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는 "회사 사람"에 대한 개념이 조금 희미하다. 내 커리어는 크게 2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여타부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크게 첫 단계인 광고대행사 AE시절과, 두 번째 단계인 인하우스 마케터 단계이다. 기간은 대략 각각 3년/4년 정도 된다.
광고대행사 AE 시절에는 동료들과 극단적으로 친했다. 그들과는 지금도 한번씩 연락하고 지낸다. 일단 회사가 커져가는 단계였기 때문에 일도 많았다. 그러고보니 서로 부대끼고 부딪힐 일도 많았고, 억센 광고주(?)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직군이다보니 동료들끼리 서로 의지를 많이 했었다. 그리고 그 당시 팀장님도 로마 군대같은 조직을 지향하는 맹장 스타일의 관리자여서 우리들끼리 더욱 각별했던 것 같다. 지금은 각각의 자리로 흩어졌지만 한번씩 연락하고 지낸다.
인하우스 마케터 단계에서는 완전 정 반대였다. 침묵 그 자체였다. 09시까지 사무실에 출근한다. 가볍게 목례로 인사하고 자리에 앉는다. 바로 옆에 사람이 있지만 오로지 메신저로만 커뮤니케이션한다. 퇴근할때까지 컴퓨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티타임도 각자. 퇴근할 때가 되면 가볍게 목례를 하고 나간다. 모든것이 정 반대였다. 회사의 상황도 침체기 및 몰락기(?)로 접어드는 단계였고, 관리자의 성향도 정 반대였다.
이렇게 4년을 보내고 나니, 나는 회사 사람과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색해졌다. 심지어 그 회사에서는 회식조차 하지 않았다. 4년 정도 있으면서 회식을 대략 4번 정도 경험했던 것 같은데, 한번도 빠짐없이 퇴사자가 발생하여 생기는 송별회였다.
아무튼 최근에 이직을 하게 되어 새로운 사무실로 출근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항상 그랬듯이 상처입은 개처럼 웅크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가면을 쓰고 동료들을 대했다. 여기 사람들은 괜찮아 보였다.
명절 하루 전날, 동료 한명이 메신저로 "양 산책을 시키자"라고 이야기했다. 이게 무슨말인가 싶어 잠시 멍때리고 있는데 말 그대로, 본인이 자주 가는 동물 카페에 동료들과 같이 놀러가서 구경하고, 그곳에 있는 양을 산책시키자는 이야기였다. 전에 다니던 회사와는 정말 결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지나서는 금요일 저녁에 시간을 비우라고 했다. 단합을 위해서 그날 다같이 방탈출 카페를 간다고 한다. 금요일 밤, 회사 동료와, 방탈출 카페. 모든 순간이 어색한 단어 조합이다. 굳이 거절할건 또 없겠다 싶어서 같이 갔다.
그날 진짜 오랫만에 어린아이처럼 실컷 웃고 떠들었다. 좁은 방을 돌아다니며 머리를 맞대고, 함정을 풀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회사에 출근하는게 싫으면, 그냥 불편한 사람과 하루종일 약속이 있다고 생각하라고. 이렇듯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동고동락하는 동료들을 마냥 불편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같다. 그래서 좀 슬프다.
과거에 광고대행사에 다닐때, 너무 힘들어서 퇴사하겠다고 말했었다. 팀장님은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갔고, 우리는 김에 소주를 미친듯이 먹었다. 팀장님은 지속적으로 퇴사를 만류했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팀 동료들이 한명도 빠지지 않고 합류했다. 우리는 그날 다같이 만취할때까지 소주를 먹었고, 나는 퇴사를 번복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다같이 해장하러 갔다.
이런 로망을 좀 오래 잊고 지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 힘든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동료들이었고, 못 버티고 그로기 상태에 빠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도 동료들이었다. 조금씩 다르겠다만 요즘은 사무실에서 에어팟을 낀다고 한다. 극도로 개인주의적이고 폐쇄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떳떳한 사회 트렌드가 되는 것이 슬프다. 그것을 지적하는게 꼰대가 되어가는 현실은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