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초보 작가들에게 바칩니다. 나도 초보지만.
취미든 본업이든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큰 고민은 바로 글감이다. 나도 그렇다. 글감. 일상툰을 그리는 웹툰 작가가 힘들다는 사실이 이해가 간다. 소재 고갈. 사실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글감을 구상하는게 너무 어렵다. 브런치에 들어와보면 다들 글감이 넘쳐 흐른다.
글쓰기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해봤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평범한 회사를 다니고 있고 평범하게 운동하고 평범한 아내와 같이 평범한 집에 산다. 하루하루가 평범하다. 생각을 텍스트로 옮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영화를 보든 맛집을 가든 책을 읽든 그 경험과 교훈을 글자로 옮기는 것은 자신 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어렵다. 글은 불이다. 불멸의 명작을 집필하지 않는 이상 읽고 나면 잊혀진다. 휘발성으로 무언가를 불태워야 한다. 그것이 본인의 인생이든, 본인의 경험이든. 본인 자체를 불사지를 각오를 가진 초보 작가들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불살라야 할지 모른다.
친구랑 소주한잔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글감이 떠올랐다. 새로운 경험이 부담스러우면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경험이 글감이 되지 않을까? 나의 인생을 불사지르는게 그렇게까지 금지될 일인가? 오 재밌겠다. 기왕 하는 김에 인생의 중대 사건 5가지를 선정해서, 그 사건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과 긍정적인 관점. 이렇게 두가지를 구분해서 연재해보면 어떨까.
지하철에서 내려 잡아 탄 택시에서 노트북을 열고 메모장을 열었다. 나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중대한 사건들과 결정들을 적었다. 쭉 적어내려갔다. 그리고 그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을 바로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내 인생, 하잘것 없다고 생각한 30몇년간의 인생이지만 그것조차 텍스트 몇줄로 평가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나만 예를 들어 보자.
나는 중학교를 다닐 때 몸이 약해서 "축구팀에 들어가지 못했다." 친구들이 축구, 농구 등 공놀이를 할때 어울리지 못했다. 괴롭고 서글픈 기억이다. 수비수로 축구에 참여하면 항상 그 당시 비쌌던 무테 안경을 깨먹었고, 농구에 참여하면 항상 발목을 삐거나 넷째 손가락을 삐었다. 정말 운동에 소질이 없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14살의 나이에 친구들과 다르게 책상에 앉아 글을 읽는 취미를 가질 수 있었고, 15살 부터는 허접하게나마 글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른살이 넘은 지금도 글을 쓰고있다. 허접하게나마.
"축구팀에 들어가지 못했다"라는 사실 하나로 나의 인생에 있어 긍정적인 사실과 부정적인 사실 두가지가 나왔다. 그 당시 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내 인생에 큰 갈림길을 내준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별것 아닌것 같아도 하나하나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어온 선택들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축구팀에 올인하지 않았고, 글을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나름의 글을 쓰고 싶었고, 글쓰는게 재미있어 인터넷 사이트에 허접한 판타지 소설을 쓰다 말다 하는 습관을 이어 나갔다. 공부에 재능이 있는것도 아니라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운동하며 적당한 학교에 들어가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 적당히 친구를 만나고 적당히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축구팀에서 절대 중단하지 않고 열심히 했으면 리오넬 메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되지도 않는 재능을 붙잡고 허황된 꿈만 꾸었다면 지금의 적당한 삶조차 누리지 못하고 변방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한끼 때우기도 힘든 비참한 신세가 될수도 있었겠지.
나는 오늘 지하철에서 감히 생각했다. 글감이 없으면, 살아오며 느낀걸 쓰면 되지 않을까? 그냥 쓰면 재미도 없고, 그동안 많이 썼으니까. 중대한 기억 다섯가지만 선정해서 그것에 대해 긍정버전과 부정버전 이렇게 두가지를 쓰자. 글 쓰는 입장에서도 재미있고 독자의 입장에서도 신선하고 재밌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내 인생을 긍정/부정 두가지 버전으로 나눠서 텍스트로 뚝딱 나누겠다는 생각은 너무 터무니 없는 생각이었다. 14살의 내가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리오넬 메시가 될지 몰랐다. 깔끔히 운동을 포기하고 글쓰기에 몰두했다면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될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AB test가 아니다.
그간 살아온 나의 인생을 내가 스스로, 객관적으로 평가 하려고 해도 긍정/부정을 평가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몇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아온 인생을 평가하지 말자.
이 글은 어찌보면 내게 쓰는 편지와도 같다. 세상 위대한 지도자들조차 그들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지 못한다. 그들 스스로도 하지 못했고 후손들조차 명확히 평가하지 못했다. 위대하지 못해도 좋다. 아니 오히려 평균보다 못해도 좋다. 스스로가 행복하려고 노력하는게 중요한 것이지 않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