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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홍일점 여학우

by 선명이와 지덕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생각과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인차와 상관없이 사람들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바로 청일점이나 홍일점일 때이다. 청일점이란 많은 여자 사이에 끼어 있는 한 사람의 남자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반대의 경우는 홍일점이라고 한다.


대학교의 경우 남학우가 가정대에 다니면 청일점이 되기 쉽다. 반대로 여학우가 공대에 다니면 홍일점이 되기 쉽다. 공대의 학과들은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많은 집단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과(산업공학과)도 남학우가 훨씬 많았다. 여학우는 매우 드물었다. 여러 이유를 생각해 봤을 때 대체로 여학우들은 공대의 학문들이 재미없고 딱딱하며 논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또한 공대를 졸업해도 남학우들에 비해 진로가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학우들이 많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1992년 3월,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후 3학년에 복학했다. 2년 만에 다시 찾았어도 캠퍼스는 여전히 낯익었다. 자주 수업을 들으러 드나들던 공학관 건물이나 학생회관, 도서관 건물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캠퍼스가 평온해졌다는 점이다. 1, 2학년 때와는 달리 학원민주화를 외치던 학우들의 시위가 없어졌다. 학교 근거리에는 전철역이 생기면서 편리하게 통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근처 전철역에서 학교까지 셔틀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반면에 학우들의 통학을 책임져 왔던 통학버스들은 노선거리가 짧아지거나 노선이 아예 없어졌다.


전공과목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에 갔다. 함께 듣는 학생 수의 사분의 삼이 처음 보는 학우들이었다. 예상했던 바였다. 군대를 방위병보다 현역병으로 복무하는 학우들이 많았으니 방위병으로 다녀온 동기 학우들은 많지 않았다. 현역병으로 다녀온 학우들은 일 년 선배들이다. 일 년을 휴학한 후 복학했거나 휴학하지 않고 3학년이 된 후배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눈에 띄는 한 학우가 있었다. 홍일점인 여학우였다.


홍일점 K학우는 남학우들 속에서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휴학한 적 없이 3학년이 되었으므로 나에게 후배였다. 교양과목이나 타학과에서 수업을 들을 때 여학우들을 많이 보았지만 우리 학과에서 여학우랑 함께 수업을 듣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학우들만 있었을 때의 수업 분위기에 비해 그녀가 있어도 수업 분위기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마치 성별만 여자인 남학우가 수업을 듣는 듯 남학우들은 그녀의 존재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OO경영이라는 전공과목이 있었다. 담당교수는 관련학계에서 연륜 있는 노(老)교수인 H교수님이었다. 그는 강의시간마다 열성적으로 가르쳤다. 하지만 그의 수업 중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목소리가 작아서 강의실 뒤편에 앉으면 그의 말소리가 잘 안 들린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학우들은 수업 도중에 졸기만 할 뿐 그에게 잘 안 들린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의 수업방식은 학우들과 토론이나 소통을 중시하는 방식이 아니었고 준비한 강의내용을 열심히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H교수님은 가끔씩 학우들이 수업내용을 이해했는지 질문했다. 그런데 주요 타깃이 K학우였다. 아마도 그녀가 홍일점이라 금방 눈에 띄어서 그런 것 같았다. 만약 그녀가 남에게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학우는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공수업을 함께 들었던 여학우였다. 그녀는 나와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나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면서 잘 대해주었다. 그녀는 내가 볼 때 괜찮은 여학우였다. 수수한 옷차림으로 다니던 성격이 무난하여 학우관계가 좋았던 여학우였다. 또한 대다수 공대녀들이 그렇듯이 우리 학과의 많은 남자들(교수와 남학우)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던 홍일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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