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식당, 집 어디서든 간편하게
교환 학생이었을 당시 먹으면서도 대만 음식이라는 인식을 전혀 하지 못했던 음식이 있다. 바로 파이구판(排骨飯)이다. 갈비덮밥, 돈가스덮밥, 갈비튀김덮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번역되는데 직역하면 갈비밥이다. 파이구판은 내게 식당이든 기차역이든 어디서든 파는 고기와 야채가 올려진 그저 간단한 한 끼일 뿐이었다.
교환 학생으로 다니던 학교 근처에 기차역이 있었다. 정문에서 기차역까지 걸어서 5분 남짓밖에 안 걸릴 정도로 가까웠다. 그만큼 오히려 너무 익숙하고 일상적인 존재여서 아무런 특별함도 느끼지 못했다. 알고 보니 파이구판 전문점도 따로 있고, 기차 도시락으로도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파이구판의 고기는 주로 돼지갈비다. 다만 갈비뼈가 같이 붙어서 나오진 않고 살코기만 나온다. 이런 고기에 간장 등의 양념이 고기에 스며들어 대체로 부드러운 식감을 낸다. 하지만 식당과 지역에 따라 돈가스처럼 바삭한 파이구판도 있다. '튀기다'라는 뜻의 炸(자), '기름에 튀기다'라는 뜻의 油炸(유자)가 파이구판 앞에 붙으면 바삭한 파이구판을 뜻한다.
이러한 파이구판은 일본에서 왔다는 설과 대만에서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1899년 일본에서 기다 모토지로(木田元次郎)가 개업한 렌가테이(煉瓦亭)에서 서양의 포크커틀릿을 들여와 개량을 거친 일본 내 최초의 돈가스가 탄생했다. 다만 이는 고기가 다소 얇은 편이었다. 1929년 들어 폰치켄(ポンチ軒)에서는 지금처럼 두껍게 썬 형태가 등장했다. 이런 튀김옷을 입힌 형태가 일제 강점기를 거쳐 대만으로 유입됐고, 현재의 파이구판 형태로 발전됐다는 설이 있다.
한편, 파이구판의 유래가 대만의 돼지갈비튀김인 파이구수(排骨酥)와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일제 강점기 당시의 신문 대만일일신보(台灣日日新報)에 1927년 23일 동안 연재됐던 대만 요리 이야기(台灣料理の話)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시 타이베이 서쪽에 있는 다다오청(大稻埕) 거리의 장산러우(江山樓) 주인이 손님들이 돈을 더 쓰게 만들기 위해 파이구수를 발명했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의 파이구판으로 발전됐다는 설이 있다.
이러한 설을 통해 파이구판의 뿌리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비슷한 과정을 통해 파생됐을 것으로 보이는 메뉴들도 있다. 예컨대 탕 형태인 파이구수탕(排骨酥湯)과 국수 형태인 파이구몐(排骨麵) 등이 그렇다. 파이구몐은 기본적으로 국물이 있는 형태지만, 국물 없이 건면으로 먹는 경우도 있다.
대만 사람들에게 파이구판은 국민 음식이나 다름없다. 가족끼리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자, 학교 운동회 때 다 같이 모여 먹는 도시락 메뉴다. 기차 타고 이동하며 허기를 달래는 한 끼이기도 하다. 바쁜 업무 중에는 숟가락 하나로 든든한 에너지를 주는 밥이다. 마치 한국인의 김밥 같은 존재랄까? 그만큼 서민적이고 대만스러운 음식이다. 대만의 평범한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싶다면, 파이구판은 반드시 맛봐야 할 메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