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후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거북 Jan 06. 2021

유인원에서 신이 된, 우리들의 이야기

사피엔스

 정확히 1년전쯤 밀리의 서재 정기구독을 시작하고 제일 먼저 덤벼든 책이다. 이병헌과 변요한이 나와서 책 이름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밀리의 서재 광고 자체가 되게 인상 깊었는데,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책이라 기억하고 있다가 정기구독을 시작하자 마자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끔찍할 정도로 읽어지지가 않았다. 독서가 습관화 되어있지 않았던 시기라서 그런가. 초반부에는 흥미롭게 읽다가, 중간 종교가 등장한 부분부터 점점 손이 안 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다 읽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 나의 업인 마케팅 관련 서적과, 관심분야인 투자 관련 서적들을 가볍게 읽어 나가면서 1년간 어느 정도의 독서량을 만들어냈다. 못해도 하루 30분씩이라도 시간을 내서 독서 습관을 만들어냈고, 3대 교양서라 불리는 사피엔스, 총균쇠, 코스모스 읽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총균쇠를 먼저 읽었고(추후 독후감 업로드 예정), 그 이후에 사피엔스를 읽었다. 본격적으로 독서 습관을 시작할 때 덤벼들었다가 포기한 책을, 정확히 1년 뒤에 완독하는데 성공했다.


 보통 우리는 역사라고 하면 한 국가나 민족에 한정 지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총균쇠와 사피엔스는 그 개념을 좀 더 넓게 잡아, 인류 전체의 역사와 굵직한 사건(혁명)을 위주로 다룬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의 경쟁에서 어떻게 승리했고, 어떤 과정으로 유일하게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으며,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을 거쳐 이제는 자연선택을 넘어서 생명을 만들어 내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신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우선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인간의 비인간성이다. 최소 6종류의 인간종이 살았던 지구에 사피엔스가 유일하게 남음과 동시에, 그들이 개척하는 곳마다 대규모의 멸종이 일어났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신대륙 개척 등의 과정에서 겪어보지 못한 병원균 등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인류와 마주친 동식물들은 멸절하거나, 혹은 가축으로 길들여졌다. 지구 입장에서 봤을 땐 돼지의 개체수는 지구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다. 모든 생명체의 DNA는 종족 번식의 목표를 새기고 있으니, DNA 입장에서는 분명 성공한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그 근간인 돼지 한 마리, 한 마리는 행복한가? 수많은 돼지 종 중 스스로가 승리했다는 쾌감을 느낄까? 그 돼지들은 평생 한평도 안되는 축사에 갇혀서 비참하게 살아가다가 생을 마감한다.


 개별 개체의 행복과 진화적 관점에서의 번영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평생 축사에 갇혀 사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진 돼지가 아프리카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멸종 위기의 돼지보다 행복할까? 아마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지금 지구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도 강하다. 인류는 80억에 근접해가고 있으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들어 내고 있다. 목이 긴 기린이 짧은 기린보다 나뭇잎을 먹기 수월해, 자연적으로 아주 오랜 세월에 거쳐 목이 긴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를 자연선택이라고 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아니긴 하지만 소위 말하는 신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제 인류는 신의 영역을 넘어서 마음만 먹으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목이 짧은 기린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과거엔 몸에 암이 생기거나 치명적인 결손이 생기면 죽어야 했다. 신의 뜻이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은 몸에 반드시 필요한 장기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생명이 다하면 죽어야 한다는 신의 뜻을 거스르는 단계의 직전까지 와있다.


 하지만 이렇게 방대하고 강력한 인간들 개체 하나하나는 행복한가? 아니, 과학적/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개체 하나하나의 행복이 중요하기나 한가? 그렇다면 그저 사피엔스의 번영과 독립된 개체의 행복이 동시 성립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현 인류는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하는가?


 이 책은 이런 식으로 평소에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인류의 미래에 대해 한번쯤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나의 업과 관심 분야에 송곳 같은 좁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면, 이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자체가 넓어진 느낌이다.


 어떤 분야이든 독서를 하면 평소 하지 않던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된다.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그냥 재밌기도 하고, 나를 비롯한 우리 동네, 도시, 국가의 뿌리를 찾아 나가며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공부하는게 재밌다. 그리고 그 당시를 살았을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는 것도 즐겁다.


 인류의 발자취 중에서 일대 사건이나 특정 지역에 한정 지어서 탐구하던 역사를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그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인상 깊은 도서였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출발선에 선 자는 몸이 가벼워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