤어지려는 세계를 엮어 붙들고 있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안팎이라고 부르고

어떻게 이름이 안팎일 수 있냐며 웃었는데요


손아귀에 쥔 것 그대로

보이는대로


요괴는 그런 식으로 탄생하는 겁니다

부리가 있는데 날개가 없대

알을 낳지만 젖을 먹인대

반은 여자고 반은 남자래

-

- 신이인,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 中-

달콤한 딸기 팬케이크를 먹으며 생각합니다.


나라는 것은

변하지 않 나와

관계가 만나를 합치는 일


나의 기질은 변하지 않지만

나의 관계가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친절하게 써준

나의 작명이 마음에 듭니다.


조금 더 유연하게.

그리고 달콤하게.

가장 어두운 곳에서

나를 버리지 않은 가족과


가장 반짝이는 곳에서

나와 함께 살아갈 가족


엄마와 누나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빠

고맙습니다.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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