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다이어트 잔혹사

진짜 안 해본게 없는 남자의 기록

by 글거북

나도 사마귀처럼 가늘던 시절이 있었다. 키 173cm에 체중 58kg, 티셔츠 사이즈 90을 입고 다녀도 위화감이 없던 시절. 대학생때도 날씬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20대 중반, 졸업할 즈음이 되면서 몸이 급격하게 맛이 가기 시작했다. 4월 말에 꺼냈던 봄~여름 티셔츠가 늦 여름이 되어 갈수록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체중이 점차 우상향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는 젊어서 그런가, 학기 중에 살이 좀 쪘다 싶으면 방학 때 바짝 다이어트를 해서 뺄 수 있었다. 기숙사에 틀어박혀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실시했다. 아침엔 헬스, 점심엔 탁구, 저녁엔 유산소. 주말에는 등산을 갔다. 그렇게 한달 정도만 지나면 체중은 다시 쭉 빠져 있었다. 이렇게 살아가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른줄이 넘어가면서 나의 몸은 멸망하게된다. 야근과 업무 압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일이 잦아졌고, 술을 먹고 속이 공허하다는 이유로 편의점 도시락과 컵라면을 먹고 잤다. 그 새벽에! 그리고 아침에는 해장한답시고 또 라면을 먹고 밥을 말아먹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체중은 84~86kg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대략 2~3년 정도는 저 체중으로 살아갔던 것 같다. 우울해졌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졌다. 한 마디 하겠다. 제발 뚱뚱한 사람한테 "왜 이렇게 살쪘어?"라고 말하지 마라. 도대체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건가. "밥 많이 쳐먹고 운동을 안해서요."라고 말해주길 바라는건가? 돼지들은 본인이 돼지인 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왜 돼지가 되었는지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니 당신이 나서서 "너는 돼지야"라고 말해줄 필요가 없다. 나는 오지랖 부린다는 단어 자체를 싫어하고 남을 위해 마음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타인의 몸에 대한 평가만큼은 예외다. 피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름대로 살을 어느정도 빼고 오랫만에 스윙댄스 동호회에 나갔다. 그닥 친하지도 않은 여자 하나가 "왜 이렇게 살이 쪘냐! 정말 충격적이다. 마누라 밥 다 뺏어먹나!" 하고 갔다. 그녀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내 아내에게까지 가서 "야 니 남편 운동좀 시켜야겠다. 심각해보인다."라는 망언을 퍼부었다. 코로나 이슈로 거의 2년 만에 출빠했던 우리 부부였다. 나는 열심히 식단과 운동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그것을 적극 지지하며 응원하고 있었다. 기분이 매우 더러워졌다. 차에서 쌍욕을 퍼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다짐했다. 죽을때까지 출빠하지 않기로.


비만인들은 인생 모든 순간에 있어서 본인이 비만임을 인지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발이 붓고 몸을 일으키기 힘들다. 손이 부어 치약을 짜기 힘들다. 작년에 입던 옷이 안 맞는것은 뭐 너무 당연한 일이다. 오래 걸었다 싶으면 발목과 무릎에 데미지가 경험치 2배 이벤트처럼 들어온다. 허벅지 안쪽이 쓸려 쓰라리다. 허벅지 안쪽이 아프니 바지에 똥싼놈처럼 어기적 어기적 걷는다. 걷는 자세가 무너지니 발목과 무릎 관절은 더 나빠진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눈치보여서 앉지 못하고, 덩치 때문에 본인의 옆자리는 언제나 마지막 순간까지 비어있다. 사무직이라면 하루종일 앉아있으니 뱃살이 접혀 팬티 라인에 검은 줄이 생긴다. 배와 가슴에 지방이 쌓이니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고 자연스럽게 거북목이 되고 어깨가 굽는다. 항상 살이 접혀 있으니 조금이라도 땀을 흘린다면 남들과 다른 악취가 난다. 그러니 제발 살찐 사람보고 살이쪘네 어쩌네 하지 마라. 당신이 그러지 않아도 그들은 충분히 힘들다.


미안하다. 너무 흥분했다. 아무튼, 몸의 멸망을 늦추기 위해 정말 별짓을 다 했다. 공복 유산소에 홈트레이닝, 극단적인 식단 등등. 실제로 체중 감량에 성공한적도 있었지만 요요는 다시 찾아오더라. 심지어 식욕 억제제도 먹어보았다. 그 마법의 약은 한달만에 8kg을 감량해주었지만 약을 끊자 한달만에 12kg가 찌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수 많은 시행착오 끝에 아내가 간곡히 PT를 받아보는게 어떠냐고 이야기했다. 사실 이전에도 아내는 PT를 몇번 추천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효용성 대비 가격이 괴랄하다고 생각해서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살을 빼고 못 빼고를 떠나서, 내 몸뚱아리를 가지고 시행착오를 겪는것 자체가 그냥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했다. 비포 애프터 레퍼런스가 많아 이 정도면 실력이 충분히 인정 되었다고 생각되는 헬스장에 갔다. 직장과도 멀고 집과도 먼 그 헬스장에 가서 PT 30회를 덜컥 계약했다. 그때가 6월 초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확히 두 달이 지난 현 시점 8kg을 감량했다. 나의 인바디 그래프는 속도는 느리지만 아주 아름다운 모양을 그리고 있다. 체중과 체지방량과 체지방율은 꾸준히 우하향, 골격근량은 아주 미세하게 우상향. 이번에야말로 인생 마지막 다이어트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단순히 살이 빠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떠나서,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약을 먹었을 때는 불면증이 생겼고 예민해졌다. 식욕이 그냥 말 그대로 사라져서 하루에 계란 두개만 먹어도 생활이 가능했다. 하지만 살이 빠지는 속도 이상으로 늙어갔고 머리카락도 쑥쑥 빠졌다. 건강을 담보로 몸매를 대출하는 느낌이었다. 아니지, 몸매도 봤을 때 그닥 좋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체중계 숫자에 하루하루 목 매며 살아갔을 뿐이다.


주 6회 아침 근력운동, 저녁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수행하며 몸 자체가 건강해진 느낌이 든다. 평소 먹지 않던 채소를 챙겨 먹으니 건강한 변을 본다. 하루에 두번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니 자연스럽게 피부가 좋아졌다. 운동을 하니 다이어트 하느라 사람들 앞에서 유세 떨 일 없이 맛있는 음식을 스스로 자제하며 적당량 즐기게 되었다. 식사를 할 때 음식을 보면 대략적으로 어떤 영양소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출근 생각에 고통스러운 월요일 아침, 출근 생각보다 더 고통스러운 하체 운동을 수행하고 나면 웬지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 출근이 고통스럽지가 않다.


이제 고작 두 달 해놓고 이런 글이라니,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 달은 몸이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내 몸은 아직 한참 더 변해야 한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모멘텀이 되었다고는 확신한다. 지금 드는 생각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 인생에서 가장 빛날 시기를 뚱뚱하게 살아온 것이 그저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찌보면 이 글은 브런치가 아니라 일기장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그냥 올린다. 운동하자. 운동이 최고다. 으레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최고다. 약까지 먹는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으로서, 안해본게 없는 사람으로서 운동 만한게 없다. 그리고 PT를 받아라. 영어, 코딩, 보컬, 악기 등등 죄다 돈 주고 배우면서 왜 운동은 예외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 몸과 영양에 대해 훨씬 무지하다. 그러니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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