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세살에 외쳐본 "친구야 놀자"

"그냥" 놀아보니까 참 좋더라구요.

by 글거북

태어나서 이렇게 한가하고 평화로웠던 적이 있나 싶다.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나는 코로나로 꿀을 빨고 있는 직장인이다. 모두가 코로나로 힘들지만 나는(적어도 지금까지는) 먼나라 이야기 같다. 나는 오프라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온라인 위주 브랜드에서 마케팅을 하고 있다. 회사 매출도 코로나 전과 후가 크게 차이가 없다. 물론 급여 또한 피해 없이 따박따박 나온다. 오히려 팬데믹이 심화되며 근무 형태가 자율 근무제로 바뀌어서 삶의 질이 오히려 향상 되었다(물론 마스크를 껴야 하는 불편함 등은 여기선 서술하지 않겠다).


그러나 일상이 너무나 무료해지는 부작용이 찾아왔다. 시간이 많아졌지만 일은 그대로였다. 5년 넘게 취미로 즐기던 스윙댄스는 비대면 비접촉이 대세인 세상에서 온전히 즐기기가 힘들어졌다.


연차를 썼다. 딱히 할게 있는 건 아니었다. 아, 연차를 쓴 김에 플레이스테이션 5 예약 구매에 도전했지만 처참히 실패했다. 아무튼 딱히 할게 없는데 연차를 썼다. 힘들어서 쉬고 싶어서도 아니고, 그냥 연차가 너무 많이 남아서 의무감으로 썼다.


예상대로 연차를 썼지만 딱히 할게 없었다. 휴일이라고 늦잠을 자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잠이 예민해서 밝아지면 자연스럽게 깬다)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났다. 아침밥을 먹고 집 정리정돈을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고. 플스를 켜고 게임을 했다. 아주 질리도록 했다. 시계를 봤는데 아직 10시다. 이런...


에어컨 켜고 늘어지게 낮잠이나 잘까 생각해봤지만 잠에 예민한 나는 낮잠을 원없이 자버리면 새벽 세시가 되도록 못잔다. 집에서 즐길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되서 일단 나가자고 생각했다. 나가면 뭐라도 하겠지.


처음엔 기장이나 명지 쪽 외곽에 한적한 카페를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했다. 사실 별일없이 연차쓰면 이렇게 노는거 좋아하고, 주말에도 날씨가 좋거나 비가 쏟아지면 이렇게 노는거 좋아한다.


근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할 얘기가 있거나 못본지 오래됬거나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그런걸 다 떠나서 그냥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코로나로 인해 가게는 10시가 되면 문을 닫고 3명 이상의 사람은 모이질 못한다. 아 부산은 5명이던가? 잘 모르겠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여튼 친애하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가지는게 굉장히 어색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언제 한번 밥먹자'는 '코로나 끝나면 밥 한번 먹자'로 변했다. 술집이나 밥집에서 집단 감염이 터지면 이 시국을 외치며 '술 못 먹으면 죽냐?'를 외치며 역적으로 몰아간다. 여담이지만 난 개인적으로 술과 친목모임 없는 세상에서는 죽을 것 같기도 하다. 방역 규칙을 준수하면서도 얼굴 한번 보자고 하면 '지금 시국엔 좀 그렇고 잠잠해지면 보자'며 약속을 미룬다. 코로나가 언제 끝난단 말인가?


대학교 시절 단과대학 부학생회장을 할때 합을 맞춰 학생회장을 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선거 운동을 시작하던 가을부터 내가 졸업을 하던 2년 뒤 겨울까지 일주일에 최소 5일은 보고 1~2일 정도는 같은 방에서 잤으며 하루도 빠짐 없이 연락을 주고 받던 친구였다.


둘 다 졸업 후 취업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단과대학 집행부 모임이나 학생회장 모임 자리가 아니면 보기 힘들어졌다. 일주일에 5일을 보던 사람이 1년에 2~3번 보는것도 모자라 이제는 팬데믹 때문에 1년 넘도록 얼굴도 못보고 있다는 현실이 이상했다.


물론 학교 친구들이 졸업하고 멀어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냥 한번 얼굴보고 밥먹고 싶어서 연락했다. 진짜 뜬금없이. 이유는 그냥.


한 시간 정도 지하철을 타고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 양산으로 갔다. 다행이도 친구는 제약 영업에 종사하는 친구였고 코로나가 터진 이후에는 병원 출입이 금지되면서 너무나 한가한 상황이었다. 위수지역(?)으로 출근은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 때우기 바쁜 상황이라고 했다.


그렇게 덩치 큰 한량 둘이서 평일 대낮에 만났다. 날이 더웠기에 눈에 띄는 아무 막국수 집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셨다. 인근에서 세차장을 운영하는 다른 친구를 만나 수다도 떨고 그늘진 곳에 차를 대고 쉬었다. 같이 옛날 사진을 보면서 낄낄대고 웃었다. 술도 한모금 안먹으면서.


재미있었다. 말 그대로 삘 받아서 그냥 만나서 거창한거 안하고 지루해하며 시간 때우면서 노는데도 좋았다.


생각해보면 어릴적 우리는 학교가 끝나면, 혹은 주말에 친구집에 그냥 갔다. 휴대폰은 물론이고 전화도 없던 시절에는 집 앞에 가서 "친구야 놀자" 하면 나가서 운동장에서 뛰어 놀았었다. 보통 우리는 어릴적을 그리워 한다. 모든 상황에 특별히 의미부여 할 것 없이, 계산할 것 없이 그냥 만나서 마음가는대로 놀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친구야 놀자" 하고 뜬금없이 찾아가서 논게 거의 처음이지 싶다. 잠깐이나마 아무 생각없이 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생각이 거기에 닿자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에게는 물론이고 모든 상황에 너무 잣대를 들이댔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부터 시작해서 배울점이 있는 사람인가. 인간관계는 손절의 연속이라는 이상한 말에 꽂혀서 스스로를 좁은 테두리 안에 가두었던 것 같다.


불행은 모든 상황에서 이득만 보려고 하는 욕심에서 시작된다. 앞으로는 너무 이득만 보려고 하지말고 때로는 생각가는대로 몸 가는대로 머리를 비우고 "그냥"을 생각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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