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식구들과 한 집에 살다 보니 그들이 친척을 만나러 갈 때 함께 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대선이나 총선이 가까운 시기에 참석을 하면 처가친척 모임에 정치이야기가 화젯거리에 오른다. 그럴 때마다 흥미로운 일이 생긴다. 장모님 형제들이 여러 명 있는데 여당과 야당 지지가 반반 나누어져 의견이 대립하는 것이다. 한 부모 밑에서 자랐어도 정치에 대한 생각은 참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의견충돌이 생기지 않고 대한민국 국민이 한 마음 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올림픽도 그중에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은 전 세계가 보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 국민이 하나로 화합할 수 있는 빅 이벤트 중 하나이다.
대학교 1학년 때인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서울올림픽은 그해의 가장 큰 국제행사였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반쪽짜리 올림픽으로 치러진데 반해 서울 올림픽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제3세계 국가들을 모두 아우르는 뜻깊은 대회로 치러질지 관심이 모아졌다. 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잡고'라는 노래가 유행했고 정부의 기관들은 올림픽 준비로 바쁘게 움직였다. 서울시가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 난 것은 1981년 9월 30일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 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였다. 총회에서 IOC위원들의 투표 결과 서울시가 일본 나고야시를 제치고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지 한 학기가 지나서 친한 학우가 여러 명 생겼다. 그중에서 O학우와 P학우가 가장 친한 학우들이었다. 그들과 캠퍼스 생활을 하는 동안 함께 다닐 때가 많았다. 친구가 있다는 것은 캠퍼스 생활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캠퍼스를 다닐 때 외롭지 않고 학업에 필요한 정보를 때때로 얻을 수 있었다.
1학년 2학기가 되어 새로운 과목들을 수강했다. 그런데 2학기 때는 흥미로운 빅 이벤트가 있었다.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는 것이었다. 학교와 집이 모두 수도권에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 얼마든지 올림픽을 관람할 수 있었다. 특히 H대학교 본교 체육관에서는 올림픽 배구경기가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외롭게 경기장에 가서 올림픽 경기를 구경하고 싶지 않았다.
9월 초에 전공수업을 들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O학우가 말했다.
"올림픽 티켓 구할 수 있는데 같이 갈래?"
"응?"
"9월 중순쯤에 P학우랑 구경 가기로 했어"
"무슨 종목 구경하러?"
"농구"
"알겠어. 시간 있으면 같이 갈게"
그렇게 승낙을 했고 주말에 전화통화로 만날 날짜를 잡았다. 약속날짜가 되어 농구경기장이 열리는 잠실체육관 입구에 갔다.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 O학우는 이미 와 있었다. P학우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타났다. 나는 야구 외에는 스포츠를 경기장에서 관람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야구부가 있어서 한두 번 전국대회 4강에 올라 단체로 동대문야구장에서 응원했던 것이 전부였다.
농구는 좋아하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관람하고 싶어 했고 올림픽 경기이니 한번 관람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농구경기을 보기 위해 O학우와 P학우를 만난 것이었다. 경기장에 입장하려면 입장권이 필요했다. O학우가 입장권이 한 장밖에 없으니 두 장을 더 사자고 말했다. 주변에 입장권 매표소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낯선 남자가 다가오더니 입장권을 싸게 팔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남자한테서 입장권을 구매했다. 그리고 경기장 출입구에 서 있는 검표원에게 입장권을 보여주고 입장했다.
체육관이 넓어서 자리가 많아 보였다. 평일이고 예선전이라 그런지 비어 있는 자리가 많았다. 그래서 편하게 앉아서 경기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O학우가 구입한 입장권은 일반석이었다. 2층의 아무 자리에나 앉을 수 있었다. 단점은 2층 자리라서 선수들의 경기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기 위해 걸어가는데 외국인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서양인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보자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는 수집광처럼 액세서리 같은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올림픽 기념 배지 같아 보였다. P학우가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할아버지에게 다가갔으나 묻지 못하고 금방 돌아왔다. 아마도 영어로 말하기가 안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남자농구 조별리그 A조 2차전 한국 대 푸에르토리코 경기를 관람했다. 이충희, 김현준, 허재 등이 분전했지만 경기에서 5점 차이로 졌다. 결국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날 이후에 O학우, P학우와 함께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올림픽 시범종목인 야구 경기도 관람했다. 만약 O학우가 올림픽 경기를 함께 보러 가자고 제의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종목을 TV로만 시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O학우 덕분에 올림픽을 유익하고 의미 있게 현장에서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