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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Aug 04. 2021

재택근무, 9개월간의 후기

장점과 단점, 일목 요연하게 공유합니다

 지난 겨울에 코로나 3차 대유행이 터졌다. 일 확진자가 최대 1,200명을 돌파했고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가 시행되었다. 지금은 4차 대유행이 심각하고 일 최대 확진자가 1,800명에 거리 두기 4단계인데. 참 아이러니 하다.

 우리 회사는 겉보기엔 자유롭고 프리해 보이지만 의외로 탑다운 형태이고 보수적인 느낌이 강해 재택근무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당황스럽게도 갑자기 "현 시간부로 재택근무에 들어갑니다. 준비된 직원들부터 집에 가서 업무를 보십시오"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황망히 집에 왓다. 업무가 온라인 베이스다 보니 재택근무를 하는데 크게 무리는 없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슬랙 외에 추가로 먼데이 닷컴이라는 원격 근무 툴이 도입되었고, 화면 공유를 기반으로 한 화상 미팅이 연습(?) 되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재택근무의 장점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단점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9개월간 느낀 장점과 단점에 대해 굵직한 세 가지 정도만 공유해 보려고 한다.


1. 시간이 많이 생긴다

 우리 집과 회사의 거리는 3km 거리이다. 달려가면 15~18분 정도면 컷 할 수 있는 거리고 여유롭게 걸어도 3~40분이면 도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택근무로 인해 출퇴근이 없어지자, 시간이 정말 많이 남는다.

 09시에 업무가 시작되기 때문에 08시 50분에만 일어나면 된다. 뭘 입고 갈까 하는 고민, 버스를 기다리며 짜증내는 시간, 퇴근 전 눈치 보는 시간, 지옥과 같은 교차로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 등이 통째로 사라져버려 그야말로 황망할 정도로 시간이 많이 남는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아침에 06시에 일어나 새벽 헬스를 하고, 18시 이후의 저녁시간은 오롯이 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등 쉬며 즐기는 편이다.


2. 삶의 질이 향상된다

 우리 부부 두 사람 모두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다가, 한 사람이 집에 상주하고 있으니 택배를 받거나 등기 우편을 받거나,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찾는다던가 하는 소소한 생활의 잡일들을 도맡아 할 수 있다.

 청소, 빨래와 같은 집안일은 말할 것도 없다. 출퇴근하는 사람은 이동하느라 소모하는 에너지에다가 소소한 잡일까지 할 필요 없이 퇴근후에서는 오롯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3. 사이드잡의 부담이 덜하다

 재택근무는 집에서 일을 한다는 것 외에도 일을 함에 있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부여함을 뜻한다. 본인에게 할당된 업무가 100이라고 치면, 사무실에서는 100을 해내는 데 5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8시간을 사무실에 있어야 했다.

 사무실과 동료들의 시선이라는 제약이 사라진 이상, 100을 3시간 만에 해내고 5시간 동안 본인의 사이드 잡이나 취미를 즐겨도 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시간을 다 채우고 퇴근하는 직장인이라면, 사이드 잡까지 하고 나면 밤이 되고 녹초가 될 것이다.

 이 부분은 나도 지금 고민 중이다.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그럼 반대로 단점도 있을 것이다. 느낀 단점들에 대해서도 서술해보겠다.


1. 왠지 모를 불안함

 몸이 회사에 있으면, 아무 서류나 들고 속으로는 '점심 뭐 먹지' 생각하고 있어도 일단 일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택근무는 일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본인이 일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 업무 성과, 슬랙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먼데이 닷컴의 프로젝트 뿐이다.

 "일을 하는 것"에서 "일을 하고 성과를 어필하는 것"으로 범위가 늘어난 것이다. 개인의 자유는 늘어났을지 몰라도 그에 따른 부담감 또한 같이 늘어나는 느낌이다.


 2. 인프라의 한계

 재택근무 초기에는 데스크톱 모니터에 HDMI 케이블을 노트북과 연결해서 노트북을 듀얼 모니터로 바꾸어 업무를 봤었다. 하지만 포토샵 작업 등을 수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모니터를 추가로 구입해야 했다.

 그래도 나는 양반인게, 아직 노트북 하나로 업무를 보는 동료도 있고 집에 책상도 없어 버티다가 최근에 책상을 구매했다는 동료도 있었다. 그들에 대한 비판이 절대 아니라 사람마다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다.

 자취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집에 책상을 놓는 게, 컴퓨터를 구매하는 게 부담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역대급 폭염인데, 사무실의 빵빵한 에어컨이 솔직히 많이 그립다. 하루 세 끼를 꼬박 집에서 차려먹는 것도 은근 고역이다.


3. 인적 네트워크

 사무실에 출근해도 되고, 원하는 곳에서 근무해도 되는 자율 근무제를 시행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승진이나 연봉 향상 등에 있어 사무실에 출근한 직원이 더 우수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깔끔하게 정리된 텍스트와 자료로 일목요연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업무와 토론을 주고받는 것도 좋다. 하지만 우리는 알파고가 아닌 사람이다. 얼굴을 맞대고 고민하고, 같이 밥을 먹고, 어설프게라도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누는 것이 평판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나는 3건의 이직이 모두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졌다(합격 통보 후 입사 포기한 케이스까지 치면 4번). 형식적으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이야 봤지만, 회사 측에서 "oo씨, 저희 회사에서 같이 일하지 않을래요?" "oo씨 퇴사하고 여러모로 힘드네요. 조건 협상해서 다시 합류하실 수 있을까요?" 먼저 제안을 했다는 뜻이다.

 스무 살 대학교 첫 수업에서 교수님이 했던 말씀이 생각난다.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술, 음주가무, 외국이다." 그만큼 사회생활에 있어 평판과 인맥은 중요하다. 재택근무를 통해서는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너무나 간단한 결론을 냈다. 재택근무의 장점은 누리고 단점은 상쇄할 수 있는 방법. 유동적으로 바쁜 주 초반은 사무실에 출근하고, 상대적으로 널찍한 주 후반은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다. 처음엔 눈치 보여서, 미팅 때문에 한두 번씩 사무실에 나가다가 최근에는 월-화는 기본, 바쁘거나 이슈가 있으면 월-수 또는 월-목까지 사무실에 나가고 있다.

 이런식으로 나름의 루틴을 갖고 근무 환경을 바꿔가며 일하니 5일이 짧게 느껴지는 장점도 있다. 사무실로 다시 돌아오는 직원들이 제법 생기다 보니 회사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에서 "자율 원격 근무"로 변경했다. 아예 취업 규칙에 명시했기 때문에 계엄령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이상 이 기조는 쭉 유지될 것 같다.

 유부남인 나는 꼼짝 마라 하고 집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다. 가정이 있으니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동료들은 서울에 가서도 일하고, 강원도에 가서도 일하고, 마음만 먹으면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며 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부럽다.

 적고 보니, 회사의 복지는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회사에 성과를 준다면 그만큼의 자유를 주는 것과, 같이 일하는 훌륭한 동료들. 리조트 회원권이나 점심시간 두 시간, 생일 케이크 지급 같은 복지보다 "자유"를 주는게 최고임을 느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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