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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만아웃사이더 Jan 09. 2022

대만 남자친구와 2주 만나고 2년 장거리를 하기까지-3

사귄 지 2주 만에 대만-유럽 장거리가 되어버린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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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https://brunch.co.kr/@taiwanoutsider/39


2편

https://brunch.co.kr/@taiwanoutsider/40



세 번째 데이트만에 지롱(타이베이의 교외지역)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게 된 나와 남자친구(팅이). 새벽부터 분주하게 나갈 준비를 하고 팅이의 집 근처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집에서 약속 장소까지는 불과 2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그 20분 동안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해외 장거리'라는 선택을, 나와 팅이가 과연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과 함께 불과 2주를 만나고 2년이라는 거대한 시간을 내가 견딜 수 있을지 전혀 확신 자체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걱정을 많이 한다고 떠날 사람이 갑자기 안 가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의 즐거운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중의 일을 걱정하기 전에 지금 내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그렇게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팅이는 약속시간보다 더 일찍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렇게 우리의 당일치기 지롱 여행이 시작되었다.




대략 2시간의 거리에 있는 지롱에 도착하기까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양안관계의 이야기, 한국과 대만의 문화 차이, 본인의 가족 이야기 등, 수많은 주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본래 말이 없는 편인데 이상하게 팅이 앞에서는 말이 많아졌다. 그리고 차가 막히거나 신호에 걸려서 핸들에서 손을 뗄 수 있을 때는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손을 잡곤 했다.


 그렇게 도착한 지롱에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바다를 보는데 할애했다. 내가 바다를 보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인지 팅이는 자신이 아는 모든 지롱의 바다를 구경시켜주고 싶어 했다. 그러다가 金沙灣이라고 불리는 작은 해변가에서 우리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온 사람들이 많았고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 사이에서 우리는 모래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한 30분 정도 그렇게 계속 떠들다가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팅이가 내 옆으로 더 가까이 다가와 앉았고 우리 사이에 거의 틈이 없어질 무렵에 내 머리카락 사이로 팅이의 손가락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한참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기만 하고 더 이상 더 다가오지도,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않는 팅이를 보며 팅이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내가 결론을 내려야 할 차례였다. 그냥 이렇게 모르는 척만 하고 어영부영 넘어가서 결국 그저 친구 이상 연인 이하의 애매한 사이로 끝내버릴지, 아니면 무모하면서 희망이라곤 없는 유럽과 대만이라는 해외 장거리 연애를 시작해버릴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무엇이든 해보고 도전하자는 나의 좌우명처럼, 답 없고 기약 없는 '함께'를 택했다. 그 증거로 팅이에게 그대로 입술박치기를 한 건 덤. (추후에 팅이가 한 이야기지만, 그때 우리가 입을 맞출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고 한다)




 그렇게 행복한 순간도 잠시, 시간은 정말 화살처럼 흘렀고 팅이가 떠나는 날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지 정확히 2주가 되는 날, 팅이는 떠나야 했다.


그리고 결국 팅이가 떠나는 날이 와버렸다. 나는 회사에는 반차를 내고 팅이의 집으로 향했다. 팅이의 부모님과 같이 밥을 먹고, 팅이의 방에서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과 몇 시간 후면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마치 잊어버린 것처럼 우리는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그러다가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뭘 할지, 2년 동안의 목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걸 종이에 써서 서로 갖고 있자고 했다. 나는 어설픈 중국어로 여러 목표를 써 내려갔다. 대학원에 합격하기, 영어공부를 쉬지 않기, 밥 잘 먹기 등 내 앞으로의 목표를 열심히 적어 내려가던 중, 정말 뜬금없이 눈물이 후두둑 쏟아졌다. 아마 우리가 진짜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기라도 한 듯 나는 소리도 없이 팅이 앞에서 눈물을 뚝뚝 쏟아냈다. 써 내려간 종이가 흠뻑 젖을 정도로 그때 많이 울었다.

 

 그렇게 몰래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후 팅이의 부모님의 차를 타고 함께 타오위안 공항으로 향했다. 그동안은 그렇게 멀게 느껴졌던 공항이 오늘은 왜 이렇게 가깝게만 느껴지는지. 정말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처음이었다.


 출국 수속을 다 밟고 드디어 떠나는 시간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팅이에게 어차피 가야 할 거, 빨리 다녀오라며 출국장 앞에서도 꽤나 의젓하게 굴었다.


 그러나 출국장으로 들어가려는 팅이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또다시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출국장 입구까지 들어갔던 팅이는 내가 우는 모습을 보자마자 급하게 돌아와서는 한참 나를 위로해주었다. 이러면 아쉬워서 내가 어떻게 떠나냐고, 울지 말라며 나를 토닥여줬다. 평소에 전혀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내가 거의 처음으로 팅이 앞에서 약해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갈 사람은 가야 하는 법. 내 눈물 자국이 가득한 티셔츠를 입은 채로 2021년 10월 1일, 팅이는 결국 떠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2년 1월 6일, 팅이가 떠난 지 약 3개월이 지났다. 팅이가 떠나고 일주일 동안은 꽤나 우울했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나는 팅이가 없는 환경에 곧 익숙해졌다. 혼자서 카페에 가서 중국어 공부를 하고,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서 놀기도 하고, 회사 생활로 야근을 하는 등 꽤나 내 생활을 잘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나와 팅이는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7시간의 시차와 나의 회사생활로 우리가 연락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6시간 정도에 가끔은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애정전선은 맑음 상태다.


 사실 여전히 이 연애의 끝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날 수도 있고, 아니면 수많은 장거리 커플처럼 결국 중간에 헤어지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지금 걱정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걸 알기에, 그냥 매일매일 내 생활과 팅이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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