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상황을 나름 재미나게 풀어놨네?
넷플릭스에서 정말 오랫만에 컨텐츠를 보았다. 나는 넷플릭스 계정을 장인 장모님과 공유하고 있는데, 넷플릭스가 이에 대해 철퇴를 내린다는 말도 있고, 요금제를 올린다, 광고를 도입한다는 등등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어 넷플릭스 해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솔직히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하고, 야근하고 집에 와서는 잠만 자고 나가는 것이 일상이라 OTT 서비스를 영위할 이유가 더더욱 없기도 했다.
휴일 저녁 뭘 하기 애매한 시간에 아내가 임시완이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가 있다고 해서 봤다. 사실 별로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오프닝이 인상 깊어서 그냥 쭉 보게 되었다.
이 영화의 오프닝을 보고 나면 우리 인생에서 스마트폰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내심 다시 깨닫게 된다. 진짜 말을 못한다 뿐이지 제 2의 나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영화는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연쇄 살인마가 스마트폰을 주워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내용인데, 솔직히 정말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서 한껏 코웃음을 칠 준비를 하고 봤다. 근데 연쇄살인마가 피해자를 몰아가는 과정과 내용이 생각보다 현실적이고 그럴싸해서 중간중간 소름이 돋곤 했다.
다만 살인마와 주인공이 맞서는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 초반에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다가 절정 부분에서는 뭔가 김이 빠지고 말도 안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특히 영화 초반부에 살인마가 주인공의 숨통을 조여오는 부분은 정말 재밌었는데, 절정을 찍고 후반부에 경찰들의 비중이 커지는 부분부터는 지루하고 이해가 안가는 부분들이 제법 있어서 아쉬웠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알람으로 일어난다. 어디로 이동하는지, 어디서 오래 머무는지는 스마트폰 위치 추적으로 기록된다. 무엇을 검색하고 어떤 컨텐츠를 즐겨 보는지 다 알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문제는 이미 예전부터 공론화 되어왔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보이스피싱을 다룬 컨텐츠도 이미 상당히 많다.
실제로 최근에 우리 어머니도 보이스피싱을 당해 큰 피해를 입을 뻔했다. 다행이도 어머니가 보이스피싱범에게 비협조적으로 굴었기 때문에 별 피해는 없었다. 나도 회사 팀장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에 넘어가 상품권 50만원치를 결제할 뻔 하기도 했다.
나는 2013년 쯤 심적으로 힘든 일을 겪으면서 스마트폰을 끄고 2주 넘게 생활했던 적이 있다. 책을 읽고 산책을 많이 했다. 매일매일 일기를 썼고 글도 많이 썼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글을 쓰겠지만 나는 우리나라 저출산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스마트폰(특히 인스타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 그립다.
스마트폰과 연쇄살인이라는 연결고리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된다. 지금은 대부분의 거리에 CCTV가 깔리고 모든 자동차에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다. 과학수사기법도 발전했고 수사 역량도 많이 발전하여 현실적으로 연쇄살인은 발생할 수 없는 구조라고 한다.
이 영화는 연쇄살인이라는 범죄에 포커스를 두기 보다는 제목 그대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발생할 수 있는 극한의 상황을 재미난 상상력으로 풀어낸 영화로 보는게 좋을 것 같다. 실제로 범인을 궁지에 몰아넣고 맞서 싸우는 절정의 순간보다, 영화 초반 스마트폰을 해킹해서 피해자의 삶을 하나하나 무너뜨리는 과정이 훨씬 재미있다.
스마트폰은 우리 인생을 바꿔주었고, 현대 사회에서 없어선 안될 기술의 집약체이지만, 이 물건이 양날의 검이 되어 나를 옥죄는데 사용되는 상황을 상상해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프로그램을 하나 깐다고 해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스마트폰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조정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기술에 발전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부작용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