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싫지만 비오는 날은 좋습니다
여름이 끝나간다. 곧 9월이다. 9월에는 나의 생일이 있고 추석 명절이 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고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다. 세상이 웜톤으로 변한다. 나는 9월을 제일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여름이 제일 싫다. 제일 좋아하는 9월을 맞이하는 것은 힘겨운 여름을 견뎌내고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몸에 열도 많고 더위도 많이 탄다. 여름엔 보통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덥거나, 에어컨 때문에 춥거나, 시끄럽거나. 모기는 또 어떤가. 모기향을 피워도 뚫고 들어오는 놈들이 반드시 있다.
여름을 제일 싫어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여름에 맞닿아있다. 몇 살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도 안나는 옛 일이다. 집에 혼자 남겨진 나는 거실에 앉아 있었고, 밖에서는 세상이 폭우와 강풍으로 통곡하고 있었다.
거의 가로로 내리는 빗줄기는 창문을 세차게 두들겼고, 바람은 창문을 뒤흔들었다. 거실에 불을 꺼놓으니 어두컴컴했다. 눈부시게 밝은 브라운관 TV에서는 사망 0명 / 실종 0명과 같은 뉴스가 흘러 나왔다.
어린 나는 그 뉴스들을 남의 일처럼 쳐다보며 시원한 거실에서 수박을 퍼먹고 있었다. 온 세상이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지만 나는 너무나 안락했다. 몸은 시원했고 수박은 달았다. 엄마의 자궁에서 보호받는 아기의 느낌이 그런것일까.
이 기억은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에 가까운 경험으로 남아있다. 논리적으로 전혀 설명할 수 없는 행복이다. 행복을 굳이 종류로 나누는 것은 우습지만, 나는 이런 행복을 원초적 행복이라 부른다.
시험에 합격하거나 가고 싶던 회사에 가는 것은 성취적 행복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노력 끝에 성취하며 맛보는 희열이자 행복. 그와 대비되는, 정확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행복이 있다. 어린시절 구슬치기로 모은 구슬을 볕 좋은 곳에 두고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이라던가, 방구차를 따라다니다 집에와서 씻고 밥을 먹는 느낌 등등.
이 원초적 행복에 대한 기억 때문에 나는 지금도 비가 우레같이 쏟아지는 날씨를 제일 좋아한다. 어지간하면 비구경을 하러 길을 나선다. 여의치 않으면 차에 앉아서라도 비구경을 한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성취적 행복을 느낄 기회는 많아지나, 반대로 원초적 행복을 느낄 건덕지는 많이 줄어들어가는 현실이 아쉽다. 그래서 나는 비오는 날에 더 집착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