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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과 소라, 호수와 러버덕

끊고 싶어도 끊어질 수 없는 안과 밖

by 아주작은행성

아무런 약속도 없이 돌아갈 곳 없는 시간이 좋았다. 잘하고 싶은 게 없어졌다. 그 자리에 유지하고 싶은 것들이 들어섰다. 넓은 바다를 갈망하던 소라가 정박된 배처럼 박혀있다. 주택단지처럼 갯벌에 널려있다.


소라가 뱉는 바다소리는 어떠한 음처럼 갯벌을 매우고 있다. 슬프지 않는 갯벌, 빠지지 않는 갯벌.

누군가가 밟고 지나가도 다시 부풀어오른다. 잔잔하게 재생되는 갯벌.

주인 없는 소라들. 저마다의 소리를 내고 있는 소라들. 언제 이렇게 많은 소라들을 모았을까. 언제 저 소라들을 다 만날 수 있을까. 소라는 여전히 바다소리를 뱉고 있다. 갯벌에 소라 소리가 가득차도 갯벌은 평화롭다.


슬프지 않다. 매말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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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더이상 쓰지 않고 있다. 시가 필요 없어진 삶이라고 해야하나. 고민보다는 의무가 늘었다. 죽음보다는 내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감정의 승화를 위해 시를 읽고 쓰기만 한 것은 아니였지만 대부분은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 시를 적고 읽었다. 나부터 잘살고보자라는 마음이었다. 마음과 몸이 배고픈자에게는 말보다는 빵과 음식을 주고 싶었다. 나의 말들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이 없길 바랐다. 다른 사람의 말이 나에게 영향이 없길 바랐다. 스스로 일어나 스스로를 통제하길 바랐다.


행복하고 안전한 삶에서 아포칼립스와 좀비 떼, 기상이변은 영화 속 삶이 된다. 프레임 밖에서의 일이 된다. 나는 안전가옥안에서 창밖을 본다. 포도주와 빵을 먹으며 천둥이 치는 모래사막을 본다. 저들의 세계가 나에게는 배경화면이 된다. 많은 배경화면을 갖는다는 것은 다양한 폭을 가지는 것 같다. 나를 진단하며 창밖에 풍경을 보는 일. 내 안에서 내 밖의 풍경을 보며 나를 숨기는 일. 동화되기 전에 배경화면을 지우는 일.

창밖의 세계가 현실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다.


화가 사라진다. 러버덕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나지 않는다. 삶은 좋은거라고 생각한다. 살만하다고 생각이 든다. 회의감이 들지 않는다. 만족한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러버덕을 보고 있으면 편안하다. 발이 허우적되고 있어도 죽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것 처럼.


예쁜 배경만을 바라보기로 결심한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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