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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Aug 28. 2023

100일간 육아를 하고 느낀점

feat. 역대급 대한민국 저출생

 2023년 5월 8일 나는 아빠가 되었다. 어버이날에 태어난 아이라... 뭔가 기구하다. 아마 우리 가족에게 있어 5월 8일은 부모도 자식의 생일을 챙겨야 하고 자식도 부모를 챙겨야 하기에 "가족의 날"같은 개념이 되지 싶다. 나는 25살쯤 아이를 낳고 싶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아버지와 내가 25살 차이였다. 그리고 가능하면 어린 나이에 낳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25살의 나는 대학교에서 학생회장 같은 것을 하고 돌아다니고 있었고, 출산은 커녕 그 전 단계인 결혼, 취업,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모지리였다. 아무튼 세월이 흘러 내가 목표했던 25살이 아닌 35살에 아이를 낳게 되었다.


 다른 젊은 부부들이 그렇듯 우리도 아이를 낳기 위해 이런저런 조건을 달았다. 대리 승진하면 낳자. 집을 사면 낳자. 부부 합산 소득이 얼마가 되면 낳자. 결론적으로 아이를 낳기 위해서 우리가 설정한 조건을 다 충족하지는 못했다. 대부분 충족하긴 했으나, 뜬금없게도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가장 큰 계기는 아버지의 투병이었다. 일종의 효도메타라고 할수 있겠다. 아버지께서는 손주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뻐하셨고, 안타깝게도 아이의 탄생은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태어나서 제일 행복하다.

 도대체 어떤 수식어가 필요할까. 아이가 주는 행복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효도 메타로 아이를 낳긴 했지만, 우리는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그냥 더 일찍 낳을걸 그랬다고. 우리는 내가 30살, 아내가 26살이던 시절 둘이 합쳐 7천만원을 가지고 결혼했다.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는 꿈이었고 쓰리룸을 얻어 시작했다. 결혼은 그리도 과감하게 저질렀으면서 육아는 왜 그렇게 6년이나 망설였을까.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출산 전도사가 되었다. 지인들이 결혼에 대해 물으면 "하면 좋긴한데 뭐 안하는 삶도 존중한다" 정도로 답했지만, 출산에 관한 질문이 들어오면 "결혼은 안해도 아이는 낳아라"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지금도 아내와 나의 유전자가 세상에 나와 꼼지락대고 울고, 엄마 젖을 힘차게 빨아먹는 것을 보면 경이롭다. 꼭 낳아라. 나는 셋째까지 낳을거다.


세상은 생각보다 따스하다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아마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감한다. 우리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이런 저런 조건들을 달았던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아이를 낳고 놀랐다. 부모님들은 물론이고 형제자매, 친척, 친했던 친구, 그냥 지인 등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부모 수당으로 대표되는 지원금까지. 생각보다 온정의 손길(?)이 정말 많이 들어온다.


 물론 이런 내용은 조심스럽긴 하다. 우리 부부가 그간 쌓아온 것에 대한 보답일수도 있고 모두에게 통용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커리어가 끊기게 생겼는데 그깟 온정의 손길이 뭐가 중요하오? 라는 반론이 들어올 수도 있겠다. 나도 커리어가 끊겼다. 막막하다. 그래도 긍정적인 면만을 바라보자. 아이는 예쁘고 세상은 생각보다 따스하다.


파워 부스트업이 된다

 부모가 되는 순간 발동되는 부모 스팀팩이 엄청나다. 몸무게 4kg이 채 되지 않는 아이가 힘차게 울고, 그 아이를 받아드는 순간, 내가 곧 이 아이의 세상이구나 라는 생각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 가정을 꾸린 사람을 선호하는 이유가 뭔지 확 깨닫게 된다.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이 아이가 밥을 굶는다. 솔직히 커리어를 쌓아감에 있어 이런저런 허울 좋은 문구 따위보다 이 한줄의 문구가 훨씬 더 강력하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림으로써 그 어떤 역경도 해쳐 나갈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뭐 잠을 못자고, 밥을 못 먹고, 집이 엉망이 되고 그런 이야기들은 너무 뻔해서 적지 않았다. 그냥 내가 100일간 육아를 하며 느낀점을 최대한 담백하게 적어 보았다. 최근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0.78이라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기록을 세웠고, 미국의 한 석학은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라며 머리를 쥐어 뜯는 세레모니를 했다.

썩 유쾌한 말은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망국적 저출생이 밈처럼 인터넷에 떠도느 것은 영 씁쓸하다. 정치권에서는 아예 포기한 것 같고, 어떤 교수는 "지금 아이 낳는 사람은 머리가 나쁜 사람이다. IQ가 두 자리 일 것"라는 말을 지껄이기도 했다. 나는 대한민국 저출생보다 사회 지도층인 교수라는 인간의 주둥이에서 건설적인 논의는 나오지 않고 저딴 비아냥이나 나오는 현실이 더 통탄스럽다.


 오늘도 잠든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진짜 막말로 저출생으로 나라가 망해서 이민을 가게 되든, 패러다임의 변화로 출생률과 관계없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찾아오든 아빠가 너를 반드시 지켜주겠노라고.


 마지막으로 최근에 본 광고 중 가장 마음 따스해지는 광고를 공유하며 끝내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PiJlB3JJ9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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