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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만아웃사이더 Jan 04. 2022

외국인은 안 된다는 부모님께 대만 남자친구 소개하기

'가급적 외국인은 만나지 마라, 결혼은 한국인이랑 해야지'

일단 나의 부모님 이력을 먼저 말하자면, 두 분 모두 이른바 '갱상도'에서만 50여 년을 살아오신 꽤나 보수적인 분들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꽉 막혀서 대화 자체가 안 통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사소한 부분에서 은근한 고집과 전통적인 가치관을 갖고 계시다. 대략 어느 정도냐면, 내가 대만에 산지 대략 1년이 넘었던 어느 날, 갑자기 전화로 '가급적이면 대만 남자는 만나지 마라, 결혼은 한국 사람이랑 해야지.'라고 하신 정도.


그런 부모님의 성격을 알다 보니 대만에서 몇 번 외국인 남자친구를 사귈 때도 단 한 번도 남자친구의 존재를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다. (또한 다 금방금방 헤어졌다) 


하지만 이번 남자친구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결혼이라는 미래를 생각 중이다 보니 아무래도 부모님께는 그래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외국인은 안 된다!'라고 이미 선방을 당한 상태여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꽤나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내가 누굴 만나든 큰 관심이 없는 오빠에게 남자친구의 존재를 털어놓았다. 역시나 예상했던 것처럼 '네가 좋으면 됐음'이라는 반응이었다. 일단 오빠에게는 엄마아빠에게는 무조건 비밀로 하라고 입단속을 단단히 시킨 뒤에 부모님께 말할 기회만을 노렸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엄마가 먼저 나에게 '남친없니' 라는 카톡을 보내셨고, 그 순간 나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걸 알아차리고 바로 엄마에게 바로 남밍아웃(?)을 했다. 


"엄마, 나 남자친구 있어."


그러나 엄마의 반응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아니 엄마 반응이 왜 이러지' 싶던 중,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나의 남친이 당.연.히.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신 것.



대만 출신 남자친구라고 말을 하자마자 나온 '오마이갓'.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조금 진정이 되셨는지 (?) 오빠와 마찬가지로 '네가 좋으면 됐지'라는 반응이셨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꽤나 성공적으로 남밍아웃에 성공했다고 생각했으나,


며칠 후에 갑자기 엄마에게 카톡 하나가 왔다. 


'남친 많이 좋아해?'


이 한마디를 보자마자 이 말속에 어떠한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것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남밍아웃을 했을 때는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혼자서 엄청나게 많은 생각을 하셨던 듯하다. 특히 내가 만약에 한국 사람이 아니라 현재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게 될 시에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아지다 보니 그게 상당히 걱정이 되신 듯했다. 


엄마를 안심(?)시킨 후, 일단 아빠에게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불과 며칠이 지나서 나의 기밀사항은 바로 아빠에게 유출이 되고 말았다. 엄마가 아빠에게 슬쩍 남자친구의 존재를 말해버린 것. 게다가 사진까지 멋대로 보여줬다고 하셨다 (...) 그러나 내 예상과 다르게 아빠의 반응이 엄마보다 더 쿨했다. 사진을 보더니 '잘생겼네. 인상도 엄청 좋다' 딱 이 두 마디만 하셨다고 한다. 


의도치 않게 부모님의 오케이를 받아서 기뻤던 나는 남자친구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고 싶어 바로 연락을 했다.


나 : 엄마가 나 몰래 아빠한테 (너에 대해서) 말했대

남자친구 : !!

나 : 원래 내가 아빠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ㅡㅡ 

남자친구 : ... 혹시 아빠가 (외국인 남자친구는) 못 받아들이시겠대?


아직 나는 본론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남자친구가 저런 말을 먼저 꺼낸 걸 보고 남자친구가 그동안 혼자서 마음고생을 좀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내가 예전에 부모님께서 매우 보수적이라고 말을 한 적이 있어서 남자친구 혼자 꽤나 걱정을 했었던 것 같다. 


나 : 아니? 아빠가 너 잘생겼대.

남자친구 : ...진짜?

나 : 인상도 좋대.

남자친구 :  와, 다행이다! 나 그럼 부산 가서 해산물 먹을 수 있겠네~


부모님께 일단 와이파이 통과(?)는 받았고 이제 남은 건 실제로 남자친구를 보여드릴 순서! 그러나 이놈의 코로나가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정식 인사는 무제한 연기 중.


그래도 부모님께서 생각보다는 큰 반감 없이 남자친구의 존재를 받아들여주셔서 감사하고 기쁘다. 물론 추후에 지금 남자친구와 헤어진다거나 아니면 부모님께서 갑자기 마음을 바꾸실 수 도 있지만 그것은 또 그때 가서 생각하는 걸로! 


얼른 코로나가 좀 진정이 되어서 남자친구를 데리고 부산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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