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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Jul 15. 2021

블랙위도우 - 장렬하게 불타오른 마지막 불꽃

MCU - 블랙 위도우 감상평

**리뷰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것이 스포일러입니다.**





제목 : 블랙 위도우(Black Widow) / 2021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액션, 모험, SF

국가 : 미국

러닝타임 : 134분


 정말로 오랫만에 개봉한 마블 영화, 블랙 위도우를 보고 왔습니다. 마블은 한해도 거르지 않고 2편, 많으면 3편씩 영화를 제작해왔었는데, 2020년을 통째로 쉬고 돌아온 터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물론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완다비전과 팔콘 앤 윈터솔져를 공개했지만, 완다 비전은 그닥이었고 팔콘 앤 윈터솔져는 아직 못봤네요. 2018-2019에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와 엔드게임이 연달아 굵직한 임팩트를 남기고 2020년을 지나 2021년에 맞이해서 그런지 더 반가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블랙 위도우는 어벤져스가 우주를 구원하는데 누구보다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이죠.

영화는 마블 영화의 정석이다 싶을 정도로 히어로 무브 특유의 루트를 그대로 밟아나갑니다.


(1). 평화로운 삶/숨어 사는 삶을 영위하는 주인공

(2). 주인공에게 가해진 위해/습격

(3). 승리하기 위해 동료들을 규합

(4). 동료와의 갈등 및 해결 - 이 부분 보통 지루함

(5). 힘을 합쳐 최종 보스를 무찌름


 저는 개인적으로 스파이더맨이나 가오갤 같이 방방 뛰고 발랄한 히어로물보다는 캡틴 아메리카나 배트맨처럼 어둡고 진중한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블랙위도우도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 같은 분위기이길 바랬고 그럴 것이라고 예상을 했습니다.

 실제로도 겹치는 부분이 많네요. 어둠속에 숨어있던 악의 세력. 신체 능력이 강하나 이렇다한 특수 능력은 없는 히어로. 옆에서 재잘대며 도와주는 조력자. 세뇌당해서 주인공을 공격하는 사람들. 최종 전투는 화끈한 고공전. 적고보니까 진짜 똑같네... 영화의 전체적인 색감이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하양/파랑의 느낌이라면 블랙 위도우는 정 반대인 블랙/레드 인걸 제외하면 진짜 유사하네요.

 근데 그게 그냥 하위호환처럼 느껴질 줄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블 영화 리뷰 중 처음으로 단점에 대한 비중이 매우 큰 리뷰가 될 것 같은데요. 가장 크게 와닿았던 세가지 단점만 짚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뜬금포 그 자체인 세계관


 하늘에 떠있는 레드룸이라는 소련 공산주의자들의 잔존 세력이 있고, 거기서 아이들을 납치해서 살인 병기로 만든 다음 화학적인 세뇌를 하여 세계 각지에 침투시켜 주가와 물가를 조정하고 주요 인사를 암살한다.


 물론 말이 되는 소리입니다 마블 세계관에서는. 근데 마블 세계관에는 어벤져스도 있고 쉴드도 있죠(있었죠). 마법사 집단도 있구요. 그런데 레드룸이라는 세력이 버젓이 활동중이다. 아무도 몰랐다. 갑툭튀한 웬 비만 남성 하나가 페로몬 조작(?)으로 직접 만든 수제 여전사들을 조종해서 세계를 손에 넣으려 한다. 솔직히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캡틴아메리카 윈터솔져도 사실 캡틴이 몸담고 있던 쉴드가 하이드라였다는 대반전이 있습니다. 근데 그건 쉴드라는 살아있는 조직, 하이드라라는 멸망한 조직에 대한 기정 사실이 있는 상태라서 충격적이었으나 이번 반전(?)은 너무 익숙한 느낌이 나서 약간 코웃음이 나왔습니다.


태스크마스터... 이게 최선이었나

 빌런은 주인공의 대척점에 서있죠. 곧 영화 비중의 50%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피니티워에 비해 엔드게임이 상대적으로 짜게 평가 받은 요인중 하나도 타노스가 깊은 철학을 가진 공리주의자에서 학살광으로 변모했다는 점이 있었습니다. "공평하게 반을 죽여 우주 전체를 구하겠다" 라던 양반이, 갑자기 "모두 다 죽여버린 후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겠다"같은 소리를 내뱉죠.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와 시빌 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파이더맨 홈커밍, 다크나이트 등 평가가 좋은 히어로물은 항상 히어로만큼이나 매력적인, 그래서 빌런에게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저력이 있었습니다.

 태스크마스터도 원작에서는 나름 전통이 있는 캐릭터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이렇게 그려내는게 최선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등장때 블랙 위도우와 똑같이 척! 일어서서 같은 포즈를 취하는 장면 기억나시나요? 저는 그런 소름 유발 장면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태스크 마스터의 가장 큰 무기는 "상대의 기술을 싸워가며 실시간으로 복사" 하는 거였거든요.

 동일 사례라고 볼수는 없지만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캡틴과 아이언맨이 마지막에 싸울때, 아이언맨이 계속 몰리다가 프라이데이가 캡틴 아메리카의 공격 패턴을 분석해서 화끈하게 반격하는 장면이 있죠. 그런 느낌의 장면을 조금 더 스타일리쉬하게, 비중있게 풀어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너무 아쉬웠습니다.

 감독이 액션 장인인 루소형제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활쏘는 장면에서는 호크아이, 발톱 꺼내는 장면에서는 블랙팬서, 방패 던지는 장면에서는 캡틴 아메리카가 떠오르긴 했으나 "싸우는 즉시 상대의 기술을 복사한다"와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블랙위도우랑 제대로 맞붙지도 않습니다. 태스크마스터가 제대로 맞붙어 싸우는건 사실상 캡틴 소련 밖에 없죠. 캡틴 소련이 과거엔 어땠을지 모르나 지금은 늙고 살쪄서 태스크 마스터를 상대로 제대로 된 액션을 보여주지도 못합니다. 블랙 위도우와 치열하게 치고 받는, 격투 기술을 소름돋게 복사해내는 액션을 연출해줬으면 좋았을텐데요.

 심지어 대사도 단 한줄밖에 없었던 것까지 환상적으로 겹쳐져 정말 공감할 수 없는, 역대급으로 존재감이 없는 빌런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연성은 어디로...

 영화에서 주인공이 처하는 모든 상황은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 '나 같아도 저럴 것 같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상황에 몰입이 되기 때문이죠. 어떤 상황에 대해 '엥? 여기서?' / '엥? 갑자기?' 라는 생각이 들면 그 순간 몰입이 확 깨져 버리죠.

 영화에 등장하는 나타샤의 가족들은 오하이오에서 3년을 같이 살았습니다. 위장 가족이죠. 나타샤가 대충 30대 초반이라고 치면 인생의 1/10, 그것도 유년 시절에 잠깐 같이 살았었네요. 그 이후 평생을 떨어져 살다가 다시 만나게 되는데, 가족적인 코드를 넣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으나 '허리 펴고 앉아' / '제대로 편거야' / '엄마 말 들어' 이런 대사들이 나옵니다.

 연락이 뜸해진 친구를 3년만에 경조사 자리에서 만나도 솔직히 어색합니다. 근데 어릴때 겨우 3년을 같이 지내고 거의 30년만에 만난 사람들이 저런 대화를...?

 심지어 엄마 역할로 나오는 멜리나는 아직 레드룸 소속입니다! 한 평생 레드룸이었고, 3년 나타샤와 같이 지냈는데 10분 가량 밥먹으면서 얘기를 했다고 바로 OK하고 레드룸을 박살내러 나타샤와 동행합니다.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엥? 갑자기?'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습니다.

 멜리나와 나타샤가 대화하면서 '레드룸에 몸담고 있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낄때가 많다' / '비록 작전이었지만 그때가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절이었어' 이런 진심어린 대사라도 한줄 넣었다면 어땠을까요? 뇌파 조작 돼지를 불러내서 숨을 참게 명령해서 기절시킨 뒤, '아직 사망까지 11초가 남아 있었어' 이런 대사를 넣을 타이밍에 말이에요. 그럼 더 멜리나의 결정과 같이 싸우는 상황에 몰입하기 쉬웠을텐데요.



 블랙 위도우는 정말 좋아하는 히어로 중 하나입니다. 마블의 태동기이던 2011년에 첫 등장해서 한 가지 캐릭터를 10년이나 연기한다는 건 정말 대단합니다. 이 영화가 비록 다크나이트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스파이더맨2 같은 히어로 영화의 수작 반영에는 못 들어갈지 몰라도, 스칼렛 요한슨이 블랙 위도우를 떠나며 남기는 마지막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걱정했던 부분이, 무능한 남성 캐릭터가 나오고 나타샤가 그와 대척되는 여성 캐릭터가 되어 "여성이 세계를 구한다!" 이런 메시지로 점철된 영화가 아닐까 혹여 매우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그런 내용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히어로의 처음이자 마지막 단독 작품인데 정치적 메시지로 떡칠이 되어있으면 우울했을 것 같아요.


 엔드게임에서 희생적으로 사망하였는데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장례를 치러주는 장면 조차 없어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본 영화에서 마지막 불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영화 쿠키영상에 작은 묘비라도 등장하게 되어서 마음이 훈훈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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