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거북 Sep 13. 2023

서울 놈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고 누가 그래요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직장 때문에 3개월 정도 짧게 서울에서 머물렀던 적은 있지만 뼛속까지 부산 사람이다. 사투리도 아주 강하게 쓴다. 친한 동생들은 텍스트로 하는 말에서도 괜히 사투리가 느껴진다고 한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닐 때 동료들과 중국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동료 한명이 나에게 사투리를 들려달라고 했다. 나는 짐짓 서울 말투로 말했다.


"저는 서울 남자라 사투리 따위는 쓰지 않습니다↗. 앗, 단무지가 없잖아↗. 달라고 할게요↗. 저↘기→요↗!"


연극투로 말했던 서울 말투는 그럴듯했을지 모르겠지만, 뒤에 종업원을 부르는 "저기요!"에서 그야말로 사투리의 정수가 튀어나왔고 동료들이 미친듯 웃어댔던 기억이 난다.


 서울에서의 추억은 이 정도가 전부이다. 이거 말고는 광고대행사 시절 당일치기 출장을 다니며 빡센 일정과 "사람많음"에 혀를 내두르고 질색했던 기억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100일 된 갓난쟁이 아이를 데리고 서울을 가야 하는 위기에 봉착했다. 아이 목에 제법 큰 점이 있어 진료 및 치료를 해야 하는데 뛰어난 명의가 서울에 최근 개원했다고 하여 그곳에 가야만 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제발 기차에서 아이가 심하게 보채거나 울지 않아주길, 응가는 하루만 참아주길.


 태어나서 살아온 100일여간 기껏해야 차로 40분 거리인 할머니집, 외할머니집을 다닌게 전부인 아기라서 가방에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온갖 짐들을 쑤셔넣고 집을 나섰다.

엄마가 싸준 사랑의 김밥

 다행히도 서울에 가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다만 진료 대기가 너무 늦어져서 난감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놓치게 생겼다. 1분 1분 피말리는 시간이 지나갔다. 기차를 미루고 싶어도 미룰수가 없었다. 뒷 시간은 죄다 매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내에게 얘기했다.

"40분까지 기다려보고 안되면 진료 보는거 포기하고 그냥 나가자."


 사실 인포데스크의 직원분께 살짝 얘기하기도 했다. 진료 보려고 부산에서 왔다. 예약한 시간이 지금 40분이 지났다. 기차를 놓치게 생겨서 그런데 정말 죄송하지만 순서를 좀 당겨줄 수 있겠느냐. 필요하면 해당 부모님들께는 내가 부탁드리겠다.


 하지만 서울 사람이나 부산 사람이나 시간이 소중한 것은 똑같았기에 그 부탁은 거침없이 기각당했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아슬아슬하게 진료를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기차 시각은 시시각각 다가왔다.


 결국 우리는 기차를 놓쳤다. 진짜 몇초 차이로 9호선 급행 열차를 타지 못했다. 다음 지하철은 9분 뒤에 있었다. 17시 30분 기차였는데, 네이버 길찾기 서비스가 도착 예정시각을 17시 32분으로 표시할 때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기차도 없고, 비행기 타려면 1시간을 더 이동해야 하는데 수유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날씨는 덥고 지하철에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은지. 아이는 평화롭게 자고 있었지만 우리는 점점 감정적으로 변해갔다.


 일단은 수서역으로 이동하고, 계속 광클하면서 취소표를 구해보자는 결론이 났다. 선릉역에서 신분당선을 타고 수서역으로 향했다.


 부산에서는 지하철을 놓치는 경우가 없다. 하지만 서울은 그게 존재했다. 기차의 수용인원보다 타려는 사람이 더 많으면 기차를 놓치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도 아닌 시각에 그게 가능하다니 충격이었다. 짐까지 많았던 우리는 기차를 두대 보내고 겨우 탈 수 있었다.


 아이를 안고 지하철을 탔다. 정말 고맙게도 노약좌석에 계시던 어느 할머니께서 우리를 보자마자 자리를 바로 양보해주셨다. 나는 서울놈들 눈감으면 코베어간다는 생각에 그런 배려는 바라지도 않고 있었는데 정말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이동중에 옆자리 다른 할머니께서는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고 계셨다. 괜히 경계하게 되더라. 노약자석에 앉은 임산부나 영유아 동반한 엄마를 노인들이 욕하고 때렸다는 괴담들을 많이 들어서 그런가. 거기에 서울사람들에 대한 내 경계심까지.


 하지만 우리를 그렇게 쳐다보던 할머니는 수서역에서 우리와 함께 내리자 마자 우리 손을 잡아 이끌었다.


"더운날에 아기 데리고 고생이 많아요. SRT타러 가죠? 여기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기차역으로 바로 갈 수 있어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한참 돌아가야 하니까 나를 따라와요."


 정말 고마웠다. 할머니의 손을 이끌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지긋하신 노인분들이 많이 계셨다. 노인분들은 아이를 보자마자 말 그대로 아이같은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셨다.


"아이고~ 여기 복덩이가 있네! 아프지말고 건강하게 크세요! 엄마 아빠 말 잘듣고! 아빠를 많이 닮았네! 아이고 예뻐~"


 어르신들의 따스함에 극도로 피곤하고 예민하던 감정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출산율 0.5라는 기적을 찍은 서울이라는 도시 특성 상 공공장소에서 100일된 갓난쟁이를 볼 일이 없어서 그런걸까. 어르신들이 젊은이들보다 붙임성이 좋아서 그런걸까. 젊은 사람들은 아이를 봐도 그냥 시큰둥한데 어르신들은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셨다.


 우리는 19시 조금 넘어 출발하는 SRT 티켓을 겨우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좌석이 떨어져있었다. 아이를 안고 있고 짐이 많다보니 기차를 탈 때도 우당탕탕 할수 밖에 없었다. 짐을 주고 받고, 필요한 짐은 다시 내리고, 아이가 칭얼대서 달래고 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아내의 옆자리에 앉아 계시던 한 어르신께서 나와 자리를 선뜻 바꿔주시겠다고 하시는게 아닌가.


 "한창 힘들때네. 가족들이 같이 앉아야지. 나랑 자리 바꿉시다."


 그 어르신도 분명 창가 좌석이 좋아 그 좌석을 원해서 선택하셨을텐데, 딱히 부탁드리지도 않았는데 선뜻 창가자리를 복도자리로 바꿔주시는 그 마음에 너무 감동했다. 덕분에 우리는 한 자리에 앉아서 마음 편하게 부산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요즘 맘카페를 보면 어르신들이 아이를 함부로 만져서 싫다, 아는척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류의 글들이 많다. 뭐 일리가 있는 말이고 이해는 간다만 나는 그래도 그런 태도가 싫다. 


 보통 사람이라면 갓난아이를 보면 귀여워하고 탄성이 튀어나오는게 당연한 반응인데, 그런 여론 때문에 아이가 귀여워도 애써 외면하고, 그것이 아이 부모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근데 나는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예뻐해주고 축복해주면 좋겠다. 뭐 만져도 된다. 다른 어른이 조금 만진다고 감염되고 아프고 할것 같으면 인큐베이터에 넣고 키워야지.


어르신들이 아이를 5분 10분 넘게조물딱대는 것도 아니고 너무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거나 볼을 한번 만져보거나 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고향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서울에서 받게 된 생각지도 못한 배려 덕분에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따뜻하게 부산으로 내려왔다. 아이낳기 힘들다, 헬조선이다, 낳는게 아이에게 죄가 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이를 사랑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곳곳에 많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이전글 프리랜서의 느즈막한 오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