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 전에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주상절리길에 간 적이 있다. 지인(知人)의 추천으로 그곳을 다녀왔다. 지인은 그곳에 가면 유려한 경치를 구경할 수 있으며 대체로 길이 평탄하여 힘들이지 않고도 산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곳은 계단이 잘 설치되어 있어서 초보자들이 다니기에 무리 없이 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인의 말대로 주상절리길 입구에 도착하니 주변의 자연경관이 멋져 보였다. 경치를 보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입장권을 구매하여 입구에서 출구까지 완주하기로 했다. 주상절리길은 걷는 길에 투명한 바닥이 많았다. 바닥은 특수 강화유리로 된 듯 보였고 바닥 밑은 아찔해 보였다. 또한 길을 가다가 출렁다리를 자주 마주쳤다.
하나의 출렁다리를 지나면 조금 가다가 또 다른 출렁다리를 만났다. 출렁다리를 걸을 때면 다리가 출렁거렸다. 스릴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공포 체험이었다. 다리폭이 좁고 매우 높은 위치에 설치된 출렁다리를 건널 때 심장이 뛰고 몸이 경직되었다.
1988년 대학교 1학년 때 문무대(文武臺)라는 곳에 가서 병영집체훈련을 받았다. 문무대는 육군학생군사학교의 별칭이었다. 당시에 1학년 학우들은 문무대, 2학년 학우들은 전방입소훈련을 받았다. 군대를 가야 하는 학우들은 이러한 훈련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훈련을 이수하면 군복무기간 단축이라는 혜택을 받았다. 대학교에서 교련 과목이 1988년 말에 폐지되었으므로 88학번은 문무대에서 대학생 병영집체훈련을 받은 마지막 학번이 되었다.
화창한 봄날,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근처에는 학우들을 태우고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문무대로 갈 버스들이 정차해 있었다. 문무대로 가기 전 학우들의 이야깃거리 중에서 최고의 화두는 막타워(Mock Tower)라는 훈련이었다. 막타워는 모형탑이라는 영어단어에서 유래했다. 막타워는 인간이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는 11미터 높이의 모형탑에서 밧줄을 잡고 지면까지 뛰어내리는 훈련이었다.
버스가 도착하여 문무대에 입소했다. 훈련조교들이 대학생들에게 얼차려를 주고 정신무장을 시켰다. 대학생들이지만 훈련조교들이 별로 봐주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M16소총 사격훈련을 통해 귀가 먹먹할 정도로 총소리가 큰지를 처음 알았다. 화생방훈련을 통해 방독면을 쓰면 숨을 쉬기가 매우 답답함을 느꼈다. 각개전투(포복과 철조망 통과 등) 훈련을 받았다. PT체조도 했다. 며칠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군대 훈련소에서 하는 기본적인 훈련들을 받았다.
식사시간에는 밥을 절반만 먹다가 수저를 놓게 되었다. 식사시간이 너무 짧아 평소 식사를 천천히 하는 나로서는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배급받을 때 식당 기간병에게 실수로 식판을 반대로 내밀었다가 욕을 먹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은 힘들었어도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막타워훈련에 비하면 말이다.
학우들이 가장 받기를 꺼렸던 막타워훈련이 최고로 겁이 났다. 막타워훈련을 받기 전에 훈련조교는 학우들에게 겁을 주었다.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는 11미터이다. 너희들은 11미터 높이까지 올라가서 뛰어내려야 한다"
훈련받기 위해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타학교 학우들도 문무대에 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꽤 있었다. 막타워훈련을 받기 위해 서 있는 줄이 꽤 길었다. 나는 그 줄 맨 뒤에 가서 섰다. 줄이 점점 짧아졌다. 기다리면서 서 있는 동안 마주친 우리 학과 Y학우는 자기는 이미 막타워훈련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마 앞줄에 서서 빨리 받은 모양이었다.
학우들은 멘 앞에 서 있는 학우부터 막타워에 올라갔다. 11미터 높이까지 막타워에 설치된 계단으로 올라갔다. 훈련조교가 학우들의 몸에 밧줄을 묶어주고 밀면 학우들은 뛰어내렸다. 학우들은 무서운지 '엄마 사랑해'와 같은 말을 소리치며 뛰어내렸다. 짧은 시간 동안 밧줄을 붙잡고 지면까지 내려왔다. 어떤 학우들은 안도했고 어떤 학우들은 즐거워하기도 했다.
기다리는 줄의 맨 뒤편에 서 있었기 때문에 대기시간이 꽤 길었다. 막타워에 올라가 소리치며 뛰어내리는 학우들이 보였다. 점점 내 차례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다. 한 학우가 막타워에서 뛰어내렸는데 밧줄이 엉켜서 막타워와 지면을 연결하는 공중에 있는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위태로워 보였다.
훈련조교는 막타워에서 뛰어 내려갈 때 양쪽 다리를 앞으로 올리고 양팔을 하늘로 올려 밧줄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즉, 내려올 때 몸이 L자가 되어 정상적으로 지면에 착지하라고 말했다. 그 학우가 훈련조교의 지시대로 하지 않고 무언가 잘못된 동작을 해서 밧줄이 뒤엉켰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조교들이 공중에 있는 밧줄에 매달려 있는 학우를 구조하느라 훈련이 중단되었다. 만약 내가 그 학우와 같은 상황에 놓였더라면 덜덜 떨었을 것이다. 시간은 지체되었지만 그 학우는 무사히 구조되었다. 다시 훈련이 재개되었다. 대기줄은 점점 짧아져서 내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계단으로 올라갈 때 별로 다리가 후덜 거리지 않았다. 뛰어내리는 장소에 도착하니 훈련조교가 내 몸에 장비와 밧줄을 매어줬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몸을 앞으로 밀었다. 몸이 허공을 가르며 밑으로 떨어졌다. 입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나왔다. 순간적으로 양쪽 다리를 올리고 양팔을 들어 몸에 연결된 밧줄을 잡았다. 몸은 빠른 속도로 지면을 향해 내려갔다. 내려올 때 눈이 반사적으로 감겨 주변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무사히 착지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강시간이 정말 짧은데 왜 이렇게 걱정했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문무대훈련이라는 것을 통해 군대를 미리 맛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해 말에 대학교 교련과목이 폐지되어 남학우들의 문무대훈련과 전방입소훈련이 없어졌다. 대학생의 문무대나 전방입소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기간의 고생이었지만 문무대를 다녀옴으로 인해 방위병 복무할 때 10일의 복무기간 단축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